
그렇게 다음 촬영 날 어느새 빨리 찾아왔다. 촬영장에 도착했고 태형이는 이미 와 있었다. 어제 일 때문에 너무 신경이 쓰여서 원래 같으면 만나자마자 인사하고 난리인데 나는 눈치가 보여서 선뜻 인사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태형이가 나를 보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태형
— 누나 왔어?
윤여주
— 응.
김태형
— 어제···.
윤여주
— 어? 언니!
우리의 공기는 예상과 일치했다. 갑자기 태형이가 어제얘기를 꺼내는 것 같길래 얼른 같이 촬영하는 언니에게로 회피했다. 내가 이렇게 피하는 건 아직 마음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늘 장면은 입맞춤신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오늘 대본을 보니 오늘이었다. 하필이면 왜 오늘일까. 쥐구멍에 당장이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로맨스 드라마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입맞춤. 평소 같으면 이 정도면 걱정도 안 했을 텐데···.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촬영이 다가왔다. 태형이와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올 게 왔다.
김태형
— 표정 풀고. 걱정 많은 그런 표정 하지 말고.
윤여주
— 어···?
태형이도 알고 있었나 보다. 내가 본인 때문에 걱정이많은 것을. 얼굴에 티가 생각보다 많이 났나 보다.
김태형
—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표정만 풀자.
큐 사인이 들어왔고 우리는 짧은 입맞춤을 했다.
감독
— 컷. 여주 씨, 조금만 인상 풀고 다시 가보자.
윤여주
— 아, 네···.
김태형
— 떨리지? 잘생긴 내가 앞에 있어서.
윤여주
— 뭐···?
김태형
— 아, 웃으라고 한 얘긴데. 긴장 풀라고.
윤여주
— 아···.
걱정은 많고 입맞춤은 떨려 죽겠고. 아무리 웃긴 얘기를 해도 이 상태에서는 도저히 웃음은 나오지를 않는다. 다시 한번 큐 사인이 왔고 태형이가 리드를 해 주었다. 나도 또 망치면 여러모로 민폐라고 생각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오케이 사인이 들어왔다.

김태형
— 잘했어.
태형이는 잘했다며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 오늘따라 태형이가 하는 행동이 다 설레고 떨린다. 진짜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은 건데. 그렇게 계속 촬영을 하다가 우리 둘 다 쉴 수 있는 시간이
겹쳤다.
김태형
— 누나, 우리 얘기 좀 나눌까?
윤여주
— 아··· 응.
우리는 한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형
— 아까 왜 계속 피했어? 걱정도 한가득 하고. 내가 어제 한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윤여주
—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김태형
— 음··· 혹시 내가 싫은 거야?
윤여주
— 응. 어···? 아니?
김태형
— 아··· 싫었던 거구나. 알았어···.
영혼을 좀 놓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응.”이라고 대답해 버렸다. 태형이는 예상하지 못한 답이라 너무나 실망한 듯했다.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윤여주
— 아니, 태형아. 그게 아니라,

김태형
—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괜찮다고 말하는 태형이의 눈에는 말과는 다르게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얼떨결에 나온 내 거절에 태형의 눈가는 바로 촉촉해졌다.
김태형
— 나 촬영 때문에··· 먼저 가볼게.
윤여주
— 아, 저···.
태형은 이미 간 뒤였다. 아직 촬영하려면 시간이 더 남은 듯한데, 눈물을 감추려 빨리 그 자리를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태형의 고백을 계속 머뭇거리는 이유는 누구에게 고백 받아본 것이 처음이다. 받아서 열애설 터지고 기자들의 관심을 크게 받을 것이고,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조심스럽기는 했다. 그때
촬영을 시작한 태형이가 보였다.
감독
— 컷. 조금만 표정 풀고 다시 가보자.
감독
— 컷. 표정 조금만 더 풀어보자.
감독
— 컷. 조금만 더 밝게 다시 가볼게.
계속 표정 때문에 같은 신에 붙잡혀 있는 태형이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감독님도 계속 제자리인 태형에 조금 지치신 듯했고, 태형이의 기분을 다시 되돌릴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대로면 촬영이 길어질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태형이에게 달려갔다.
윤여주
— 잠시만요, 감독님. 조금만 쉬고 가도 될까요?
감독
— 그래. 조금 쉬고 다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난 태형이를 데리고 세트장을 나왔다.
윤여주
— 김태형.
김태형
— 왜···.
윤여주
— 내가 거절해서 그런 거야?
김태형
— 아니야, 그런 거···.
윤여주
— 맞잖아. 너야말로 애기네. 이런 거로 촬영도 못 하고 있고 말이야.
김태형
— 이런 거로가 아니라 나에겐 너무 커. 차였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아.
윤여주
— 우리가 열애설이 터지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래도··· 좋아?
김태형
— 응. 내가 더 신경 쓰면 되잖아. 내가 누나 지키면 되잖아.
윤여주
— ···그 말, 진심이야? 못 지키면··· 가만 안 둔다.
김태형
— 그럼. ···어? 방금 뭐라고 그랬어?
윤여주
— 연애. 네가 하고 싶은 그 연애, 한 번 해보자고.
김태형
— 누나···. 고마워. 진짜 고마워, 윤여주.
태형이가 안으려고 하자 내가 피했다.
윤여주
— 여기 촬영장이야.
김태형
— 뭐 어때. 누가 뭐래도 내가 누나 지키겠다는데.
윤여주
— 듬직하니 좋네···.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김태형
— 나 너무 어린 애 취급하네. 우리 그거 할까?
윤여주
— 뭐?
김태형
— 아까 그 입···,
윤여주
— 야! 이게 세상 무서운지를 모르네. 안 돼. 들어가자.
김태형
— 아, 누나!
윤여주
— 헐 태형아, 저거 봐.
난 다른 곳으로 태형이를 유인하고 세트장으로 잽싸게들어갔다. 그래도 태형이 촬영은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걸로 됐다. 나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피해 끼치면 안 되니까.

김태형
— 아, 누나! 윤여주!!
나는 괜한 걱정을 그렇게 오래 했나 싶다. 이렇게 금방 다시 해결될 것을. 서로가 힘들어 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고, 두려웠던 시선들과 기사들도 몇 번 좋지 않은 일들이 꽤 있었지만, 태형이가 다 해결해 줬다. 말로만 듬직한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듬직하니 믿음이 가고 마음에 무척 들었다. 우리는 배우 커플로 관심을 생각보다 많이 받았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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