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12화



강여주
.. 그런데,


강여주
넌 왜 여은이를 좋아했어?

내 질문 이후로 꽤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윤정한
...

정한은 이리저리 뒤척였다.

이불이 부시럭거리는 소리만이 보건실을 가득 채웠다.


강여주
.. 미안, 불편하면 답 안 해도-,


윤정한
그냥..


강여주
응?


윤정한
첫눈에 반했었어요.

뻔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윤정한
복도를 지나가면서 마주쳤는데,


윤정한
지나갈 때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윤정한
지나가던 저를 뒤돌아보게 만들었었어요..

이게 무슨 웹드라마 같은 설명인가..

나는 옆으로 누워서 정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정한
그런데..

정한이 말을 하다가 뜸을 들였다.


윤정한
누나한테서도 같은 향기가 나요.


강여주
...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와 여은이는 같은 샴푸를 썼었고,

지금도 그 샴푸를 쓰고 있으니..


윤정한
저번에 누나를 안고 울었을 때...

아, 그 때..


윤정한
그 때 그 여은이의 향기가 코 깊숙이 들어와서..


윤정한
더.. 서럽게 울었던 것 같아요.

잠시 샴푸를 바꿔야 할까 고민했다.


강여주
샴푸.. 바꿀까..?


윤정한
그게.. 샴푸향이었구나...


윤정한
.. 아니요, 바꾸지 마요.

역시 여은이를 잊을 순 없는 거겠지.


윤정한
이제 그 향기를 오로지 여주 누나한테서 느끼고 싶어요.


강여주
....?

그게.. 무슨 말이지..?

정한이 내가 있는 쪽을 향하여 누웠다.

그러자, 정한을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정한이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 순간, 심장이 덜컹-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미쳤지..

양심이 있다면, 절대 절대로 윤정한에게 설레면 안 돼.


윤정한
좀 자요.


강여주
어어..?


윤정한
아까 말싸움 하느라고 힘 다 뺐잖아요 ㅎㅎ

정한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강여주
... 응

나는 혹시라도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을까봐 황급히 고개를 천장을 향해 돌렸다.


윤정한
나도 좀 자야겠다

우리 둘은 그렇게 눈을 감고 얕은 잠에 들었다.


강여주
아으.. 머리야..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 자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힘겹게 일어나 교실로 가고 있었다.

정한이는 이미 일어나서 간 것인지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
어, 여주 선배..!


강여주
?


최승철
저.. 기억 나세요?


강여주
누구..


최승철
어제 복도에서 마주쳤던..

아.. 그 이태원에서 만났다던 그 애인가..


강여주
아..


최승철
혹시.. 인스타 보셨어요?


강여주
어..?


강여주
안 봤는데..


최승철
제가 어제 팔로우 걸었었는데..


강여주
아.. 미안..


강여주
요즘 정신이 너무 없어서 못 봤어


최승철
아..


최승철
혹시.. 맞팔 받아주실 수 있나요..?


강여주
아... 응, 그래


최승철
.. 감사합니다

나는 폰을 꺼내 인스타를 확인했다.


sound_of_coups
sound_of_coups 님이 회원님을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여주
아..

나는 바로 맞팔로우를 눌렀다.

.. 그런데 술집에 있는 날 봤다니..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최승철
디엠할게요!


강여주
..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최승철
최승철이에요!

승철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곤 손을 흔들고 내 뒤로 지나갔다.


강여주
...

-드르륵


고하율
.. 여주야..!


전원우
여주야 괜찮아?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율이와 원우가 내게 달려왔다.


강여주
응, 괜찮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고하율
.. 정다은 조퇴했어.


강여주
아.. 그렇구나..

정다은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반 친구들이 나를 보며 수근거렸다.

자꾸만 어렸을 적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혹시라도 또 다시 왕따가 되는 건 아닐까


고하율
걱정마


고하율
다들 너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해.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필사적으로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제멋대로 줄줄 흘러나왔다.


고하율
.....!!!


전원우
어.. 괜찮아..?


고하율
어.. 어떡해..


전원우
휴지 갖고올게..!

하율이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면서도 자동적으로 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고하율
여태껏 몰라봐서 미안해..


고하율
난 정말.. 정다은이 그런 애인줄 몰랐어


강여주
.. 나같아도 몰랐을 거야.

나는 훌쩍거리며 말을 했다.


고하율
미안해.. 미안해..

하율이는 정말 좋은 애 같았다.


전원우
휴지.. 갖고 왔어.

원우는 내게 휴지를 건넸다.

나는 원우가 준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고하율
너무 힘들면 조퇴할래?


전원우
그래,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강여주
.. 아냐, 괜찮아.

조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나는 ‘여은’이었기에 결코 쉽게 조퇴를 할 순 없었다.


고하율
...


전원우
참, 아까 마시다 만 초코우유라도 마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초코 우유를 집어들었다.


고하율
하.. 정다은..

나는 그렇게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자리에 앉아 훌쩍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