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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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윤여주
가지 말아요. 오늘은 그냥 같이 있으면 안 돼요?


김석진
안 돼요. 이제 가봐야죠.

윤여주
그럼 나 한 번만 안아줘요. 나 지금까지 작가님 때문에 힘들었던 거 싹 내려가게.


김석진
···알겠어요. 이리 와요.

작가님 품은 너무 포근했고, 따뜻했다. 오랜 힘듦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행복을 마주하니까 사실 얼떨떨하기는 했다. 작가님이 나오려고 하자 나는 더 꽉 안았다.

윤여주
아직 다 안 내려갔어요.


김석진
나 갈 수 있는 건 맞아요?

윤여주
조금만···.


김석진
다음에 또 안아줄게.

윤여주
정말이죠. 다음에는 더 오래 안아줘야 해요.


김석진
알겠어요. 푹 쉬어요. 죽 저녁까지 먹을 거 했으니까 꼭 다 먹고.

윤여주
알겠어요. 작가님도 쉬어요. 힘들었을 텐데.


김석진
네, 갈게요.

작가님이 나가고 난 현관 앞에 계속 가만히 서있었다. 방금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님이 만나자고 했을 때 엄청 기쁘지 않았다. 슬픔의 삶을 너무 오래 방치했나, 행복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행복에 무뎌진 걸까? 슬픔에 무뎌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나는 반대로 많이 겪어보지도 않은 행복에 무뎌져 버리고 말았다. 행복이 나에게는 아직 어색하다.

···

혼자 있으니 또 금방 공허해졌다. 오늘은 그토록 원하던 기쁜 날인데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조금 자보기도 하고, TV도 봤는데 금방 다시 지루해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을 나섰다.

윤여주
금방 해지네.

‘띵동-’

집에서 나와 얼마 걸리지 않는 곳. 편의점도, 와인 바도 아니었다.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작가님 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뒤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석진
“누구세요?”

윤여주
저 작가님 썸녀요!

‘철컥’


김석진
왜 왔어요. 푹 쉬라니까.

윤여주
그래서 싫어요? 나 추운데···.


김석진
···일단 들어와요.

또 작가님 얼굴을 보니까 미소가 나왔다. 작가님만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주
혼자 있으니까 너무 공허하고 우울해서 왔어요. 연락도 없이 무작정 와서 미안해요.


김석진
미안할 건 아닌데···, 좀 따뜻하게 하고 오지, 아픈데.

윤여주
작가님 덕분에 다 나았잖아요. 뭐 하고 있었어요?


김석진
그냥 그림 좀 그렸어요.

윤여주
그림이요? 풍경인데 안 보고도 그리는 거예요?


김석진
아니요ㅋㅋㅋ 어떻게 안 보고 그려요. 그냥 새로운 도전 좀 해봤어요.

윤여주
보여주면 안 돼요?


김석진
음···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보여줄게요.

윤여주
알겠어요. 그럼 내가 와서 방해한 거예요?


김석진
아니에요. 방해 안 했어요.

윤여주
그런데 작가님은 어쩜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해요?


김석진
제가요?

윤여주
네. 나 싫어할 때만 빼고.


김석진
에이- 뭐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갈래요? 금방 깜깜해졌네요.

윤여주
나 보내려고요?


김석진
집에 안 가요···?

윤여주
저 집에 있으면 작가님이 가려고 하니까 내가 온 건데, 이제는 나를 보내네요.


김석진
어···.

당황한 듯했다. 당황하는 모습조차 처음으로 작가님이 귀엽게 느껴졌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작가님도 머쓱한지 뒷머리를 막 만졌다.

윤여주
그런데 작가님. 장난 아니에요.


김석진
네?!

윤여주
날도 어두워졌고 작가님이 나 혼자 보내지 않을 거고, 그럼 작가님이 또 우리집까지 오면 난 안 보내줄 건데.


김석진
뭐예요, 그게···.

윤여주
나 오늘만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지 않은데···.


김석진
···알겠어요, 그럼 침대 가서 자요. 난 여기서 자면 되니까.

윤여주
소파에서 잔다고요?


김석진
가끔 여기서 자곤 해서 괜찮아요.

윤여주
나 때문에 괜히··· 그냥 갈게요. 나 때문에 작가님이 불편하게 자는 건 싫어요.


김석진
저 진짜 괜찮아요.

윤여주
그럼, 제가 여기서 잘게요. 제가 불편해서 안 되겠어요.


김석진
그건 제가 불편해요. 그냥 침대에서 자요. 난 진짜 괜찮으니까.

윤여주
···알겠어요. 그런데 작가님은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해요?


김석진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딱히 못 느껴봤어요.

윤여주
그냥 심심하다고 해주면 안 돼요?


김석진
네···? 어, 심심해요.

윤여주
그러면, 나랑 내일 데이트할래요?


김석진
데이트요···?

윤여주
네! 우리 내일 학교 가요. 고등학교요.

나에겐 학교가 그리운 곳일지 몰라도 작가님에겐 학교가 지옥이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석진
좋아요.


MEY메이
댓글 읽는 재미에 글 쓴다니까요. 오늘도 보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