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기댈 수 없는 사람


정한 시점, 돌아가는 길

정한은 가로등 아래를 조용히 걷고 있었다.

발끝이 자꾸 느려졌고,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저릿하게 내려앉았다.


정한
"하..."

그는 걸음을 멈추고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마를 꾹 짚으며 고개를 떨궜다.


정한
‘이젠 그만 봐야 한다… 포기해야지…’

그런 결심은 매번 했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머릿속엔 자꾸 서연의 웃음, 서연의 눈물, 서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품에 안았던 그 따뜻했던 체온까지도.

그는 조용히 속삭이듯, 허공에 읊조렸다.


정한
"…어떡하냐, 포기를… 어떻게 해…"

서연은 집에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천천히 몸을 숙였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푸르며, 무겁게 떨리는 손끝으로 옷걸이에 겉옷을 걸었다.

그 손끝에서조차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이서연
"선배님...."

작게 흘러나온 독백은 금방이라도 눈물에 젖어버릴 듯한 목소리였다.


정한
'나 이제 후배님 도와주기 힘들 것 같아요.'

그날 밤, 정한이 내뱉은 말이 서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없이 곱씹었지만, 결국엔 ‘선을 그었다’는 해석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정한 선배는 이제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자신이 무리하게 다가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연은 아무 말 없이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어깨는 축 늘어졌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힘없이 놓여 있었다.

시선을 들어 천장을 바라봤지만, 시야는 자꾸만 뿌옇게 흐려졌다.

마음이 가라앉고, 숨이 자꾸만 먹먹해졌다.

이서연
‘정한 선배님이랑 꽤 친해졌다고 같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조차도 안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게, 다정한 말 한마디에 설레는 게… 잘못된 일이라도 되는 걸까.

서연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심란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 하이브 건물.

서연은 회사의 부름으로 이른 시간부터 본사를 찾았다.

회의실에서 마주한 이사진들은 최근 촬영된 화보와 계약 자료를 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
"서연씨, 이미지가 정말 좋아요. 이번에도 기획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계속 이 컨셉 밀고 가봐요."

이서연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인사하며 회의실을 나오는 서연.

이서연
" ...어?"

형식적인 미소를 띤 채 복도를 걷던 그녀는 문득 앞에서 걸어오는 승철을 발견했다.

이서연
"승철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