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어》

작전명:문어숙회

08: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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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자네도 동참할텐... 아, 끊어버렸네."

한참을 혼잣말하던 석민이 민규가 끊은 전화를 이제야 확인한다. 괜한 민망함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운동장을 열심히 뛰고있는 찬을 발견하고는 불러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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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찬아, 빨리 와봐."

석민의 부름에 찬은 뛰는 걸 멈추고 숨을 고르며 석민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찬이 석민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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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작전명 문어숙회, 자네도 참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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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또 여주누나 괴롭히려고 그러죠."

찬이 한번에 알아맞히자 조금 당황한 석민은 이리저리 둘러댄다. 찬은 귀찮았지만 알겠다며 나무 위로 올라가 석민과 나란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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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배여주가 매일 지각하면 여기 담을 넘거든? 그러면 일부로 소리를 내서 선도부한테 걸리게 하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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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하... 여주누나한테 죽을 건 생각안해요?"

찬이 한숨을 쉬며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해줬음에도 석민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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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그전에 배여주가 선도부한테 먼저 죽겠지!"

찬은 여주가 선도부에게 걸려 징계를 받은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나 그것도 모르고 여주를 놀리려는 석민이 재밌어서 조용히 작전에 가담하는 척하기로 했다. 

신나서는 마구 뛰어가는 석민을 보고 한숨을 쉬는 찬이다. 이러다가 누나한테 혼나면 안되는데. 진짜 바보같이 단순한 형이랑, 그 바보한테 당하는 누나. 누가 더 불쌍한지 고민되는 찬이다.

08:40 AM

왠치 찬이의 귀에는 그곳에서 여주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런 놈 때문에 개고생하는 여주가 더 불쌍해졌다. 이런 놈이 페어플레이 장인이라니, 한참 잘못 알려져있구만. 

실제로도 몇차례 보도된 스포츠기사중에는 석민이 페어플레이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느니, 승패와는 상관없는 좋은 경기를 즐겨한다는 주제의 기사가 많이 쓰였다.

하지만 찬은 그 사람이 여고딩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남고딩일 뿐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냥 운동할 때와 평소 모습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차이가 심하다는 걸 다들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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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형 진짜 쓰레기네요. 여자한테는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승철이형이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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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쟤는 여자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찬은 당당하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석민이 어이없었다. 와, 하필 오늘 선도부당번들 전부 육상부 선배들 서는 날인거 알긴 알아요? 알면서 그러신 건 절대 아니겠죠, 그러면 최악인데. 

석민은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자 찬이 알겠다며 결론지었다. 형은 진짜 쓰레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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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그래도 여주 누나 별명이 ``인어공주`` 잖아요. 너무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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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인어공주는 무슨, 생긴 건 문어숙회다? 심지어 뭉개졌어."

석민의 말 같지도 않은 발언에 끝내 할 말을 잃은 찬은 에휴, 하고 한숨을 쉬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형도 늦은거면서 여유부리지 마요. 

찬이 한소리하자 그마저도 즐거운 듯 찬과 함께 학교로 뛰어 들어가는 석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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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제발 한번만 봐줘 나 아침부터 잠영 하다오는 거 다들 알고 있잖아,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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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여주야, 이제 헛소리 그만하자. 오늘은 못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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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에이, 원우오빠도 참 자비롭지가 않으시네."

수영장 한쪽구석에 몰려버린 여주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하듯이 다가오는 선도부들을 천천히 달랬다. 하지만 먹힐리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있는지 뒷걸음질치며 틈을 노렸다. 

막연한 침묵끝에 신호가 떨어지고, 선도부가 여주에게로 일제히 달려들자 여주는 자신의 결심을 굳히며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수영장에 있던 물이 넘쳐흘렀다. 그러자 같이 따라 들어가지 않고 여주를 지켜보던 선도부들이 혀를 내둘렀다. 

