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주의

에이

어느 월요일, 텁텁한 공기가 주변을 둘러싸. 원래 그닥 상쾌하지 못한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는 정국때문에 더 탁한 분위기야.

급기야는 뭐가 불안한지 다리를 덜덜 떨며 욕을 중얼거려. 옆에서 핸드폰으로 노가리까던 태형이 신경질적으로 정국의 허벅지를 내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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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 좀! 정신사나우니까 가만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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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시발. 우여주년 왜 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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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몰라. 지도 찔라나 보지.

듣고만 있던 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지고, 빙글 비웃으며 이어지는 태형의 대답에 입까지 쩍 벌어져.

힐끔힐끔 눈빛을 교환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쟤네… 왜저래? 그도 그럴것이 방금 쟤네 입에서 나온 우여주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저들의 공주님이었으니까.

실수로라도 그녀의 이름을 욕과 함께 입에 담았다하면 그날로 바로 생매장 각이었거든.

어리둥절한 반 아이들을 나자빠질정도로 놀래킨건 느긋하게 교실로 들어오는 박지민이야. 아니, 정확히는 지민의 옆에서 어깨에 지민의 팔 하나 올리고 있는 한 여자애지.

너무 크게 벌어져 빠질 것 같은 반 아이들을 턱은 무시하곤 지민이 그 여자애를 자신의 옆에 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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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거기… 우여주 자린데…

삐질삐질. 지민의 다정한 눈빛을 본 반장은 속으로만 이 말을 삼켜. 왠지 건들면 좆될 것 같았거든.

제법 예쁘장한 여자애가 자리에 앉자마자 정국과 태형이 차례로 일어나 지민에게 주먹을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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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이 씹… 아니, 야. 니가 뭔데 우리 주연이를…

습관적으로 욕을 뱉으려던 태형이 황급히 말을 바꿔. 그러더니 지들끼리 기싸움을 시작해.

그 모습을 본 반아이들은 이젠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처음보는 저 여자애는 누구인지, 왜 우여주가 있어야되는 저 그림에 저 여자애가 있는지.

원래 주인공인 우여주는 왜 뒷문으로 살금 걸어들어오는지.

정국은 그 여자애의 시아를 교묘하게 가리며 여주 앞에 섰어. 무어라 입을 여는 순간, 담임이 들어와 여주에게 호통을 쳐.

담임선생님

우여주! 왜 자리에 안앉고 서 있어?

쯧. 혀까지 찬 담임이 그 여자애를 보더니 앞으로 나오라 그래.

담임선생님

전학생이야. 자기소개 한 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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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어… 나는 이주연이고, 앞으로 잘 지내자.

조금 작은 키와 희고 통통한 볼. 우물거리는 입술까지. 뭐 하나 빠짐 없이 귀여운 주연의 수줍은 웃음에 남자애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아.

담임선생님

그래 주연아. 어디 앉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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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어…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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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쌤! 저요! 주연이가 제 옆에 앉고 싶댔어요.

주연이 쉽사리 대답을 못하자 선수친 지민이야. 담임이 지민 옆자리에 앉은 여주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여.

담임선생님

그래. 우여주 저 뒤쪽으로 가라.

예쁘게 웃는 주연을 보며 태형과 정국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이를 빠득 갈아. 깨물린 어금니 사이로 “븍즈믄 씁쓰끄(박지민씹새끼)” 하는 중얼거림은 덤으로.

.

꽤 앞쪽인 지민의 자리에 몇걸음 안걸어서 도착한 주연이 여주를 보더니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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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 여주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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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주

응 안녕.

답지않게 웃어보이기까지 하는 여주에 반 아이들은 일동 당황해.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뒤이어 거칠게 여주를 쳐내는 지민에 결국 확신을 갖게 돼. 아, 쟤네 주말에 진짜 뭐 있었구나.

지난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안그랬으니까.

질질질 여주가 책상을 맨뒤로 붙이곤 피곤한듯이 손에 얼굴을 묻었어.

덕분에 여주 바로 앞자리인 반장만 또 삐질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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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주

시발. 살갑게 대해줘도 지랄.

여주의 중얼거림은 반장의 귀에서 묻히는 것 같았어.

의자에 걸린 가방을 확인하는 척 슬쩍 뒤 돈 반장이 어느새 엎드려 잠을 청하는 여주에 고개를 갸웃했어. 진짜… 뭐지?

.

담임이 나가자마자 벌떡 일어선 정국은 주연에게 다가가 2000원을 쥐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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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주연아… 내가 초코우유가 너무 먹고싶어서 그런데 초코우유 좀.

주연이 알겠다며 일어서자 태형이 따라붙어. 우리 주연이 길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헤헤 웃는 태형의 손목을 꼭 붙잡은 주연이 길을 알려달라 이끌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둘을 노려보던 정국이 화풀이를 하려는듯 여주의 책상을 발로 쾅 차.

책상에 엎드려 있던 여주는 책상이 옆으로 밀리자 그 반동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꽉 줄인 치마 사이로 여실히 드러나는 매끈한 다리를 인상 팍 쓰고 바라보던 정국이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덮어주지 않아.

