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지묘
(마녀의 고양이)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트리거 경고,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폐하, 도제조 김 대감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제 앉은키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쌓여있는 상소문들을 물리며 황제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하루 온종일을 글자만 들여다보던 차에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으니, 들라하라-, 명한 황제에 그 입궁 소식을 알린 궁인이 재빨리 물러나 그 허가를 알렸다.
호국과 경계를 마주한 경국의 도적떼들이 호국의 경계마을마저 어지럽힌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니, 황제는 그 길로 황군을 파견하였다. 나라의 경계를 어지럽히고, 그 경계 어귀 마을의 식량은 물론이고 남녀할 것 없이 사람들마저 죄다 잡아들이던 차이니,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는지라 경국의 황궁에 서신을 보낸 것도 어연 여러 차례였으나 묵묵부답이던 차에, 제 오랜 친우인 도제조가 직접 나서 그들을 소탕한 것이었다. 경계에 배치된 군 마저 힘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도움을 요청하였기에, 그 퇴치에 근 한달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것만, 열흘만에 도적 떼들을 소탕했다는 전언과, 사상자 한 명 없는,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결과를 이룩하였으니, 그로써는 그 군의 우두머리로써 보낸 그를 반길 수밖에 없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깊게 숙여진 고개, 예를 다해 황제, 윤기에게 인사를 올린 석진이 아무도 모르게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도제조를 제외한 이들은 물러가란 명을 남긴 황제는, 석진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방을 나서기를 기다렸으니, 탁-,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석진이 굽혔던 허리를 서서히 폈다.
"잘 지냈나."
"못 지낼것도 없지, 너는?"
"하루 온종일을 상소문에 파묻혀 있건만, 못 지낼게 무엇이 있을까,"
윤기가 상소문을 집어들며 말했다. 말려있던 상소문을 펼쳐 빠르게 읽어내리는 윤기를 보는 석진의 눈이 곱게 휘었다. 글쎄,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그 말에 윤기의 시선이 다시금 석진에게 향하니, 보는 눈도 없겠다 싶은 마음에 대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석진이 헤실헤실, 잘도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나 없는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수도에 들어오자마자 귓구멍에 박히는 소문들이 죄다 흥미로운 소문들이라 말이야,"
"소문?"
"모르는 척은,"
상소문을 훑던 윤기의 손이 그 입가로 향했으니, 그 꼴을 지켜보던 석진은 샐샐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황제이자, 그 누구보다 제 표정을 잘 숨기는 이였으나, 아주 어릴적부터 함께 해온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 터,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그 행동에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싶어 한다는 것 쯤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네가 잡아온 마녀 말이야, 마녀."
"...."
"지금 수도에 마녀에 대한 소문들이 자자해, 아주그냥."
"...정확히 무슨 소문이지?"
요것봐라-, 하는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석진에 윤기가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헛생각 하지 말고 빨리 말해보거라, 하는 그 재촉에 석진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수도는 온갖 소문들로 가득했다. 토벌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도포를 뒤집어쓰고 걸음한 저잣거리 속에서 귀에 들려오는 소문들 중 8할이 그 마녀와 관련된 소문이었으니, 석진이 귓동냥으로 건너건너 찾아간 수도 외곽의 건물들은 새카맣게 탄 흔적들 밖에 남지 않았더라. 그리 만든 것이 바로 그 '마녀'라는 여인이니, 마녀를 실제로 본 이들부터, 온갖 소문을 접한 이들까지, 입에서 입을 타고 흘러가는 소문은 죄다 그 붉은 눈의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석진은 제가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나, 황제가 마녀를 잡아들여 바로 참형에 처했으니, 그 악독한 마녀도 단번에 숨통이 끊겨버렸다더라-, 하는 소문,"
"...."
"둘, 실은 참형을 당했던 마녀가 아직 살아있다더라-, 하는 소문,"
"...."
"셋, 황제가 마녀를 황궁 구석에 숨겨놓고 해가 지면 지는 대로 찾아간다 하더라-, 하는 소문, 정도?"
"그게 전부인가?"
"어, 뭐... 이건 말 안하려고 했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소문이라 말이지, 저를 내려다보는 윤기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석진이 덧붙였다. 그 마지막 소문이라 함은,
"...황제가 마녀를 애첩으로 두었다, 뭐, 그런..."
"...."
"...아니지?"
"...."
"...야, 설마, 진짜? 아니지?"
명백한 헛소문이라 생각하여 입에 담았거늘, 어떠한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 큰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는 윤기에 석진이 기함했다. 야, 진짜냐고!!! 대전에 쩌렁쩌렁하니 울려퍼지는 석진의 외침은 듣는둥, 마는둥 하던 윤기는 얼굴에 퍼져있던 웃음기를 마지못해 지워내며 말했다. 아니다.
