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임무

[미리별유치원 : 그리스 로마 신화] Ἄρης

※ 본 글에는 폭력적인 요소와, 잔인한 장면들이 포함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여유가 없어지자 덩달아 사람들의 마음도 아파지고 썩어가는 시기가 있었다.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며 커진 악의 마음이 스멀스멀 음지로 가서 자리 잡아 생긴 것이 '조직'이었다.

선의 편에 서는 조직이었더라면 참 좋았겠지만, 악의 마음을 품은 자들이 뭉쳤으니 그들은 악의 편에 선 조직이 분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선호하는 조직의 순위도 메겨질 정도였기에 음지라고 보긴 어려웠다.

수많은 조직 중에서도 시민 선호도 순위 1위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TH 조직은 말 그대로 악의 끝판왕이었다. 규모는 물론이겠거니와, 그 조직을 이끄는 보스가 조직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TH 조직 보스가 어느 정도였냐, 심기에 거슬리는 조직이 생겼다 싶으면 곧바로 그 조직에 쳐들어가서 기어코 상대 조직 보스의 머리를 잘라 자신의 방에 전시해놓는다고 한다. 마치 조선시대에나 있었던 참수형과 같은 방법으로.

그런 방식으로 TH 조직 보스의 사무실에 전시된 사람 머리만 수십 개에 이른다고 한다. 상대 조직에게만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본인 조직의 조직원도 일을 잘 못하거나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서슴없이 죽이곤 했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걸 말하고 있는 나는, TH 조직의 3년 차 조직원 노여주다. 보스처럼 살인을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이 조직에 기어들어온 이유는 그냥 뛰어난 피지컬과 총명한 머리 덕분에 캐스팅을 당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조직들이 조직원을 암암리에 캐스팅하려고 학교나 회사에 조직원을 숨겨놓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캐스팅한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지금 이 현대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참고로 조직 내부에서는 이름 대신 코드네임으로 부른다. 나는 코드네임 N이고, 보스는 T이다.

전정국 [28] image

전정국 [28]

"좋은 아침입니다-"

굳은 표정에 입꼬리만 올린 채 아침 인사를 하며 출근하고 있는 저 남자는 내 후배, 코드네임 J이다.

노여주 [29]

"J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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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네, 선배. 간밤에 뭔 일 없으셨습니까."

노여주 [29]

"응, 괜찮았지.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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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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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아, 그리고... 어젯밤에 보스가 혼자 나가셔서 의뢰를 처리하고 오셨답니다."

노여주 [29]

"의뢰? 무슨 의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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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보스가 얼마 전부터 사람들에게 내놓은 사항이 있지 않습니까."

노여주 [29]

"아... 그...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이랑 사유 보내면 처리해준다는 그거?"

노여주 [29]

"근데 그거 하는 사람이 진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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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N도 참...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수십 건이 들어오고 있답니다."

노여주 [29]

"수십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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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놀랍지도 않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뛰다 보면 세상은 이미 미쳐 돌고 있거든요."

노여주 [29]

"그래...? 나는 컴퓨터만 두들기니까... 바깥 상황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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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아,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노여주 [29]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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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보스가 팀장인 특별팀 있지 않습니까."

노여주 [29]

"알지."

전정국 [28] image

전정국 [28]

"거기서 새 팀원을 모집하고 있다는데, 보스가 후보들을 직접 추리신답니다."

노여주 [29]

"에? 무슨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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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보스가 조직 내 팀들에게 관심이 좀 많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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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평소부터 눈독 들인 사람들 골라가는 거죠."

노여주 [29]

"오..."

전정국 [28] image

전정국 [28]

"선배는 거기 뽑히고 싶은 마음 없습니까? 여자 팀원 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노여주 [29]

"음... 굳이? 난 지금이 좋아."

노여주 [29]

"너 가르치고, 컴퓨터나 두들기고... 지금 평온하기만 한데 거기로 가면 얼마나 바쁘겠니."

