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그리고 사랑
15


김여주
[뭐 오셔두 돼요..]

여주가 주소 찍어주는데 윤기 회사에서 오는거라 엄청 빨리 옴.

띵동!

여주가 초인종 소리에 싱긋 웃으면서 문 열어주는데 그 모습마저 자기가 알던 옛날 김여주랑 너무 닮아서 윤기 심장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야.

여주가 부엌 식탁에 윤기 앉히구 이것저것 내오는데 전부 자기한테 요리해줬던 빵에 차에,, 한결같이 아기자기한 취향에 피식 웃으면서 여주 보고 그런다.


민윤기
내가 알던 김여주 맞네..

여주가 눈 똥그랗게 뜨고 윤기 보는데 윤기가 여주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그럼.


민윤기
이거요…연한 캐모마일티랑 그.... 크로크무슈 맞죠? 안에 옥수수 뺀 거고요.


민윤기
여주씨 옥수수 못 먹지 않아요? 스물 세살 겨울에 엄청 채했는데 기억 하나도 안 나죠..?

여주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해. 한 입 베어 물지도 않고 자기 식성을 줄줄 꿰고 앉아있는 앞의 사내가 분명 자기 과거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것 같아.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꼭 되찾아야겠거든.. 스물 네번의 사계 속 자신의 모습을 말이야..

캐모마일 티가 담긴 찻잔 양 손으로 꼭 쥐고 있다 윤기 가만히 바라봄. 고요한 정적 속에서 여주가 드디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어.

김여주
'나요…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윤기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어. 함께했던 첫 연애, 첫 데이트, 첫 입맞춤, 첫경험, 날 보며 싱그럽게 웃어주던 시간들 사이로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울먹이던 두 눈까지..남김없이 떠올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윤기 잠시 망설이다가 여주 눈 보면서 말함.


민윤기
여주씨는요.. 참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민윤기
집에 오는 길에도 말이죠,,,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동물들 있으면 한참을 쓰다듬어 주던 사람이었는데..


민윤기
자기 목도리 풀러서 남의 목에 묶어주던 사람이었고, 제가 흘린 말 한마디에도 가슴 졸이고 신경 써주던 사람이었어요.


민윤기
여주씨 요리도 되게 잘했는데,, 게살볶음밥 말이에요..


민윤기
지금도 가끔 해먹나..? 그거도 엄청 맛있었는데,,

윤기 거기까지 얘기하다가 눈물 고여서 감추려고 눈 내리까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려 식탁 위로 방울방울 흘러내림. 여주 당황해서 얼른 휴지 갖다가 눈가에 대구 꾹 눌러줬어.

뭐가 되게 당황스럽지..아예 다른 사람의 삶 이야기를 듣는 것 같고 말이야. 애써 심호흡하는데 윤기 붉어진 눈으로 여주 보면서 자기도 주책이라고 하면서 씨익 웃어보이는데 여주 심장 덜컹 내려앉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머리도 슬슬 아파오지만 두 가지는 확실해졌음. 하나, 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저 사람은 자기를 무척 사랑했다는 거. 둘, 자기 앞에서 눈물 쏟고 있는 저 남자에게 제가 무지하게 끌린다는 거.

여주가 휴지 들어 윤기 눈가 위에 꼭꼭 눌러주고 있는데 정국한테 문자 왔어.


전정국
[여주누나, 밥은 먹었어요? 심심하죠?]

여주 그 문자에 빙긋 웃으면서 답장 보냄,,

김여주
[하나도 안심심해 ㅎ 저번이 봤던 윤기씨랑 같이 있거든]

띠링띠링!

여주가 문자 보낸지 몇초도 안되서 정국한테 전화 왔어. 여주가 정국이한테 전화 받은 건 처음이지, 살짝 놀라서 전화기 귀에 갖다 대는데 정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함.


전정국
당장 민윤기 바꿔봐요

윤기 태연하게 전화 받음


민윤기
예. 예. 그런데요. 같이 있기만 했습니다.

윤기 미간 점점 구겨지고 전화 사이로 정국이 화난 거 여실히 느껴져. 여주도 느끼겠지 정국이가 왜 인지는 몰라도 윤기 엄청 싫어한다는 거. 왜 그러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즈음, 윤기 옷매무새 정돈하면서 그래.


민윤기
이제 가 봐야 겠네요.. 정국씨 엄청 예민하네요?

여주 약간 아쉬워하면서 종이에 끄적임.

김여주
'그럼 문자로는요? 문자로 하면 안되나?'


민윤기
ㅎ 알겠어요

윤기 큰 손으로 여주 머리 살살 쓰다듬어 주는데, 왠지 모르게 몸이 베베 꼬이는 기분이야. 윤기 나가고 무의식적으로 베란다로 향했어.

점점 멀어져 가는 윤기 바라보고 있는데 윤기 울 것 같은 얼굴로 정확히 자기 층 올려다 봤어. 서로 놀란 표정으로 몇 초간 응시하다가 이내 여주가 먼저 방긋 웃어 보이니 윤기도 씁쓸하게 웃으며 손 흔들어줌.

김여주
(입모양으로) 조심히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