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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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을 빠져나온 여주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아슬하게 달린다.

다리는 애저녁에 풀린 듯하다.

여주는 이미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

그녀도 참 불운한 인생이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

아버지는 5억의 빚을 딸에게 떠넘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지,

그래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다가 한적한 데까지 도망쳐 왔더만 살인 현장같은 걸 목격하지•••

여주 본인이 생각해도 불운한지 억울함에 눈물이 서린다.

그 모든 것은 본인이 바란 것도, 본인의 의지대로 한 것도 아닌데.

이여주

이 정도면… 못 쫓아오겠지……?

여주는 지하실로부터 꽤 먼 데까지 도망쳤다.

학창시절 무조건 계주에 나갔고, 우승을 했던 전적이 있었으니 달아나는 데에는 최적화된 신체다.

이여주

달리기는 빨라서 다행이네…

여주는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어 그대로 주저앉는다.

달리기는 빠르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를 많이 하고, 안타깝게도 여주는 체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래도 뱀파이어들을 따돌렸으니 됐다.

여주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누군가 거칠게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챈다.

이여주

악…!!!

여주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은 의문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더 이상의 체력이 남아있질 않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보잘것없는 발버둥만을 친다.

사채업자 1

야, 너 달리기는 빠르다?

사채업자 1

근데 체력이 없네~

사채업자 1

우릴 따돌리려면 더 먼 곳으로 갔어야지.

이여주

이거 놔…!!!

여주의 알량한 발버둥으론 택도 없다.

그들의 즐거움을 사기만 더 좋을 뿐.

사채업자 2

애쓴다~

사채업자 2

그래 봤자 여긴 한적한 곳이라서 도와줄 사람도 없어.

사채업자 2

넌 그냥 여기서 우리한테 건강한 장기만 주면 돼.

또 다른 사채업자가 여주의 목을 칼등으로 쓸어올린다.

여주는 극한의 두려움으로 말문이 막혀버리고 온몸이 굳어버린다.

이여주

(이대로 죽는 건가… 진짜… 이대로…?)

여주는 속으로 절망한다.

사채업자들의 비웃음이 그녀의 귓속을 파고 들어 비참하게 느껴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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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도와줄 사람은 없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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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근데 난 사람이 아니라서.

정한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그들 앞에 나타난다.

사채업자들은 그가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챈 뒤 잔뜩 당황한 기색을 내보인다.

사채업자 1

너, 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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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알 거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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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그 아가씨 잡고 있는 손, 놔.

사채업자 1

아가씨…?

사채업자는 정한과 여주를 번갈아보며 바라본다.

사채업자 1

너…… 얘 경호원같은 거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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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뭐 비슷할 거야.

더 이상의 대화는 그저 귀찮다는 듯 그는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자 사채업자들의 바로 뒤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나오더니 어느새 지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수는 그들이 알아채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들의 복부를 맨손으로 뚫어버린다.

그리곤 손에 묻은 그들의 피를 더러운 게 묻은 것처럼 털어낸다.

마치 뱀파이어인 자기들도 피는 골라서 먹는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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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아가씨, 일어나.

정한이 여주에게 손을 건넨다.

여주는 혼자 일어나려 했지만 아까의 공포심 탓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힘마저 없어져버려 내키진 않지만 그의 손을 맞잡고 일어난다.

이여주

고맙다곤 안 할게요.

이여주

제가 본 게 있어서.

정한은 어깨를 으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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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아가씨 마음대로.

정한은 여전히 여주의 손을 잡은 채 기운을 느낀다.

아까 느꼈던 포만감이 착각이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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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역시나.

그리고 역시 아까 느꼈던 포만감은 착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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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아가씨, 잠깐 우리랑 어디 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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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위험한 곳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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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아가씨 목숨을 노리지도 않을 거고.

이여주

어차피 여주에겐 돌아갈 곳이란 없다.

집에 가 봤자 또 다른 사채업자들이 찾아올 테니.

이여주

알겠어요.

여주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또 다시 사채업자들에게 쫓길 바에는 위험하진 않다는 그들의 말을 믿고 따라가는 게 나을 테니.

이여주

근데… 이제 손 좀 놔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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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그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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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순간이동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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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중간에 손 놓으면… 뭐… 어디로 갈지 나도 모른다?

그들의 주위를 검은 연기가 감싼다.

점점 아득해져가는 시야에서 여주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다.

***

***

시야가 뚜렷해질 때 의외로 환한 곳이 보여 여주는 내심 당황한다.

이여주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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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우리 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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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지금부터 할 얘기는 밖에서 하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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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우선 앉아.

정한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홍지수 image

홍지수

난 차 좀 타올게.

여주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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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여기서 살아.

이여주

네??

여주는 앉자마자 황당한 소리를 들어 목소리를 높인 채 되묻는다.

이여주

무슨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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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말 그대로야. 여기서 살라고.

여주는 지금 이 상황이,

그의 말이

당황스럽고 황당스럽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