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2화 첫사랑 VS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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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서 3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의 반을 찾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찍 오니, 아직 등교한 사람이 없었다.
정국은 항상 고집해 왔었던 창가 쪽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철이 없었을 그 시절에는 여자애들 꼬시고 다니는 게 좋았었던 정국은 공부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지.

이번에는 꼭 반드시 서울 인 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시간표대로 국어책을 꺼낸 정국이 진도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반의 문이 열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도 잊은 적이 없는 첫사랑, 희주가 들어왔다. 등교한 사람이 정국이 밖에 없는 걸 확인한 희주는 손을 들고 인사를 하는 정국을 가볍게 무시한 채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정국을 좋아하지 않는 희주에게는 둘만 있는 이 상황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한편 인사를 씹힌 정국은 머쓱함에 들고 있던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희주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인사까지 받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은 못 했었다. 막상 무시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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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전정국,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한 번도 일찍 등교한 적이 없는 놈이 무슨 일이래."





무시는 당해도 망연자실하지 않고 어떻게 말을 걸을지 곰곰이 생각하던 정국에게 어깨동무를 해오는 누군가의 의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공부도 못하고 카사노바였던 자신과는 달리 공부도 잘하고 여자 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던 자신의 절친 지민이였다.





"해가 서쪽에서 뜨기는... 나 오늘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할 거야. 앞으로 여자애들도 안 만날 거고."

"헐... 너 머리 어디 부딪혔냐?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머리 다친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이제 나도 내 앞길을 생각해서 정신 차려야지."





언제까지 이 지경으로 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하는 전정국에 박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새끼, 진짜 머리에 문제 생겼구나. 자신이 알던 그 전정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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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지민아. 나 공부 좀 가르쳐 줘라."





성을 빼고 다정하게 부르는 전정국에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원래부터 새끼, 개자식 등등으로 서로를 불러왔던 사이기에 더 남사스러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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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진짜. 내가 네 공부를 왜 가르쳐 줘 새끼야."





진짜로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면 반장한테 부탁해. 징그럽게 나한테 이러지 말고. 극혐이라는 표정을 보여주고서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박지민이 말하는 반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엄청나게 잘했었다고 소문난 영재 중에 영재였다. 이름은 민하린. 창공 고등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전정국을 짝사랑하는 여자애들 중의 한 명이었다. 만나본 여자도, 자신을 쫒아다닌 여자도 수없이 넘쳤던 전정국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지나쳐 버린 민하린을 기억하지 못했다.





"반장... 1학년 때 반장이 누구였더라...?"





반을 둘러보면서 반장일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지만, 영 감이 오지 않는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감까지 다 떨어져 버린 건지 아님 원래부터 감이 좋지 않았던 건지. 막 살았어서 그런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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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전정국, 너 진짜 왜 이따위로 살았니."





혼잣말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을 때,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조회하려고 담임쌤이 들어오셨다. 쌤이 들어오시자, 두 번째 줄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여자아이가 일어서면서 선생님께 차렷, 경례를 한다. 저 아이가 민하린, 전정국의 반 반장인 것이다.





"찾았다, 반장."





그 후로 1교시인 국어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들은 정국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반장에게 다가갔다.

필기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반장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반장은 정국을 보자마자 두 눈이 크게 확장된다.





"저기, 반장."

"ㅇ,어... 정국아. 무슨 일이야...?"





자신에게 단 한 번도 관심을 준 적이 없던 전정국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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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나... 공부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부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황당할 만한 말이었다. 전에는 말도 섞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와서 하는 말이 공부 좀 가르쳐 달라니? 참 웃기지 않나.





"어...? 못 가르쳐 줄 건 없는데..."

"고마워...!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게."





덥석- 잡은 손에 하린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다. 고마운 마음에 잡은 손이 하린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어 놓고 있을지는 전정국은 모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