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09



김석진
술···, 마셨어요?

윤여주
작가님이 알아서 뭐 하게요. 내가 마시든 말든 작가님이 뭔 상관이에요?

서러움이 가시지 않아 그만 작가님에게 툴툴대는 어감으로 말해버렸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김석진
상관없죠···. 조심히 들어가세요.

윤여주
아니···,

작가님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히려 나의 투정 때문에 말을 제대로 섞지도 못해버렸다. 이제는 서러움이 차고 넘쳐 눈물을 머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태로 집 가는 내내 펑펑 울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외투 소매 양쪽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이제는 제대로 닦이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윤여주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흑··· 흡···.


김태형 큐레이터
[괜찮아요?]

작가님의 연락이 아니었다. 그 뒤로 쭉 작가님에게서 오는 연락은 없었다. 작가님이 너무 미운데 오지도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나도 너무 싫었다.

다음 날 아침, 나의 눈을 비추는 따가운 태양에 눈을 떴다. 얼마나 울었는지 거울에 보이는 나의 얼굴과 눈은 전부 퉁퉁 부어있었다.

윤여주
하··· 진짜 가기 싫다···.


김남준 관장
어, 왔어?

윤여주
네, 일찍 오셨네요.


김남준 관장
작가님이랑은 아는 사이였다며. 김 큐레이터한테 들었어.

윤여주
네··· 뭐···.


김남준 관장
그래, 잘해봐. 이번 전시도 잘 진행되고 있어서 좋네. 간다.

윤여주
네···.


김태형 큐레이터
윤 큐레이터님!

윤여주
아, 어···.


김태형 큐레이터
왜 어제 연락 씹으셨어요. 딱 봐도 많이 운 게 티 나네요.

윤여주
티··· 나?


김태형 큐레이터
네, 많이요.

윤여주
하···.


김태형 큐레이터
작가님 오시네요.

윤여주
작가님 오시는 거 오늘이 마지막이지?


김태형 큐레이터
마지막 날만 빼면 당분간 볼 일은 없겠어요.

윤여주
오전만 좀 맡아줘. 오후에는 내가 볼게.


김태형 큐레이터
어디 계시게요?

윤여주
어디긴. 그곳 말고 다른 데가 있나···. 따라오지 마라.

답답하거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곤 할 때 내 아지트처럼 찾는 공간이 있다. 7전시실 맞은 편인 구석에 안 쓰는 전시실이 한 곳 있다. 그곳에는 석고상 하나만이 가운데 떡하니 위치해 있다.

무명으로 누가 만든 건지 도통 모르고, 찾는 사람도 없어서 버려진 석고상이었는데 내가 이곳으로 운송해 왔다. 물론 관장님께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철거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관장님도 안 쓰는 전시실이니까 결국에는 허락하신 듯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석고상은 나의 곁에 있고, 유일하게 내 답답함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었다.

윤여주
힘들어···.


김석진
여기서 뭐 해요.

윤여주
따라오지 말라니···, 작가님이 여긴 어떻게 아셨어요···?


김석진
큐레이터님이 여기로 오시는 걸 봤어요.

윤여주
따라온 거예요···? 왜요?


김석진
나 때문에 힘든 거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윤여주
하··· 왜 작가님은 다 하지 말래요? 좋아하지도 말아라, 힘들지도 말아라. 왜 그래요?


김석진
진정해요···. 제가 큐레이터님을 알아보는 게 아니었나 봐요.

윤여주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제가 속상하고 분한 거는 작가님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 하는 거 때문에 날 이렇게 밀어내는 게 속상한 거예요. 내가 괜찮다니까요? 괜찮지 않으면 처음부터 전시 제안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겠죠.


김석진
···내가 큐레이터님한테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그래서 밀어내는 거라면요?

윤여주
네···?

아니잖아. 거짓말이다, 분명. 일부러 마음 접으라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다. 진짜 왜 저렇게까지 나를 밀어내는 건지 모르겠다.


김석진
나는 큐레이터님 안 좋아해요. 그저 나에겐 특별한 첫사랑이었기에 찾고 싶었던 거고요.

윤여주
거짓말···. 아니잖아. 나 좋아하잖아.


김석진
···그래요, 좋아하지 말라고는 안 할게요. 대신 저한테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는 마세요. 몰래 따라와서 미안해요. 가볼게요.

윤여주
······.

두 눈을 부릅뜨고 철벽을 치는 작가님에 조금 당황했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작가님인데 이번은 작가님답지 못한 말이었다. 너무 단호한 작가님의 행동에 정말 나를 안 좋아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주
흐윽···. 흐··· 왜 그러는 거야···.

사실 작가님의 기억이 돌아오면 전부 끝날 줄 알았다. 서로의 첫사랑을 찾았고, 그럼 그 첫사랑이 연인으로 발전할 줄 알았다.

기대에 못 미쳐서 그런 건가, 계속해서 슬퍼져만 갔고, 이제는 울 힘조차 나지 않았다. 우울했다. 사랑이 뭐라고 날 이렇게 힘들게 한다.

윤여주
내가 이 사랑을 끝내야 우울도 사라지는 건가···. 친구야, 말해 봐. 내가 끝내야 하는 거야? 정말?

처음부터 작가님이 날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이라도 우울을 덜 수 있었을까? 작가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예보가 있었다면 덜 상처받고 덜 속상할 수 있었을까?

윤여주
아! 어, 죄송해요.

G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윤여주
네···?

G
괜찮으시냐고요. 눈에 초점이 없으셔서···.

윤여주
아··· 괜찮아요.

G
정말 괜찮은 거 맞으시죠?

‘아니요, 안 괜찮아요···.’

윤여주
네, 괜찮아요. 김석진 작가님 전시 보고 나오시는 길이에요?

G
네, 마지막 다큐 보고 눈물 한바탕 쏟고 나왔어요. 윤여주 큐레이터님 맞으시죠?

윤여주
어? 저를 어떻게 아세요?

G
어제 오픈 날 봤어요.

윤여주
오늘 또 오신 거예요?

G
네, 김석진 작가님 팬이에요. 그림을 또 보고 싶어서 왔어요.

팬은 나 하나였는데. 언제 팬이 이렇게 많이 생긴 거야. 갑자기 든 생각은 나도 그저 쭉 팬으로서만 작가님을 대했다면 어땠을지 의문이 생겼다.

작가님이 선배라는 것을 알기 전이 훨씬 더 좋았다. 작가님이 사라진 게 나를 안 좋아한다는 말보다 그래도 나으니까.

윤여주
그렇군요···.

G
감사해요, 전시 열어주셔서.

윤여주
저에게 감사할 게 있나요···. 작가님에게 감사해야죠. 아무튼 와주셔서 감사해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관람객을 응대했다. 전시실 안에서는 돌아다니면서 작품 설명을 해주고 있는 작가님을 보았다. 난 가만히 서서 멀리서나마 작가님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작가님은 내가 보고 있단 것을 의식했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내 얼굴 못 알아본다면서 잘만 알아보네.


김석진
할말 더 있어요?

윤여주
잘만 알아보면서 뭘 못 알아봐요.


김석진
같은 옷 입고 있잖아요. 여기에 하얀색 정장을 입은 사람이 큐레이터님 말고 어디 있어요.

윤여주
···아까 작가님이 분명 그랬어요. 좋아하지 말라고는 안 한다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밀어내지 말아요.

결국 나의 선택은 포기도 우울도 아니고, 작가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다시 짝사랑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MEY메이
1월에 이어 2월도 이달의 팬픽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보러와 주셔서 감사해요. 손팅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