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간 걘 아니야
그날, 넌 없었어.



명재현
“미안해. 진짜 미안해.”

재현은 커피를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여주는 말없이 그 모습을 봤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폰 꺼진 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그날, 친구 생일이었고, 술 마신다고 시끄러워서…”

여주의 눈이 천천히 내려갔다.

테이블 위, 커피잔의 그림자.

그림자가 흔들리듯, 마음도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최여주
“그날,”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최여주
“나 오빠 연락만 기다렸었어. 되게 아픈 줄도 모르고“

재현이 눈을 들어 여주를 봤다.


최여주
“숨 안 쉬어져서 쓰러졌고, 밤새 링거 맞았어.“


최여주
“전화도, 문자도 아무 반응 없어서…룸메가 대신 119 불렀어.”


명재현
“진짜… 몰랐어. 나 그날 폰 꺼놨었고, 정신도 없고—”


최여주
“그게 문제야.”

여주가 재현의 말을 잘랐다.

말이 잘려만 봤지 잘라봤던 적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재현의 말을 자르고 흠칫 놀라는 여주다.


최여주
“…몰랐다는 말, 오빠가 참 자주 해. 뭘 몰랐는지, 내가 뭘 얼마나 말했는지… 기억은 해?”


최여주
”미리 말했잖아. 나 요즘 힘들다고.“


최여주
“…나한텐 그날이 너무 힘든 날이었어. 그냥 한번쯤, 단 하루만 좀 알아주길 바랐는데…”

재현은 숨을 삼켰다.

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근데 그날, 넌 없었어. 내가 필요한 날, 네가 없었어.”

재현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말한다.


명재현
“그럼… 친구 생일 파티도 가지 말라는 거야?”

여주의 얼굴이 굳었다.


최여주
“…뭐?”


명재현
“아니, 그날… 오랜만에 애들 다 모이는 날이었고,약속도 오래 전부터 잡혀 있었고— 너 아픈 거 몰랐잖아. 진짜 몰랐으니까…”

그 순간, 여주의 눈빛이 식었다.

차가운 기류가 테이블 위를 덮었다.


최여주
“……그 말, 지금 진심이야?”


명재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날도 나름 중요한 날이었고… 갑자기 왜 이렇게 나쁜놈으로 몰아가—”


최여주
“몰아가…?”

여주가 작게 웃었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진짜로 지쳐 보였다.


최여주
“난 그냥, 내가 아플 때 넌 내 옆에 없었다는 말 한 거야. 그게 끝이야.”


명재현
“근데 왜 이렇게 갑자기—”


최여주
“갑자기 아니야, 오빠.”

여주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최여주
“계속 쌓인 거야. 근데 그날, 그거 하나로… 끝났어.”

재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주는 커피잔을 바라보다가 일어설 듯 말 듯, 조용히 덧붙였다.


최여주
“…네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왜 내 친구가 날 보면서 ‘걘 아니야’라고 하겠어?”

그 말에 재현은 숨을 꿀꺽 삼켰다.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여주는 잠깐 멈췄다가, 정말로 일어났다.


최여주
“이해시키려는 거 아니야. 그럴 에너지도, 애정도 이제 없어.”

그러곤 천천히, 조용히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