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서늘한 그 공기 속

잘 어울린다고? 서연은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승철이 했던 말이 또렷하게 귀에 맴돌았다. 그녀는 취기때문에 정확히 무슨 뜻의 말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그 말이 자신과 정한을 두고 한 것이라는 걸 본능처럼 알아챘다.

이서연

‘...왜 그런 말을…’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순간, 서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정이 들키지 않게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서연

"저...잠깐 숙취때문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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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어, 어야~ 같이 가줄까?"

승철이 걱정스레 물었다.

이서연

"아, 아냐 오빠. 여기 있어..."

그때 마침 전화를 마친 민규가 돌아왔다. 서연을 보며 말한다.

민규 image

민규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서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서연

"네...괜찮아요 잠시만요.."

그녀는 홀로 밖으로 나섰다. 식당 문을 닫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안쪽에 앉아있던 정한은 서연의 등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날 듯 말 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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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아우, 취한다. 야 민규야 너 가서 아이스크림이랑 그런 것 좀 사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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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저 방금 다시 들어왔는데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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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야 됐어 내가 갔다올게."

편의점 앞, 조용한 벤치에 앉아 있던 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멍하니 공허한 시선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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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하아..."

이서연

"... ..."

서연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애써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술기운을 타고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당황스럽게 손바닥으로 눈을 문질렀다.

마침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정한이 작은 봉투를 들고 나왔다. 그의 한 손에는 갈색 병에 든 숙취해소제가 쥐어 있었다.

그녀의 앞에 정한이 조용히 다가와 앉더니, 작은 숙취해소제 병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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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이거라도 좀 마셔요. 몸도 잘 못 가누던데…"

그 말에 서연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시야에 들어온 건 정한의 무심한 듯 다정한 눈빛. 그 순간, 꼭 붙잡고 있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그의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서 마치 달빛처럼 온화했다.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그가 내민 병을 받아 들이켰다.

하지만 가슴 속에 잔뜩 맺혀 있던 먹먹함 때문에 목이 메어, “고맙습니다 …”라는 한마디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그마저도 금방 울컥 올라오는 울음기에 묻혀 끝이 흐려졌다.

이서연

"…흑, 으...으어어…"

서연은 약을 삼키듯 숙취해소제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냈지만,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더 이상 붙들어 둘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숨죽여 훌쩍이는 정도였던 울음이 이내 그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갔다.

가늘게 떨리던 어깨가 급격히 흔들리고, 숨소리가 끊어질 듯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정한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연

"흑…고, 고맙…정말...죄송…"

고마운 건지 미안한 건지 알 수 없는 말. 정한은 잠시 서연을 바라보다 혀를 찼다.

이건 분명 흥미나 호의 따위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휘청하며 몸을 잃었다.

정한 image

정한

"어...!!"

놀란 정한이 빠르게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가냘픈 어깨가 정한의 가슴께에 기댔다.

서연은 작은 숨을 몰아쉬었고, 정한은 팔로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감쌌다.

조용한 밤이었다.

입술을 꾹 다문 정한의 눈빛이, 말 대신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편의점 앞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