노여주 [29]

"그리고 애초에 보스가 나를 보셨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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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에이, 선배가 뭐 그냥 들어왔습니까? 1년에 2명꼴로 들어온다는 캐스팅 형식으로 들어오셨는데."

노여주 [29]

"...모르겠다~ 거기 가서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거기, 일 안 합니까?"

노여주 [29]

"아, 넵. 이따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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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네. 수고하십시오."

보스가 팀장으로 일하는 팀인 특별팀. 거긴 말 그대로 특별팀이었다. 보스와 가장 가깝게 교류하고 조직 내에서도 알아주는 엘리트 조직원들만이 소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거기를 내가? 말이 안 됐다. 내가 일한 지 비교적 오래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지도 않았고, 엘리트는 더더욱 아니었다. 조직 입성 형식이 캐스팅 형식이라는 게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실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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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여기 혹시, N 조직원 있습니까?"

보스가 사무실에 들어와 나를 찾던 그 일은, 내가 특별팀에 들어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일이었다.

노여주 [29]

"그러니까,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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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그래. 너가 이번에 특별팀에 새로 들어가게 됐다고."

날 불러서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와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특별팀으로 옮겨라... 보스가 원래 성격이 이랬다는 건 대충 알고 있어서 상관없었지만 당장 정든 팀을 떠나야 한다는 게 더 마음에 걸렸다.

나 없으면 J 훈련은 누가 담당할 건데... 내 복잡한 심정과는 다르게 내 인적사항을 서류에 옮겨적고 있는 보스가 야속했다. 그런데 사람 머리를 전시한다는 소문과는 다르게 보스의 사무실은 꽤나 깔끔했다.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인가.

노여주 [29]

"...오늘부터, 옮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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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오늘은 아니고, 내일부터. 팀원들이랑 인사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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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이거 가져가서 내일 특별팀으로 출근할 때 코드네임 K한테 내면 돼."

노여주 [29]

"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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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이건 내 전화번호.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

노여주 [29]

"...네, 감사합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하다는 보스 앞이니까 입을 꾹 닫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가 가보라는 손짓을 하셨고 나는 그에 맞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보스의 사무실을 나갔다.

특별팀으로 옮긴다 하니까 지금 있던 팀이 내게 축하한다며, 거기 가서도 여기 잊지 말아달라며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J는 될 거 같았다고 하면서 자기 걱정 말고 가서 잘 하라는 인사를 했다. 자기 걱정하는 건 아나 보지?

회식을 하자는 팀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간 낼 테니까 다음에 하자는 말로 퉁치며 퇴근 중이다. 3년 동안 일했던 곳이라 정도 많이 들었지만 오늘은 머리가 복잡해서 정말 회식할 기분이 아니었다.

집으로 빨리 가기 위해 평소 잘 다니지도 않는 지름길을 이용했다. 해가 다 졌는데도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이 골목을 정말 싫어했다. 꼭 살인나기 딱 좋은 골목 같아서.

노여주 [29]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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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골목을 지나가다 우연찮게 본 건 보스 T가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평범하게 죽인다기보다는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도록 고문까지 해가며 살인을 즐기고 있었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다리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사람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듯 보이자 보스는 그 사람의 목이 잘려서 바닥에 흥건해진 피를 자기 얼굴과 목에 묻히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악의 끝판왕, 조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괜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과연 이 조직을 처음 탄생시킨 악의 시초가 분명하고도 남았다. 낮에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게 어리석었다. 진짜 사람 목을 자르고 다닐 줄은...

무서움에 발도 못 떼고 충격만 받은 채 골목에 가만 서있었는데 시체 앞에 쭈그려앉아있던 보스와 눈이 마주쳤다. 숨이 헙, 들이켜지고 정적만 흘렀다. 보스의 눈은... 정말 제정신인 사람이 아니었다.

노여주 [29]

"....."