"아니니까 걱정말거라."
"...그 반응 뭔데? 어?"
"뭐가,"
"그 찝찝한 반응 뭐냐고."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떠도는구나."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석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윤기는 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애첩이라, 참으로 우스운 소문이 아닐 수 없었다. 마녀의 기세를, 호두각에서의 그 참상을 직접 눈에 담았던 이들이라면, 그 소문을 듣고 단번에 코웃음을 칠 터였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소문, 마녀와 관련된 말들을 전해듣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상소문을 다시금 고쳐쥐며 윤기가 말했다. 토벌에 관해 보고하려던 것이 아닌가, 하는 그 말에 여즉 윤기를 노려보던 석진이 시선을 거두니, 그 장난스럽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눈빛만이 남아있었다. 토벌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성공이라 할 것도 없었다. 제가 도착한 뒤에는 이미, 도적떼들은 온데간데 없이 조무래기들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니.
"도적 떼들은 소탕하였으나, 미심쩍은 부분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순식간에 군신의 관계로 바뀐 그 말투에 윤기가 석진에게 시선을 두었다. 미심쩍다 함은? 하는 그 물음에 석진이 몸을 일으켜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는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열흘만에 도적떼들을 모두 소탕하였다 폐하께 보고드렸으나, 실은 아닙니다."
"하면?"
"송구하오나, 소인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도적떼들이 모두 소탕된 후였습니다."
윤기는 턱을 괴던 손을 내렸다. 나른하니 풀어져있던 몸을 곧추세우고는 석진을 올곧게 바라보니, 그 눈이 마치 범의 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자세히 말해보라, 윤기가 말하니, 석진이 잠시간 다물었던 입을 다시금 열었다.
"근방의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황군이 도착하기 하루, 내지는 이틀 전부터 도적떼의 발걸음이 끊겼다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더니,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질 않았다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을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만..."
"...."
"며칠 지나니 몇몇 도적들이 눈에 보이긴 하더군요. 허나 황군이 나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경계를 수비하던 군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정도의 도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이전에는 그들보다 훨배 강한 이들이 극성이었다 하더군요."
“갑자기 세력이 약해졌다?”
“예, 하여 며칠 더 머물러봤지만, 이제는 도적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경국이 개입한 것은 아니더냐.”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정찰을 나갔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요괴의 소행이라 보는 것이 옳을성 싶습니다. 석진의 말에 윤기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툭, 툭, 곧은 손가락으로 황좌를 반복적으로 두드리는 소리만이 대전에 울려퍼지니, 저도모르게 흘러나오는 윤기의 살기에 석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요괴의 소행이렸다. 도적 한 명 당, 훈련받은 군사 하나가 상대하기 벅찬 이들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석진의 말마따나 요괴의 소행이다-, 라고 결론짓는 것이 당연할 터였다. 헌데 어째서? 왜? 요괴의 소행이라 함은, 곧 요괴가 인간을 도왔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윤기의 미간이 점차 좁혀졌다. 귀찮기 짝이 없구나, 하는 윤기의 말에 석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검은 눈, 노을에 비친 눈빛이 홍월의 눈과 닮아보이는지라, 윤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멍하니, 그 눈동자를 바라보던 윤기가 몸을 일으킨 것은 순간이었으니, 빠른 발걸음으로 황좌에서 내려오는 윤기를 보는 석진의 눈마저 크게 뜨였다. 폐하, 어디가십니까? 하는 석진의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윤기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이 어딘가 초조하기 짝이 없어, 석진은 저도 모르게 윤기의 뒤를 따랐으니,
“...마녀가 호국에 온 지 얼마나 지났더냐,”
“예, 예? 마녀라 함은... 아, 그 붉은 눈의 여인이 궁에 들어온 지는, 닷새가 흘렀습니다,”
궁인의 대답에 석진의 눈살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윤기가 대전을 박차고 나섰다. 폐하, 어디가십니까! 하는 궁인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윤기가 걸음을 빨리하였으니,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은 틀림없이 화빈당인지라.
마녀가 궁에 들어온 것이 닷새 전, 수도에 불을 지른 날이 엿새 전이라, 마녀가 호국에 머물렀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그녀가 경국에 발을 붙이고 있다, 호국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아귀가 딱 맞아떨이지지 않는가. 도적 떼를 소탕하고도 남을 힘이야 그녀에겐 충분할 터이니, 만일 이 도적떼를 소탕한 것이 그녀라면...
