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연 단편 모음 (비주얼)

보라빛 향기

[BG: 마트 사탕 진열대 (강렬한 형광등 불빛, 비 내리는 밤 분위기)]

비가 오기 시작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일기예보에는 전혀 없었단 말이지. 마트 진열대 사이로 발걸음을 더 깊이 옮기며, 눅눅해진 재킷을 가볍게 털어내고 혼잣말로 중얼거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장대비는 진짜 예보에 없던 거라, 축축한 공기 때문에 으스스한 한기가 돌면서 뭔가 톡 쏘면서도 마음을 달래줄 만한 게 간절해지더라고.

늦은 밤 갑자기 몰려온 갈증을 해결해 줄 신맛 나는 레몬 드롭 사탕 한 봉지를 찾아내기 위해 내 눈동자는 바쁘게 진열대를 훑어내려 가. 생각에 푹 잠긴 채로, 앞도 제대로 안 보고 사탕 진열대 모퉁이를 소리 없이 돌았어.

쿵!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누군가의 단단한 가슴팍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어. 중력이 나를 차가운 리놀륨 바닥 위로 정신없이 끌어내리기도 전에, 튼튼한 팔 하나가 내 허리를 빈틈없이 감싸 안아 지탱해 줘.

그 팔이 나를 따스한 가슴 쪽으로 완전히 밀착시키는데, 꼭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K-드라마의 정석 같은 구도야.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혀 왔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본 순간, 세상이 온통 고요해졌지.

(나)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고 숨이 멎은 듯 굳어버린다]

그 사람이었어. 찬연 오빠. 내가 몇 년 동안이나 가슴 앓이 하며 짝사랑해 온 사람.

(찬연) [오버사이즈 보라색 후드티를 입고 / 부드러우면서도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본다]

오빠의 미소는 마트의 그 강렬한 형광등 불빛마저 흐릿하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눈부셔. 깊은 눈동자에는 늘 보아오던 다정함과 깊은 따스함이 고스란히 배 있었지.

진열대 조명이 옷자락 끝에 가닿을 때마다 꼭 오빠 머리 주변으로 진짜 보랏빛 헤일로가 내려앉은 것처럼 보여.

오빠 얼굴이 고작 몇 인치밖에 안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가슴이 터질 것처럼 조여와서, 오빠한테 내 심장의 미친듯한 두근거림이 느껴질까 봐 무서워하며 침을 꼴깍 삼켰어.

(찬연) [나를 조심스럽게 똑바로 일으켜 세워주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내가 앞을 잘 안 봤네, 미안."

그 낮은 목소리가 내 온몸에 그대로 울리는 것 같아. 오빠는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주려는 듯, 내 허리를 감싸 쥔 손을 곧바로 떼지 않았어.

(나) [양 볼로 열기가 확 가라앉는 걸 느끼며 말을 더듬고, 허둥지둥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저, 저도 잘 못 봤어요. 죄송해요."

(찬연)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 위에 맺힌 빗방울을 가볍게 털어내려고 손을 뻗는다]

"어쨌든 이렇게 보니까 좋다. 오랜만이네."

눅눅해진 옷감 위로 오빠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머물렀다 떨어져. '우산이 없어서 비에 젖은 걸 본 게 분명해.' 나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며 속으로 소리를 질렀어.

(나) [붉어지는 얼굴을 숨기려고 필사적으로 사탕 진열대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수줍게]

"네, 오빠도요."

(나) [레몬 드롭 사탕의 마지막 한 봉지를 발견하고 손을 뻗는다]

(찬연) [동시에 똑같은 곳을 향해 손을 뻗어, 비닐봉지 표면 위로 손가락이 스치듯 맞닿는다]

(찬연) [나직하고 싱그러운 장난스런 웃음을 터뜨리며]

"아, 맞다. 너도 이거 좋아했었지."

(나)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말하려 애쓰며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오빠가 드시고 싶으면 가져가세요. 마지막 남은 봉지인 거 아는데, 괜찮아요."

(찬연) [고개를 살짝 까닥이더니, 입가에 부드러우면서도 개구진 미소를 띠며]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사고, 같이 나누어 먹는 거 어때?"

(나) [마트 정면의 하얗게 김이 서린 유리문 쪽을 가리키며 묻는다]

"어디서 나누어 먹어요? 밖에는 비가 이렇게나 쏟아지고 있는데요."

(찬연) [얼굴에 정말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은 미소를 번지며]

"나 좋은 곳 알아. 내가 태워줄게."

말이 되게 문장을 제대로 고르기도 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 찬연 오빠는 내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고, 오빠의 따스한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얽혀 들어왔지.

맞닿은 손끝에서 온몸으로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어. 오빠는 계산대로 나를 이끌어 자연스럽게 사탕값을 치렀고, 비 내리는 주차장을 지나 오빠의 차가 있는 곳까지 자기 재킷을 우리 둘의 머리 위로 넓게 펼쳐 씌워주며 나를 데려가 주었어.

[BG: 어둡고 고요한 산마루 턱 차 안 (창문 너머로 흐려진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야경)]

차를 타고 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히터의 잔잔한 웅웅거림과 와이퍼의 규칙적인 박자감 덕분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렸어. 오빠는 어둡고 고요한 산마루 턱에 차를 세웠어.

언덕 꼭대기에서, 비에 젖어 흐려진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감상하기에 정말 완벽하고 아늑한 숨은 명소였지.

(찬연) [비닐 사탕 봉지를 뜯어 상큼한 레몬 향이 차 안에 퍼지자, 사탕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고 내게 봉지를 내민다]

(나) [사탕 한 알을 꺼내 입에 물고, 폭풍우를 배경으로 서 있는 오빠의 옆모습을 슬그머니 훔쳐본다]

난 정말 이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있구나. 오빠가 내 눈속에 담긴 이 지독하리만치 일편단심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길 간절히 바라면서, 가슴 한 구석에 아련한 통증이 잔잔하게 내려앉았어.

우리는 오늘 밤 정말 기적 같은 우연으로 다시 만났어. 하지만 차 지붕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와 우리를 감싸 안은 온기 속에서, 나는 속으로 남몰래 바라고 있어. 우리가 그저 이 차 안에 평생 이렇게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세상으로부터 숨어 버린 채,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가지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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