보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날 노려보시다가 이내 웃으시더니 내 쪽으로 걸어와 피 묻은 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으셨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내 귀에 가깝게 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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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너도 저렇게 될 줄 알아."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피 묻은 손으로 내 볼과 목을 쓸으셨고 내 얼굴 꼴이 보스와 똑같아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보스라면 정말 죽일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고개만 끄덕거리니 웃으시면서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골목을 나가셨다.

저런 팀장 밑에서 일해야 한다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노여주 [29]

"...안녕하세요-"

특별팀에서의 첫 근무 날. 3년 동안 일했던 사무실에서의 자리를 다 정리해 이곳으로 옮긴다니 마음이 이상했다.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하기도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하니 걱정과는 다르게 모두가 밝게 반겨주었다. 역시 여기는 팀장만 문제인 거야... 아, 맞다. 어제 말한 코드네임 K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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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처음 뵙겠습니다, N. K라고 합니다."

노여주 [29]

"아, 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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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말 편하게 해도 되나요?"

노여주 [29]

"네네, 편하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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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고마워. 어제 보스가 주신 서류 받을 수 있을까?"

노여주 [29]

"네...! 이거,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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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맞아, 고마워. 너 자리 저기니까 편하게 앉아."

노여주 [29]

"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류를 건네주고 팀원들은 정상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리로 가려고 하는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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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오늘 업무 브리핑하겠다."

보스가 직접 브리핑하는 업무라니... 꽤나 중대할 거 같았다. 그것보다 우선 보스의 그 형형한 눈과 마주쳐서 좋을 건 없으니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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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아, 그 전에..."

보스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신의 삼백안으로 특별팀 팀원들을 모두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은... 나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옅게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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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오늘 새로운 애 왔지? 여기서 3년 동안 일했으니까 일은 알아서 잘 할 텐데 그래도 잘 챙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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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아, 전 팀 어디랬더라?"

노여주 [29]

"...정보수색팀에서 서칭 관련 업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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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어어, 그래. 코드네임은 N이고... 이제 업무 브리핑 시작할게."

어젯밤 보스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나름 다정한 지금 이 모습이 적응이 되질 않는다. 피를 자신의 몸과 내 몸에 묻히며 미소를 짓고 쾌락을 느끼는 거 같았던 보스의 모습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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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오늘은 사무 업무 없고 현장 업무만 2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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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ZE 조직 소탕이랑... 오늘 우리 조직이랑 IY 조직이랑 한 판 하기로 했던 거 다들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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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준비 철저히 하고 나와라, 뒤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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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아, 뒤진다는 건 너네 목숨 끊긴다는 말이니까 오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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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9시부터 11시까지 ZE 조직 소탕 시간이니까, 1분이라도 늦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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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K가 N이랑 같은 포지션이니까 N 잘 챙겨주고. 서류 잘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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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네, 잘 받았고 입력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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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그래. 난 이따가 IY 조직 쳐들어오기 전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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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오늘도 수고해라-"

*

문이 닫히고 보스가 사무실을 나가자 나는 그제서야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짐을 정리했다. 소탕건은 많이 해봐서 익숙하게 한 손으로 타자를 치며 ZE 조직의 정보를 캐냈다.

그나저나 IY 조직이라면... 우리 바로 밑에 있는 조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1등 조직, 거기는 2등 조직. 가끔씩 하던 조직 간의 분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거 같아서 괜스레 애꿎은 손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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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N, 정보 좀 찾았어?"

노여주 [29]

"어... 네. 잠시만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당장 우리 조직 보스만 봐도 절대 어디 가서 꿀리진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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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너도 저렇게 될 줄 알아.'

...3년 동안 보스를 소문으로만 들었어서 참 다행이었네. 그 눈빛과 미소는 정말 악 그 자체였거든. 피와 살육을 즐기는 악의 끝판왕.