여기서부터 반 아이들은 깨달아. 이거 진짜다. 지들끼리 장난치는게 아니다. 전정국 리얼 빡쳤다.

정국이 서늘한 시선으로 하나하나 아이들을 훑어보더니 크게 소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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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앞으로 이 년이랑 대화하는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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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특히 반장 너. 얘한테는 반장 노릇도 하지마. 괜히 오지랖 피우다 쳐맞기 싫으면.

꽤 기분나쁜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눈빛에 기가 죽은 반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

정국의 말이 끝나고 정적뿐인 교실에서 시선이 집중된 지민은 관심 없다는 듯 아예 이어폰까지 끼곤 의자 몇개를 붙여 드러누웠어.

헛웃음을 치며 일어난 여주가 좀 크게 중얼거리곤 자신의 책상을 끌어당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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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주

유치해서 못봐주겠다 진짜.

그 말에 정국이 다시 한 번 여주의 책상을 걷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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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어, 유치하게 니새끼 한 번 조져버릴려고. 먼저 시비 턴 건 너잖아.

대꾸도 않고 와르르 쏟아진 자신의 물건을 바라보던 여주가 저만치 날아간 가방을 주워들곤 하나하나 가방에 담기 시작해.

그때 돌아온 주연이 쪼르르 달려와 도와준다며 여주의 물건을 가방에 쓸어담아. 지민이 이어폰을 빼곤 주연을 잡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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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주연아. 치마 입었으니까 쭈구려 앉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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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헉!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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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주연아, 초코우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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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사왔어! 나 빨대도 갖고 왔다. 잘했지?

히히 웃는 주연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정국의 입이 귀에 걸려. 이리줘봐. 주연이 사온 초코우유에 빨대를 푹 꽂은 정국이 주연에게 도로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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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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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어? 정국이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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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니가 사왔잖아.

결국 주연의 손에 초코우유 쥐여주기를 성공한 정국이 흐뭇하게 웃으며 돌아서.

어느새 책상까지 원위치 시켜놓은 여주가 미련 없다는 듯 뒷문으로 빠져나가.

1교시 들어온 쌤 역시 여주부터 찾으며 혀를 끌끌 차지만, 여주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그렇게 여주는 3교시 체육까지 모두 결과처리가 되었어.

체육이 끝나고 교실에 돌아오자 또 언제 왔는지 미약한 담배냄새를 풍기며 엎드려 자는 여주가 보였어. 4교시 담임시간에 잔소리 폭탄을 맞고도 깨지 않고 내리 자던 여주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점심시간 이었을거야.

그날따라 맛없는 점심에 매점은 미어 터질 것 같았어. 일찍 포기한 아이들은 여주처럼 자거나 공부를 해서 도서관과 교실도 복작복작 했었지.

나른한 교실의 온도에 모두가 늘어지고 있을 때쯤, 교실문을 거칠게 박차고 들어온 태형이야.

그 뒤로 울고 있는 주연과 그녀를 안아 달래주는 정국까지. 지민이 교탁에 서 반 아이들한테 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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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주연이 지갑 본 사람?

뒤로 흐느끼는 주연의 목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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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흐, 얘들아 제발 찾아줘. 진짜 중요한거야. 엄마 카드 거기에 있단 말이야.

나 빡쳤어요를 온 몸으로 뽐내며 교실을 활보하던 태형이 무득 멈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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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뻔하지 뭐.

곧장 여주에게로 직진해간 태형이 여주의 가방을 열곤 거꾸로 뒤집에 탈탈 털기 시작해.

아까 정리해뒀던 물건들이 하나씩 떨어지고, 다 쓴 라이터도 하나 굴러나와. 마침내 마지막으로 떨어진 분홍색 토끼 지갑에 반 아이들의 숨이 헙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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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씨발년.

여주를 떠민 태형이 분에 겨운 표정으로 여주의 필통을 짓밟았어.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잉크가 터졌는지 푸른색이 배어나와. 파랑으로 물드는 필통을 감정없는 눈으로 응시하던 여주가 입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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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주

… 다 끝난거야?

필통을 집어든 여주가 가방에 대충 쑤시곤 다시 한번 자신의 물건들을 쓸어모아 사물함에 박아넣어.

다시 뒷문으로 나가는 여주와 리플레이 되는 듯한 아까의 그 상황같은 그림에 반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어.

사실 반장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장면을 봐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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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그럼… 아까 이주연이 우여주 도와줄때 가방에 딸려 들어가는 분홍 지갑은 나만 본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여전히 훌쩍이는 주연을 바라보던 반장이 생각해. 어쩌면 주연은 마냥 착한 것 같진 않다고.

하지만 반장은 자아성찰 역시 정확해. 자신도 마냥 착하지만은 않아. 지금도 주연과 눈이 마주쳐서는 화들짝 놀라 바로 눈을 까는 것을 보면.

문득 정국의 경고가 머릿속에 둥둥 떠올라. '반장 노릇도 하지마.'

안타깝게도 반장은 이렇게 생각해. 어차피 정국이 말 안했어도 나는 그렇게 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