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에필로그 (5) 그 후, 윤이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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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무사히 잘 지내셨나요..?

윤이가 치료감호소로 이송되고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민윤기 선생님이었다.

윤기는 윤이를 볼 겸 이전의 정신감정 내용과 상담기록 등을 전달하러 직접 감호소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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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럭저럭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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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링스에서도 신경써주시고 감사했었어요..

윤기는 윤이가 프랑스에 갔을 때도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알아봐주고,

석진에게 윤이가 공황발작을 할 때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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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선생님

전문가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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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샘이 아니었다면.... 저는 계속 혼란스러웠을 거에요 ...

윤은 민윤기선생님을 통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깨닭았고,

그 덕분에 공황발작이나 우울증을 심각하게 만들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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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전 조직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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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간부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어요... 혹시라도.. 나의 어린시절에 날 돌봐준 사람들인데 반갑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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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를 조직의 한 일원으로 생각해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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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저는 사용하기 좋은 도구였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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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원보다 못한 그런 존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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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마치 날 어른처럼 존중하는 척하면서 나를 마음대로 부려왔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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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선생님

윤이씨가 생각을 바꿀 계기가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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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윤이는 잠시 눈을 감고 재판 장면을 떠올렸다.

재판장

/피고 측, 이야기 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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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1

/네, 음.. 우리는 젠이 납치된 아이인지 모르고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또.. 젠은 살인을 즐겼습니다. 사실 직접 나서서 했다고 볼 수도 있죠../

간부의 말에 윤이는 얼굴이 굳었고, 곧이어 검사가 질문을 했다.

검사

/그렇다면 살인으로 얻은 댓가를 간부들이 다 사용해버린 정황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젠이 자의로 살인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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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1

/에.. 그게 또 우리 아기새 젠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아십니까?? 젠은 저희에게 빚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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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뭐라고요...???/

화가 난 윤이 일어서려고 하자 석진이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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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윤아, 도발에 넘어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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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오늘 언론에서 기자들도 와있어서,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아. 여기서 널 도발 시켜야 자신들에게 유리하니까..

석진이 윤의 어께를 붙들자 윤은 분노감에 몸을 떨며 겨우 참고 재판 시간을 견뎠다

재판이 끝나고 후송차량에 올라탄 윤은 화가나서 일어서려던 아까와는 달리

어께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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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나의 어린 시절엔 아무것도 좋게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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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해서 살아남은 내가 너무 바보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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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힘들게 그 시절을 견디며 산걸까..? 내가 너무 가엽고 불쌍해...

윤이 울자 석진은 가만히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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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윤아.. 너는 그 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살아낸 것 뿐이야... 잘했고,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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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좋은 게 없다니.. 니가 아끼는 국이도 그 때 만났고, 네 뒤를 봐주던 지민이 삼촌도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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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그리고 나중에 나랑 여주도 만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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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니 곁엔 많은 사람들이 있어.. 다 같이 힘내보자..

윤이는 석진의 말에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엽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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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초반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제가 얼마나 그들에게 쓸모있는 도구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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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언들과.. 저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와 여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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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밖으로 나와 후송차에 올라타려는 순간에 계란을 맞기 일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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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여주가 방송에 나오고, 국이가 증언을 해주고... 나중에 지민이삼촌까지 나서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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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긴 했지만.. 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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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수감 시작이지만, 어찌되었건 이 시간을 견디면 저는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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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신적 상흔은 남아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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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 더 많이 괜찮아질 거에요.

윤은 조금은 가벼워진듯 미소를 지었다.

윤기는 윤이의 정신적 상흔인 공황발작이나 순환성 우울장애가 쉽게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하는 윤이 대단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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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선생님

윤이씨 씩씩하시니까..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거에요..

윤기는 면회실을 나서면서 여주와 윤이의 사례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윤이의 수감생활은 무료하고 적적했다.

윤이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킬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재소자들이 윤이의 눈치를 보며 피해다녔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친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윤이는 그럭저럭 수감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매주 오는 석진아저씨랑 여주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윤이는 프랑스에서의 방송 활동을 시작으로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여기저기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여주가 좋았다.

가끔은 윤은 여주가 또다른 나 같기도 했다.

내가 공황발작이 없었다면, 사회에 있었다면 여주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프랑스에 남은 국이가 너무나 걱정되었던 윤이는 여주의 작가 활동도 독려할 겸 자신의 분신 같은 여주에게 프랑스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여주가 떠난 이후 윤이의 낙은 여주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여주는 이삼일에 한번씩 편지를 보내왔다.

어떤 편지에는 국이 소식이,

어떤 편지에는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편지에는 윤이를 위한 여주의 동화들이 적혀있었다.

여주가 보내준 글들은 잘 다듬어져 묶여 책으로 나왔다.

윤이는 여주가 쓴 책들이 쌓여감에 따라 시간도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이랑..'

여주의 필명에는 윤과 함께 글을 쓴다는 의미가 있었다.

방송에 나올 때면 유여주라는 본명을 사용했지만,

동화를 쓸 땐 여전히 '윤이랑'이라는 필명으로 여주는 책을 냈다.

이랑 작가의 동화속 주인공들이 공주나 시골 소녀같은 추상적인 모습에서 점점 현실을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갈수록

윤이는 자신의 마음도 자라나고 안정되어 간다고 느껴졌다.

어느 추운 겨울날 윤이의 형기가 드디어 마무리 되었다.

수사에 도움을 준 공적과 모범적인 생활로 조기출소한 지민과 달리 감호소는 정해진 형을 다 보내고 만기 출소만 가능했기에

윤이는 지민보다 약 1년 늦게 8년 만에 출소했다.

윤이의 출소날에는 석진과 여주, 국이, 지민까지 모두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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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주

윤이야.. 어서와...

오랫동안 지냈던 감호소의 문을 넘자 윤이는 공기의 냄새며 땅의 질감이 모두 새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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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윤은 여주가 내민 두부를 살짝 입에 넣더니, 곧 여주와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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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얘들아 감기 걸리겠다. 어서 들어가자..

한침을 윤이와 여주가 부등켜 안고 떨어지질 않자 석진이 서둘렀다.

지민이 운전하는 오픈 스포츠카에 다섯명이 우겨타고 석진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차 안에서 보는 해질녁의 노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윤이는 이제서야 비로소 어지럽고 힘들었던 자신의 인생의 첫 막이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편에 계속-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