특별팀에서의 첫 업무, ZE 조직 소탕을 끝내고 복귀하는 길. 나와 K를 제외한 팀원들은 부상이 있어서 응접실에 먼저 들른다고 했다. ZE 조직이 아무리 소규모 조직이라지만 부상자 발생은 막을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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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첫 업무 어땠어?"

노여주 [29]

"그래도 소탕 업무는 자주 하던 거라...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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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다행이네. 그래도 다음 업무는 긴장 바짝 해놔."

노여주 [29]

"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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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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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어? 선배!"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는 J를 마주쳤다. 하루 못 봤는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싶었다. J도 IY 조직과의 전투를 대비해 장비를 점검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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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선배는 이 아침부터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노여주 [29]

"아, 나 소탕 건 하나 하고 왔어. 나도 이제 올라가서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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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아... 옆에 이 분은..."

노여주 [29]

"아, 특별팀 선배야.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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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헐. 그, 그 분 아니세요? 전설의 슈퍼 컴퓨터 K!"

노여주 [29]

"그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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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아유... 몇 년 전 별명인데... 한물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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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알아봐주셔서 감사해요. 6기 조직원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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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네! 너무 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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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럼 봐야 할 업무가 많아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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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8]

"어, 네! 안녕히가세요- 선배 나중에 봐요!"

노여주 [29]

"그래, 나중에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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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후배가 참 밝네."

노여주 [29]

"그렇죠, 뭐... 제가 거의 키운 앤데 처음 왔을 때의 그 사슴 눈망울이 아직도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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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지금도 사슴 눈망울이던데 ㅋㅋㅋ"

K와 다소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특별팀 사무실로 향하고 있던 그때, 건물 전체에 고막을 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아- TH 조직 전 조직원에게 알립니다. IY 조직이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본부 건물 1층에 도착했습니다."

"조직원들은 빠르게 장비를 무장하고 전투태세를 갖춰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화목했던 분위기가 안내방송 하나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나와 K 둘 다 아무 말 없이 특별팀 사무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평온했던 조직 본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와 K가 장비를 챙겨 나왔을 때는 이미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조직원들과 여기저기서 들리는 포격 소리와 비명 소리. 그 어떤 조직 분쟁도 지금 이 분쟁보다 더 잔인하고 참혹할 수는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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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S, 들리나. IY 조직 동태 파악 완료했다."

노여주 [29]

"지금 5층까지 올라갔고 사무실 하나하나 다 털고 있습니다."

노여주 [29]

"6층 진입, 정보수색팀 사무실 진ㅇ..."

내 전 팀의 사무실에 IY 조직이 쳐들어간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침입을 대비해 설치해놓은 도청장치를 급하게 켜서 귀에 갖다 댄 순간, 팀원들의 비명소리와 총 난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서는 J의 비명소리도 있었다.

다시 도청장치를 끄고 IY 조직 위치 브리핑을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브리핑을 특별팀에게 무전으로 전달해주던 K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무전을 치는 방식으로 날 위로해주셨다.

노여주 [29]

"...7층 진입, 훈련실 진입,"

조금씩 진정해가면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는데 내 얼굴 옆으로 총알이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내 스쳐 지나간 부분에는 피가 고여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온몸이 굳은 채 천천히 뒤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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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내 뒤에는 앞을 주시하며 총을 겨누고 있는 보스가 서있었다. 놀라 앞을 다시 돌아보니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IY 조직의 조직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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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이쁜 얼굴에 상처내서 미안~"

보스는 내 볼에 흐르고 있는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곤 웃으며 쓰러져있는 조직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골목에서 봤던 그 미소를 지으며, 품 속에 있던 단도를 꺼냈다.

IY 조직 조직원 중 한 명이, TH 조직 보스에게 목이 잘려나갔다.

보스는 웃으며 잘려나간 목에 흐르는 피를 정장 소매로 대충 닦아냈다. 그리고 조직원의 목에서 무언가를 가리키며 나와 K를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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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이 새끼가 보스였네. IY 조직."