윤기는, 속에서 울컥, 차오르는 무언의 감정에 걸음을 멈칫했다. 그래, 마녀가 도적 떼를 소탕한 자라면? 그 뒤에 저는 어찌하고 싶은 것인가. 마녀가 사람을 위해, 그것도 호국의 변방, 아주 작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도적떼를 처리했다, 그리 생각하고 싶은 것일까?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이, 단지, 마녀가 실은 소문보다 악독하지 못하다-, 그 사실에 안도함으로써 찾아온 감정인가? 혼란스러움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속이 울렁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단숨에 느려진 윤기의 발걸음에 이상을 느낀 석진이 그의 곁에 가 그를 살필때 까지도, 윤기는 제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였으니, 이 울렁이는 감정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고-, 답답함에 제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더랬다.
* * *
“호국에 오기 전엔 어디에 있었지?”
난데없이 들이닥친 손님들에 홍월이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신지요, 하는 그 목소리에 졸음이 가득하였다. 그 앳된 모습에 석진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온갖 흉악한 소문들과 악독한 행실로 가득한 마녀의 소문들과는 다르게 직접 마주한 그녀는 붉은 눈을 가졌을 뿐인, 그저 평범한 소녀일 뿐이었으니, 석진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었다. 아무리 보아도, 저 조그마한 아이가 마녀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황제와 마주한 홍월이 멍하니 대답했다. 언뜻 느껴지는 소란스러움에 궁 내의 기척을 읽어보면, 황제와 도제조의 등장으로 화빈당이 몹시도 시끄러웠으니, 호국의 주인을 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홍월, 제게 향하는 살기들이 따끔거릴만큼이나 매서웠다.
어린 궁인이 능숙하게 다과를 내어왔다. 앉거라, 하는 황제의 명에 그제야 홍월이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달여낸 궁인이 황제와 홍월의 잔을 채웠다. 비릿한 향에 홍월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 비릿함을 느끼는 이는 저 뿐이었던지라, 홍월이 매서운 붉은 눈으로 찻잔을 고루 살폈다. 이상할 것 없는, 새하얀 도자기 잔,
“다시 묻지, 호국에 오기 전엔 어디에 있었느냐?”
“.....”
“혹, 경국에 있진 않았더냐?”
“...전 여우가 싫습니다.”
질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답에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석진도 마찬가지였다. 무례도 저런 무례가 없다, 감히 일국의 황제 앞에서 저 무슨 태도란 말인가. 허나 황제인 윤기가 가만히 있는 한, 석진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윤기는, 찻잔을 양 손으로 고이 들어 찻물을 홀짝이는 홍월을 빤히 바라보았다.
“경국엔 도적떼가 많지.”
“.....”
“그 도적떼들이 기승을 부려 호국의 경계를 침범하니, 경국과 호국 경계 근방의 마을이 죄다 쑥대받이 되었다.”
“.....”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도적 떼들이 사라젔다."
“.....”
“도제조는 이를 요괴의 소행이라 보더군. 나 또한 그리 생각하고, 그리고,”
“.....”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네가 호국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때와 딱 맞물리더구나.”
“제게 무슨 대답을 바라십니까?”
붉은 눈동자, 그 올곧은 눈빛이 황제에게 향했다. 네가 그런 것이냐? 윤기의 물음에 그 시선이 다시금 깨끗한 찻잔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저는 여우가 참, 싫습니다.”
“...아까부터 웬 여우 타령이더냐,”
홍월이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올렸다. 문 틈 새로 흘러들어오는 인기척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보이니, 황제의 눈가가 움찔거리는 것이 그 눈에 담겼다. 속이 들끓었다. 불이붙은 것 마냥 속이 뜨겁기 그지없었다.
“경국의 왕을 조심하십시오.”
“...왜지?"
“그는 호국의 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되려 적으로 여기지요.”
“호국이 경국과의 관계가 좋다고 할 순 없으나,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지금까지 경국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경국의 현 왕이 다른이들에 비해 너그럽기 때문이지요.”
“.....”
“그러니 더욱 더, 경국의 왕을 조심하십시오. 경계하십시오. 가까이 두지 마십시오.”
“.....”
“제가 죽어 사라진다면, 더더욱 그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울컥이며 핏불이 고였다. 투둑, 하며 추락한 선혈의 덩어리들이 옷자락을 붉게 적시니, 그 선혈마냥 붉은 눈동자를 잘도 접어가며 웃어보인다. 파리하게 질린 낯으로, 잘도 웃는다. 석진이 손을 뻗었을 적에는, 윤기가 놀라 그 눈을 크게 떴을 적에는, 이미 늦었을 터,
“황의, 황의를 불러오라!”
“갑자기 무슨...”
홍월의 몸이 추락했다. 화빈당의 바닥에 짙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
늦어서 죄송해요 :(
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몸이 안 좋아서 부득이하게 연재가 늦어지게 되었어요ㅠㅠ
지금은 괜찮아진 상태니까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당😊
다들 코로나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