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지묘
(마녀의 고양이)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트리거 경고,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바람이 차가웠다.
윤기는, 어느새 제 품에 안긴 채 색, 색,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버린 홍월을 내려다보았다. 고운 이마에 새벽의 어스름한 볕이 비추니, 안그래도 새하얗던 피부가 더 곱게 보였다. 볼록한 이마, 살포시 감긴 눈. 오똑한 콧날을 지나 산호빛의 붉은 입술에 닿은 윤기의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참으로 곱구나, 저도 몰래 중얼거린 윤기가 홍월을 받치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가벼운 몸뚱이가 그에 의해 들어올려졌다. 달디 단 잠에 빠진 고개가 윤기를 향해 기울었다.
"...."
가둬두고싶다.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도록, 이 황궁에, 제 눈 앞에 가둬둔 채로, 그리 살아가고 싶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들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윤기가 홍월을 조심스레 이부자리 위로 내려놓았다. 그 온기가 사라진 탓일까, 잠시간 뒤척이던 홍월이 다시금 고른 숨을 내뱉었다. 색색이는 숨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윤기는 그 모습을 한순간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저도 저가 왜 이리 행동하는지 모른다. 어째 이 여인 앞에서는 제 몸이 멋대로만 움직이는 것 같은지. 창문 너머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던 검은 머리카락이 새하얀 얼굴에 내려앉았다. 바람을 따라 그 고운 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살랑이며 제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에 살포시 찌푸려진 홍월의 미간을 보던 윤기가 손을 뻗었다. 밤을 닮은, 결 좋은 흑색의 머리카락이 그 손에서 흩어졌다. 얼굴 위에서 마구잡이로 흩날리던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정리한 윤기가 그것들을 한데 모아 홍월의 작은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내가, 널,"
죽일 수 있을까. 채 내뱉지 못한 말들이 그 입에서 흩어진다. 홍월의 이마 부근에서 머물던 윤기의 손이 차츰 내려갔다. 코에서, 입으로. 또 입에서, 목으로. 그 새하얀 목덜미 위로 그림자가 지니, 얇디 얇은 목이 뼈마디 굵은 윤기의 한손에 죄 들어찼다. 금방이라도 그 여린 목을 조를 듯, 윤기의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불거졌다.
"...."
허나 그뿐이었다. 그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일 따위는 없었으니.
그 새하얀 목을 틀어쥔 손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참이고 그 목 부근을 배회하던 손을 거둔 윤기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다급한 발걸음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적막하기만 한, 텅 빈 화빈당의 복도를 빠른걸음으로 걸어나가면서도, 그 신경은 온통 한 곳으로 쏠려있었다. 문득 걸음을 멈춘 윤기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손, 그를 바라보던 윤기가 허-, 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쳤구나, 내가. 잠시간 들었던 감정이 망설임 뿐만은 아니라서, 분명 미약하게나마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이었기에.
"...폐하,"
저를 부르는 낯익은 음성에 윤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화빈당의 문 앞을 지키던 석진이 저를 퍽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멈추었던 발걸음을, 윤기가 마저 내딛었다. 그 곧은 걸음이 향하는 곳은 분명 대전이라, 석진은 더는 첨언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멈칫거리던 발걸음은, 곧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정한 듯 올곧게 나아갔다.
"...'그'를 불러와라."
윤기가 명했다. 석진이 그 명을 받드니, 윤기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는 어딘가로 멀어졌다.
탁-,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홍월의 눈이 뜨이니, 그 붉은 눈동자가 잠시간 허공을 배회했다. 아, 하는 단말마의 신음을 흘려낸 홍월이 이내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어보녔다. 목을 감싸던 따뜻한 손의 온기가 생생하다. 홍월이 제 목으로 손을 가져다대었다. 윤기가 제게 했던 것 처럼, 금방이라도 숨통을 조여버릴 듯, 제 목을 쥐었다. 펄떡이는 아주 옅은 맥박이 손 끝에 느껴졌다.
"...언제쯤,"
날 죽여주려나, 홍월이 중얼거렸다. 제 목을 조이던 손은 그로부터 멀어진지 오래였다. 연한 그 피부에 불그스름한 자국이 남았다. 호의일까, 복종일까, 혹은 그 반대일까. 저와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그녀를 죽일 방법을 찾아내려 애쓰면서도, 정작 손아귀에 틀어쥔 제 목을 직접 꺾지는 못한다. 그 굵직하고 따뜻한 손으로 얇은 제 목을 한참이나 쥐고 있었음에도, 그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재밌었다. 홍월은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울 뿐이었다. 마녀의 고양이는, 그 주인에게 복종하라. 제가 만들어낸 범의 핏줄을 이은 자이니 그 문장에 따라 제게 복종해야만 하면서도, 정작 때가 되었을때, 그가 제 명에 따라 저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단지, 단 한번의 망설임에서 피어오른 의심이었다.