나와 K가 겁에 질려 아무 말 안한 채 서있자 보스도 아무 말 없이 잘려나간 머리를 들고 본부의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IY 조직 조직원들에게 보여주려는 거 같았다.

노여주 [29]

"어젯밤에..."

내가 겁에 질려서 무의식적으로 조용히 중얼거린 걸 어떻게 들었는지 1층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보스. 그제야 보스가 어제 나에게 한 말이 다시 상기시켜졌다.

어디서 얘기하고 다니면, 나도 저렇게 된다고...

노여주 [29]

"...보스, 잘, 잘못..."

내가 잘못 했다고 용서를 구하려 하자 보스는 내 말을 막으려는 듯 피 묻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곤 자신의 쇄골에 새겨져있는 타투를 보여줬다.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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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너까지 죽일 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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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마."

보스는 그렇게 말하고 난 후에도 한참을 날 노려보더니 본부 1층으로 향했다. 그 날 보스가 진짜로 IY 조직 보스의 머리를 들고 나타나서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그 소문을 퍼트렸던 사람도 보스 손에 죽었을까.

그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했지만 그 후 근무할 때 특별팀에서 보스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쇄골 부근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형형한 눈빛을 보내는 보스 때문에 나는 특별팀에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3년 동안 일한 직장을 그만뒀다.

나 하나 조직을 그만둔다고 해서 조직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아직도 TH 조직 보스가 악의 시작과 끝이라는 인터넷 기사에는 그를 존경한다는 댓글이 가득 달려있었다. 보스를 실제로 못 본 애들이나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거지.

마음이 조금 안정되고 나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J의 빈소였다. J의 실명도 그때 처음 알았다. 넌 내 실명 모르겠지. 이제라도 알려줘야겠다 싶어서 J의 빈소 앞에서 내 실명과 코드네임을 30번 정도 번갈아 부르고 나서야 집에 돌아갔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는 그때 봤던 보스의 쇄골에 있던 타투를 알기 위해 온갖 나라의 언어를 뒤지기 시작했다. 2개월 정도 지나자 그리스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뜻은 1개월이 더 지나고 알았다.

' Ἄρης (아레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 중 한 명이고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있다. 피와 살상을 즐기며 잔인하고 야만적이다. 올림포스 12신으로 구분되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을 읽다가 보스의 모습과 너무 똑 닮은 신이라고 생각돼 끝까지 다 읽지도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정말 신화에만 존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아직도 가로등 불빛 하나 없던 골목에서 봤던 보스의 눈빛, 미소, 비릿한 향기, 내 얼굴과 목에 피를 묻히던 보스의 손길까지 모든 걸 기억한다.

내가 살아가려면 말할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그 날의 불쾌한 내음을 평생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보스가 날 쫓아와 죽이는 꿈을, 그 날 골목에서 봤던 목 잘린 사람이 내가 되는 꿈을 말이다.

노여주 [29]

"...타투 하나 해주세요. 쇄골에."

노여주 [29]

"도안은..."

"이걸로요."

_ 글자수 : 9043자

늦어서 죄송합니다 🙇‍♀️ 급하게 쓰느라 퀄은 떨어지지만 한 가지 말씀 드리고픈 건, TH 조직 보스가 쇄골에 아레스 타투를 새긴 이유는 그를 롤모델로 삼고 조직을 창립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여주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며 새기는 타투는 아레스의 모습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몸에 새기며 말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굳은 다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피와 살상을 즐기는 아레스 = 악의 시초와 끝판왕] 이렇게 두 개의 타이틀을 같은 뜻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외에 행동들은 스스로 나름의 해석을 해서 봐도 됩니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글이고, 스토리성이 담긴 글이기 때문에 몰입도를 흐리지 않기 위해 지문, 대사, 배경, 인물의 사진 등등 신경 쓴 게 참 많았던 글이었습니다 🥲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숙제 검사 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_ 미리별유치원 라벤더반 아지 2023. 01. 26 숙제 제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