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은 죄가 없다니까?

05 잃어버린 시간

 

전생은 죄가 없다니까?

5화


 

― 헨리 크로이덴 POV ―

사람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익숙하다.

피 냄새도, 비명도, 무너지는 얼굴도 매일 보는 풍경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르웬이 쓰러져 있던 그 밤은,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아가씨를… 안으로 모셔라.”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를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분류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그래야만 했으니까.

 

“공작님.”

 

시르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 말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마력 과사용인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담담하게 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력 과사용'

 

그 말이,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그 하녀는 괜찮은가”

 

“웬디 말입니까? 큰 부상은 없습니다.

본인은 아가씨께서 끝까지 방향을 비틀었다고...”

 

“들었다.”

나는 말을 끊었다.

 

시르헨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작님.”

 

“말해보거라”

 

“기억을 잃은 뒤의 아가씨는…

이전과 너무 다릅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신 것처럼...”

 

“그래. 다르지.

…그래서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군...”

 

현명한 시르헨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 테니까.

 

 


 

 

나는 혼자 집무실에 남았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문서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라비에르 공작가의 공식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전이자 기록이 쓰여져 있었다.

 

“…또 봐도, 이해가 안 되는군.”

 

이 세계에는 드물게,

다른 세계에서 '낙오된’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서울

비 오는 밤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차가 미끄러졌고 경적 소리가 귀를 찢었다.

마지막으로,

 

“ㅂ..비켜 !!!!!! ”

 

누군가를 밀쳐냈다.

 

.

.

.

 

그 다음 눈을 떴을 때, 나는 이 세계에 있었다.

이름은 헨리 크로이덴이고, 공작이라는 꽤 높은 신분이었다.

그리고 약혼자는 악녀 에르웬이었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기억을 잃은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에르웬과 너무 달랐다.

 

이전의 에르웬 눈빛은 늘 차가웠고, 선택 앞에서 망설이지 않았다.

사람이 다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사람이 다칠까 봐, 자기 자신을 버리려 했다.

 

“…웃기는 군”

 

나는 이마를 짚었다.

“연기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문득,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스쳤다.

 

나는 특이하게 전전생의 기억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아직 이 세계도, 저 세계도 아니던 때가 있었다.

뜨거운 여름 날, 쓸데없이 시끄럽던 매미 소리가 머리를 맴돌던 날이었다.

 

“…야, 너 왜 그렇게 착해?”

 

“사람 다치게 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 애가 웃으며 말했다.

그 얼굴이 어제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하녀를 피하던 에르웬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럴 리 없어.”

 

 


 

 

나는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에르웬의 방 앞에서 잠시 멈췄다.

 

“…들어오지 말라면, 꼭 그러는구나.”

익숙한 기척이 느꼈졌다.

 

“…리오.”

어둠 속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이 재밌길래.”

 

“…왜 나타났지.”

 

“확인하려고,”

 

“무엇을 말이지?”

 

“네가 언제 무너질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 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그래?”

 

리오는 고개를 기울였다.

 

“보고받은 기록으론... 전생엔 학살자, 현생에선 조종자였는데.”

 

“…기록이 틀릴 수도 있잖아.”

 

"나도 어제는 ㅎ 놀라웠다고~ 믿을 수가 없었지”

리오는 웃었다.

"그리고... 지켜보는 중이야. 나도 꽤 혼란스럽거든?"

그리고 덧붙였다.

“넌 알고 있잖아. 네가 왜 이 세계에 왔는지.”

 

“….”

 

"그리고 왜,

그 애를 보면 이렇게 흔들리는지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오는 그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천천히 사라졌다.

 

문 안쪽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자고 있는 에르웬의 숨소리였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 너머를 향해 낮게 말했다.

 

“…이번엔.

.

.

“…이번엔 널 다시 확인해볼꺼야.”

 

그 말이, 누구에게 향한 건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전생의 에르웬에게인지,

지금의 모르겠는 그 사람에게인지.

 

아니면—

이미 한 번 잃어버린,

여름 속 그 애인지.

 

“…”

에르웬을 빤히 보다가 나는 등을 돌렸다.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나는 이미,

그녀를 또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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