홍월은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따뜻한 손길을 오랜만에 받은 탓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인지, 복종에 의한 호의일지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도모르게 입꼬리를 어여쁘게 말아올리며, 홍월은 목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왠지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 *
황제가 화빈당으로 걸음하는 일이 많아졌다. 저도 모르게 깊게 잠들었던 홍월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어스름한 달빛을 고스란히 맞으며 제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황제가 보였던 날이 첫번째 날이요, 그 다음날에도 황제는 병문안 이라는 시덥잖은 핑계를 대고는 아침 저녁으로 화빈당으로 걸음하는 것이었다.
"호국의 황제라는 자리는,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여유로운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여유롭다니,"
"눈 코 뜰새 없이 바쁘신 줄로만 알았거늘, 저와 이리도 자주, 오래,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셋째 날인 오늘이 되어서는 저녁 바람이 선선하니 걷기 좋다는 이유 하나로 홍월에게 산책을 권하지 않았던가. 넓다란 호국의 황궁, 그 커다란 정원 한복판을 거니는 황제의 발걸음에 맞추어 홍월이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혹 내가 불편하기라도 한 것이냐? 하는 황제의 물음에 홍월이 미소를 띄운 채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곱게 끌어올린 입꼬리를 내보이다 홍월이 입을 열었다.
"도제조께서 저를 찢어죽일 듯 쳐다보시는 것 말고는 괜찮습니다."
"...."
그 목소리에 장난끼가 다분한지라,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석진이 움찔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윤기가 고개를 돌려 석진을 바라보았다. 열걸음 남짓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을 좇는 석진의 얼굴에는 심통, 그 엇비슷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니, 윤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마도, 그 심통의 원인이 저에게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미 제 앉은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잔뜩 쌓인 상소문들이 윤기의 눈 앞을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윤기는, 석진이 절대 바라지 않았을 말을 내뱉어버리는 것이었다. 도제조는 여기서 대기하라, 는 윤기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석진의 얼굴이 더더욱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폐하-, 하며 무언가 말을 하려던 석진의 행동을 한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오 막아낸 윤기가, 홍월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는 정원의 중앙쪽으로 뛰다시피 달아났다. 석진의 짙은 한숨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기도 했다.
"저리 두고 가도 되는 것입니까?"
"안될 건 또 뭐가 있느냐. 너도 바라던 바 아니더냐?"
"음... 그저 한 번 던져본 말일 뿐이었지만요, 의외십니다.”
“의외라?”
“소녀의 청을 그리 쉽게 들어주실 줄은 몰랐단 뜻입니다-,”
그러냐-, 하며 윤기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티끌 하나 없는 맑은 웃음이었다. 그들은 정원을 거닐었다. 도란도란, 서로간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그리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질 않았다.
유난히 붉은 노을빛이 홍월의 머리칼에 물들었다. 흑단마냥 새카맣던 머리칼이 그 빛을 받아 이제는 핏빛마냥 검붉은 빛으로 빛났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윤기가 저도 모르게 홍월의 머리로 손을 뻗은 것은. 마디가 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머리카락들이 퍽 부드러웠다.
“이 꽃은 무엇입니까?”
어여쁜 붉은빛을 자랑하던 꽃이 툭, 힘없이 꺾인다. 한 잎, 한 잎, 겹쳐진 붉은 꽃잎이 홍월의 손 안에서 흩날렸다. 장미라 부르더구나, 하는 윤기의 말에 홍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요, 하며 곱게 모았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팔랑거리며 붉은 꽃잎이 내려앉는다. 홍월은, 그 꽃잎을 닮은 붉은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툭, 하며 바닥으로 추락한 꽃잎이 땅의 물기에 촉촉하니 젖어갔다.
“저를 죽일 방법은 찾으셨나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것이지.”
“붉은 꽃잎이 떨어진 꼴이 꼭 핏방울 같아서요.”
툭, 툭, 하며 꽃잎이 내려앉았다. 한 송이의 꽃을 만들어내었던 꽃잎들이 홍월의 발치에 쌓여갔다. 붉은 꽃잎은, 붉은 노을빛을 받아 더더욱 붉은 빛을 내었으니, 홍월의 말마따나 그 모습이 꼭 핏물같아 보이기도 했다.
