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그리고 사랑

16

그날 저녁

띡띡띡띡

정국 누구보다 빠르게 칼퇴하고 집으로 달려 들어왔어. 여주 이어폰 꽂고 노래 흥얼거리며 설거지하고 있는데 정국이 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여주 허리에 팔 두르고 목에 얼굴묻어서 숨 한번 크게 들이킴.

김여주

(뒤돌아보며) (왕자강아지.. 오늘따라 스킨쉽 디게 강하네..)

김여주

(입모양으로) 다녀왔어?

여주가 정국이 입에 입맞춰주면서 다녀왔냐고 입 모양으로 속삭이는데 정국이 표정 눈에 띄게 굳어있지. 눈물까지 그렁그렁 고여서는 여주 양 손잡고 그런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울먹) 누나, 민윤기,,,,왜 데려온거에요.

여주 그 말 듣고 살짝 표정 굳혔다가 다시 종이에 끄적임.

김여주

‘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국아?’

국이 그거보고 머리를 한 대 쿵 얻어맞는 기분이야.

전정국  image

전정국

뭐라구요?

김여주

(종이로)'나 이렇게 사는 거 이젠 답답해.'

김여주

(종이로)'기억도 되찾고, 다시 말도 하고, 사람들도 자유롭게 만나면서 살고 싶어..나 좀 살려주라..제발'

여주도 이내 눈가 촉촉해져서 정국이 손 잡고 그러는데 정국이도 한 편으로는 미안한 거지.

여주의 유일한 인간관계인 저는 매일 저녁에나 들어오지. 혼자 말도 제대로 못해 사람들 만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저니까..

어차피 여주 과거 기억 돌아오면 민윤기가 했던 만행들도 기억날 꺼 아닐까.. 그런 기억을 갖고도 다시 옛 연인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여주의 기억의 단서의 모든 것을 쥐고있는 윤기를 떼어놓는 건, 여주에게 이 세상과의 마지막 끈을 끊는거다.. 이런 생각으로까지 미치자, 정국 한숨 푹 쉬며 결국 허락해줌.

여주 정국이보고 고마워 하면서 정국이 목에 팔 둘러 꼬옥 안아주는데 정국이 으스러질 듯 여주 품에 안으면서 그럼..

전정국  image

전정국

누나, 나 언제까지나, 사랑해야 해..나 누나 없으면 죽는 거 누나가 제일 잘 알죠..

전정국  image

전정국

사랑해요, 누나.

------

윤기 여주한테 그 말 듣고 그날 부로 회사에 한 달 휴가 냈어. 정국이랑 합의한 하루 세시간. 딱 그만큼만 집에 오거나 밖에 나가서 같이 돌아다니고 그럼. 같이 한강 푸드트럭 가서 여주가 자주 먹고는 했던 청포도 에이드 같은거 건네면서 그럼.

민윤기 image

민윤기

(청포도 에이드를 건네며) 너 이 맛 모르면 안 되는데..

민윤기 image

민윤기

옛날에 일주일에 한 잔은 꼭 마실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거 기억 안나?

윤기가 선선한 강바람에 흩날리는 여주 머리카락 뒤로 넘겨주고 그러지... 여주는 윤기랑 같이하는 일상이 모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

윤기 자기 구남친이였으니까 둘이 깨 볶던 거나, 추억 같은 거 종종 말해주고 그러는데 여주에게는 아무런 기억조차 없으니 되게 윤기 연애사 듣는 것 같아서 기분 좋음.

민윤기 image

민윤기

내가 너 초밥먹고 싶다고 했는데 안사왔을때

민윤기 image

민윤기

너 달래주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민윤기 image

민윤기

너 계속 삐져있어서 결국 24시간 초밥집 가서 먹고왔잖아

김여주

(웃으며) '재밌다ㅎ 또 해줘요!'

이젠 윤기가 해줬던 이야기도 잠들기 전 곱씹어보는 게 여주 인생에서 낙이 될 정도로 급하게 윤기한테 빠져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