원우는 그런 여주를 보고 입모양으로 ``미쳤네`` 를 몇번이나 곱씹었다. 

여주가 보란듯이 팔을 마구 휘저으며 수영장을 마구 활보했지만 누구하나 건들일 수가 없던지라 조용히 물러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하나가 되는 그들이었다. 

원우는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여주는 그들에게 친히 수중인사를 하며 말도 안되는 승리감과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곧 밀려들어오는 찝찝함과 억울함에 석민에게 욕하는 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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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이석민 너 뒤졌어. 아, 괜한 옷만 버렸잖아." 

젖은 옷가지들을 걸친 몸뚱아리를 이끌고 물 밖으로 나와 바닥에 누워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와 여주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여주는 선도부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는지 누군가의 목소리조차 듣지도 않고 수영장으로 빠르게 기어들어갔다. 마치 그 광경은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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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얼씨구, 아침부터 지랄을 해요. 지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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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아이씨, 선도부인줄 알았잖아. 아 쪽팔려..."

그러니까 누가 오늘같은 날에 지각하래? 주현은 여주에게 일침을 날렸다. 그러다 수영장에서 할 말을 잃은 여주를 꺼내주고는 탈의실에 함께 들어갔다.

여주가 체육복 잠바를 거칠게 벗어던지자 주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내숭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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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꺄아아-"

여주는 그게 질리지도 않냐고 물으며 옷을 마저 갈아입자 주현은 손사래를 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한 마디 덧붙이는 주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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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너는 인어공주님이랑 붙어사는 기분이 어떤지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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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난 못생긴 생선 얼굴 매일 보고살아서 뻐져리게 잘 알겠다."

여주가 자기욕을 서슴없이 하자 그게 웃겼는지 웃다가 들고있던 옷가지마저 손에서 놓쳐버린다. 옷을 떨어뜨리자 그제서야 생각났는지 주현은 들고있던 수영복을 여주에게 건네줬다. 

이걸로 갈아입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라고? 여주가 주현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주현은 손사래를 쳤다. 그게 아니고, 오늘 수업은 체육밖에 없는 날이거든. 

여주는 의미를 알았는지 더이상 투정부리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주현이 마지막으로 물갈퀴를 전해주자 그걸 받아든 여주는 어느때보다도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두발에 가지런히 끼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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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얘들아, 엄마가 왔다."

역시 아침부터 지랄하네. 수영복을 아직 다 갈아입지도 않은 주현이 여주를 바라보며 잔소리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자 금새 물이 여주를 감싸안는다. 

딩동-.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에 가득 울려퍼지자 여주네 반 아이들은 한 두명씩 수영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어처럼 헤엄치고 있는 여주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언제나 놀라움이었다. 그러자 뒤따라 온 체육쌤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체육쌤

"이야, 역시 여주는 먼저 와서 연습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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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그래서 걔는 지금... 헐."

아이들에게 무슨 영웅담을 들려주듯 뒤돌아오던 석민이 체육쌤의 말을 듣고 돌아서자 여주를 보고 얼어붙는다.

여주는 석민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수영장을 마구 헤엄치다가 석민의 앞으로 상어처럼 다가가 석민의 두 다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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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헙...! 사,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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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컴온."

으아아! 여주가 석민의 다리를 잡아끌어 수영장으로 끌여들이고는 저 밑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그 광경이 재밌는지 도와주기는 커녕 웃기 바빴다.

심지어는 체육쌤조차도 여주의 편이었기에, 석민은 여주에게 처참히 끌려갔다. 물보라가 일때마다 나는 석민의 비명소리가 온 학교에 울려펴졌다.

그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던 찬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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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그럴 줄 알았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축처진 석민의 몸이 수영장 한가운데에 둥둥 띄워져있었다. 여주는 손을 털어버리고는 체육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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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이참에 응급처치 실습하시죠. 저는 빠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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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저도 빼주세요."

작전명:문어숙회

이번에도 완벽한 작전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