푸른 줄기를, 홍월이 가차없이 꺾어냈다. 따끔, 하는 감각에 꺾었던 꽃을 놓친 홍월이 제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무언가에 찔린 듯,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윤기가 그 손을 움켜쥐더니, 조심스레, 제 옷소매로 핏방울을 닦아낸다. 하얗던 옷소매가 붉게 물들었다. 홍월은 말 없이 그 장면을 눈에 담았다.
“괜찮으냐? 장미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으니 조심하거라.”
“예,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지요.”
“...네 죽음을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풀어 알아보는 중이다.”
“그렇군요.”
“...나는 꼭, 너를 죽일 것이다.”
“마땅히 그러셔야지요.”
홍월이 대답했다. 목소리에 고저가 없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감한 목소리가 그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윤기는 한참이나, 꽃을 쥐락펴락하는 홍월을 내려다보았다. 죽일 것이다, 죽여야 한다. 저도모르게 다짐하며 그 고운 낯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와, 동그란 이마 아래 자리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눈. 제 죽음을 입에 담으면서도 한치의 망설임과 미련도 보이지 않는 여인.
“서운하지 않으냐?"
저도모르게 튀어나간 말에 윤기가 입술을 깨물었다. 잔뜩 부르튼 입술이 날카로운 이에 베여 비릿한 피를 흘려보냈다. 홍월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언제나 그러했듯 무감한 표정,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가 윤기에게 향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미친것처럼 제게 달려들 적에도, 독을 삼키고는 피를 토하며 쓰러질 적에도, 몇날몇일을 앓다 겨우 눈을 떠 저를 맞이하였을 적에도, 저 붉은 눈동자에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습니다.”
“.....”
“되려,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다?”
“예, 한낱 요괴일 뿐인 저와의 계약을 이리도 잘 지켜주시는데, 좋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서운하지도 않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구나,”
“이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홍월이 말했다. 그 예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홍월의 시선이 다시금 장미에게로 향했으나, 윤기의 시선은 여전히 홍월에게 머물러 있었다.
“왜 죽음을 원하지?”
“.....”
“죽기를 바랄 만큼, 이 세상에 그대를 잡아둘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나?”
“예, 없습니다.”
“.....”
“단 하나도요.”
윤기는 말이 없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아낼 수가 없던 탓이었다. 미련을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지 그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손에 쥐었던 꽃을 바닥으로 떨구고는, 그 미려한 발걸음이 윤기를 앞질러 정원을 빠져나간다. 윤기의 걸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뼈마디 굵은 손이 장미의 푸른 줄기를 잡아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그 하얀 손에 생채기를 내었으나,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거칠게도 꽃을 꺾어낸 윤기가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기 그지없는 뒷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뜀박질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걸음이 이내 뒷모습만 보이던 여인을 따라잡으니,
“그대는 장미를 닮았다.”
화려하고, 가시가 많아. 뒷말을 삼켜낸 윤기가 제 뒷목을 한번 쓸어내렸다. 홍월의 붉은 눈을 한번 마주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지나처 정원을 빠져나간다. 서두르는 그 귓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윤기의 뒷모습을, 홍월은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저기, 담벼락 너머로 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돼는 순간까지, 홍월의 시선은 그 뒷모습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내 석진이 분통을 터트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홍월음 잠시간 멈추었던 발걸음을 내딛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달빛을 받은 그 고운 얼굴에 답지않게 미소가 걸려있던지라,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넋을 놓았을 만큼 아름다웠다.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홍월의 귓가에 피어난 장미를 감쌌다. 윤기가 그 귓가에 꽂아놓은, 어여쁜 붉은 장미였다.
“장미를 닮은 사람은 따로 있는걸요,”
가시에 긁힌 홍월의 눈가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따끔거리는 상처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홍월이 제 귓가의 장미를 빼어들었다. 곱다. 달큰한 향이 꽃에서부터 피어올랐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미를 보던 홍월이 톡, 톡, 하며 그 줄기에 난 가시를 떼어냈다. 하나, 둘, 그 걸음을 따라 자그마한 가시들이 길바닥에 쳐박혔다. 날카로운 가시들을 죄 떼어내고 보니,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 한송이와, 앙상하기 그지없는 줄기 하나만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손에 꽃을 쥔 채로, 홍월이 정원을 빠져나왔다. 윤기와 석진은 정원을 벗어난지 오래였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정원의 입구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홍월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길의 끝에는 화빈당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지워질 줄을 몰랐다.
홍월의 새하얀 볼에 자리하던 상처는, 흉 하나 없이 깔끔하게 사라진지 오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