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프롤로그


[ 2008년 1월 ]

윤여주
엇, 비 오네? 우산 없는데···. 아 몰라!

학교가 끝난 지금, 예보에 없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할 게 있어 좀 늦게 나온 터라 주변은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나뿐이었다. 가릴 거라고는 겨우 가방밖에 없었던 나는 조그마한 가방으로 어떻게든 비를 피하고는 냅다 뛰었다.

윤여주
아, 신호 왜 이렇게 안 바뀌는 거야.

저기요, 이거 쓰세요.

가방으로 가린 게 소용이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이 비에 흠뻑 젖어버렸고, 신호는 또 왜 이렇게 안 바뀌는지.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그때, 갑자기 나의 앞에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며 서 있었다. 주고 그냥 가려고 하길래 재빨리 난 그를 붙잡았다.

윤여주
앗, 저 신호만 건너면 바로 집이라 괜찮아요. 쓰고 가세요.

아니에요. 저도 금방이에요. 써도 돼요.

윤여주
그럼···! 제 집 앞까지만 같이 쓰고 가실래요? 그냥 제가 쓰고 가기에는 너무 죄송해서···.

어··· 그래요.

우리는 작은 우산 아래 닿을 듯 말 듯 붙어있었고 아닌 척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가까운 터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 사람 조금 아니, 많이 잘생겼다. 심장이 떨릴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김석진
아, 저 나쁜 사람은 아니고, 김석진이에요. 같은 교복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윤여주
에이··· 나쁜 사람일 수가 없는데요? 동갑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김석진
아, 전 2학년이에요.

윤여주
선배님 맞네요! 전 1학년 윤여주라고 합니다···! 아, 여기가 집이에요. 우산 씌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석진
아니에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봐요.

윤여주
또··· 만나요···ㅎㅎ 조심히 가세요···!!

이때부터 나의 첫 짝사랑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때 이후로는 우리의 만남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찾으려고 하면 더 찾을 수가 없는 그런 것처럼, 석진 선배도 그러했다. 찾으려 할수록 더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좁은 학교에서 못 찾는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로 아는 선생님, 아는 선배를 다 통틀어도 석진 선배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꼭 선배가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심심해서 인별을 툭툭 넘겨보던 중, 눈에 탁 꽂힌 한 풍경 그림이 있었다.

프로필에 들어가 자세히 보니 팔로우가 5명도 채 안 되는 무명의 미술 작가였다. 다른 작품들도 보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들이었고, 실력은 말도 필요 없었다.

윤여주
아니, 이렇게 멋진데 인기가 이렇게 없다고? 오히려 좋지? 나만 볼 거야!!

그런데 이 작가는 조금 특이한 면이 있긴 했다. 이름도 텅 빈 공백 칸이었고, 프로필 사진 마저 검은 바탕이었다. 그래도 평소에 풍경을 좋아하던 나는, 온통 아름다운 풍경 그림들이라 꼭 안식처를 찾은 느낌이었다.

윤여주
이렇게 좋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은 대체 누굴까···. 알고 싶다.


윤여주
어?

작가님의 스토리부터 게시물까지 알림을 다 설정해 놓고 나가려던 중, 마침 스토리 알림이 오는 거 있지.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도 없이 클릭했는데 난 매우 놀랐다.

윤여주
여기!!!

그 이유는 정말 낯익은 풍경 사진과 더불어 ‘그림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떡하니 있는 것이었다. 그 풍경은 우리 집 쪽 산 정상에서 남산이 보이는 위치에서 보는 시야와 딱 맞아떨어졌다.

더 놀란 사실은 나도 이 산 정상에 올라갈 때마다 항상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기 때문에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윤여주
뭐지? 여기가 유명한 곳이었나?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그렇다, 나도 이 산을 오르려 한다. 오늘 처음 알게 된 작가님일지라도 이미 나를 그림에 매료시킨 후였다.

어차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작가님에 대해 궁금함이 산더미라 그 정체를 알고 싶어, 이렇게 찾으려 애를 쓰는 걸 수도 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힘들게 뛰기도 하고 지쳐서 좀 느리게 걷기도 하며 겨우 정상에 올랐다. 얼마 만에 산을 오르는 건지 나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대가는 전혀 없었다.

윤여주
사람이 왜··· 한 명도 없지?

추운 겨울에 산을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기는 하겠지만, 등산객들은 그렇다 쳐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것도 맞기는 한데 내가 정상에 오르니 해는 이미 많이 저물어 있었다. 작가님은 그새 그림을 다 그리고 내려간 듯했다. 산을 내려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 아마 엇갈린 거 같았다.

윤여주
하··· 힘들게 올라왔는데.


‘띠링-’

또 알림이 울려 보니 이번에는 작가님의 게시물이었다. 올라온 그림은 또 나를 놀라게 하였고 나의 입에서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아, 그리고 이 작가님의 특징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림 게시물에 항상 작가님의 느낀 점이 붙어있다. 이번 게시물에는,

‘정말 좋은 곳이라 자주 가는 산 정상 풍경.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모습과 남산 풍경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 이 산은 아름다운 생각밖에 안 든다. 다음에 또 와야지!’

라며 쓰여있었다. 자주 오는 거라면 집이 가까운 건가? 정말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쌓여만 가고 풀리지는 않았다. 나도 처음으로 그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보았다.

윤여주
‘다음에는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자주 오는 곳인데 이곳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는지 몰랐어요. 해가 저무는 모습과 남산 풍경이 너무나 예쁘네요. 오늘부로 작가님 팬 할래요. 아름다운 풍경 그림 잘 보고 갑니다! 작가님 사랑해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댓글을 마구 날리고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난 어서 산을 내려갔다. 작가님을 보려고 나온 건데 보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그림으로 치유가 다 되었다. 그림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도 푹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거 같다.

[ 2013년 1월 ]

그렇게 5년 동안 작가님의 그림을 쭉 좋아했고 여전히 작가님의 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꾸준히 활발하게 그림을 보여주어 5년 전보다 당연히 훨씬 많은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했고, 팔로우도 꽤 많이 늘었다.

나만 알던 작가님이었는데 좀 유명해지기 시작하니 조금 질투가 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작가님의 소식이 갑자기 끊겼다. 그것도 말도 없이.


윤여주
‘작가님. 무슨 일 있는 거예요? 갑자기 그림도 안 올라오고 걱정이 돼서요. 무슨 일 없는 거면 답장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요?’

하지만 이 디엠은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읽음으로 바뀔 생각이 없었고, 난 너무나 당황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1년, 2년, 그리고 어느덧 10년이 지난 2023년 1월인 지금까지도 깜깜무소식으로 멈춰있다. 어느새 30세를 훌쩍 넘어버린 난 우떠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자리 잡았다.


MEY메이
이제부터 시작이라구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