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사냥꾼

<17화>: [배진영] 간섭

"자, 입학식 잘 마무리한 거 축하하고-"

교탁 위에 팔꿈치를 슬쩍 올려놓고는 학생들을 훑어보는 선생의 말이 읊어지다 종지부에 다다를 때쯤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입학 첫 날부터 자는 쟨 뭐냐. 깨워. 자리는 마음대로 앉아라. 이상, 조례 끝. 임시반장은 알아서 정하고 교무실로 와라."

잔다고,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간이 큰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선생의 그 말에 모든 학생들의 눈길이 쏠렸다.

웅성거리는 것을 들어보니 일진인가, 문제아인가 하는 등의 영양가 하나 없는 추측들만 늘어놓기에 한숨을 쉬고 헤드셋을 잡았다.

무슨, 노래를..

고개를 틀기 바로 직전에, 막 잠에서 깨어 머리를 쓸어넘기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긴 생머리에 청순의 정석일 것만 같은 너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여려보였다.

아니, 단정짓자면, 너는 너만을 보게 하는 그런 유혹적인 어떤 것이 있었다.

처음엔 그것 뿐이었다.

콩쿠르, 콩쿠르, 콩쿠르. 한참동안이나 학교를 빠지며 입학식은 추위에서 맞고더운 여름이 된 지금까지 해외며, 전국투어까지 서슴치 않고 다녔다.

오랜만에 온 휴식시간이랄까, 하며 잊어버린 교실을 쪽지에 적어둔 것을 보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나무 문을 열고 들어오니 수업의 흐름이 끊기며 나에게 일제히 신경을 쏟는 사람들을 애써 무시하곤 빈 자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교과서가 있을리 만무하니 옆자리의 아이를 툭 건드리는 순간,

You

"아, 씨.. 김재환 개.."

잠꼬대로 갑자기 욕설을 퍼붓는 것에 얼굴을 확인하니 무언가 익숙하다는 느낌에 명찰을 보곤 아, 그 때 걔구나.

이미지가 영 다르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뒤로하고 조금씩 머리를 돌려가며 흥미로운 너를 힐끔힐끔 쳐다만 보았다.

지켜본 너는, 무언가 사연이 많은 아이 같았다.

창밖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가 하면, 선생님이 이따금씩 이름을 불러도 얼핏얼핏 대답만 하고 수업시간에는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

누군가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왕따는 아닌 것 같은 아웃사이더였으나 나름 독특한 매력에 자꾸만 네게로 관심이 갔다.

갈색 빛을 띄는 머리카락에, 엷게 흰 피부. 마른 몸. 키가 큰건가, 외형적인 것을 먼저 보던 초반에는 소녀스러운 니가 재미있었고,

의외로 말을 아끼는 평소완 다르게 가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언성을 높이고 미소짓는 너에 기분이 이상할 때도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너는 내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지만, 지나치는 그 순간에 니가 가진 특유의 체향에 매료되어 가만히 자리에 서있을 때가 늘어났다.

여름이 그렇게 가고 어느 날, 또 다시 온갖 대회에 출전하기에 바빠 늦가을이 온 지도 몰랐던 어느 날에.

오랜만에 몇 번가지도 않은 학교에, 오로지 너 때문에 간 학교에서는 싸늘한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있어 추울 법한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는 니가 있었다.

대놓고 쳐다보는데도 한 번을 안 돌아본다, 하고 있을 적에 문득 너는 내 이름조차 모를 수도 있겠다 하며 씁쓸한 기분을 삼켰다.

겨울방학이 되어 혼자 피아노를 연주할 곳이 필요하다며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자리를 잡고 내 공간이 되었을 즈음부터 악보 속 노래가 읽히지 않아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그냥 예쁘게 웃는 니가 보고싶었던 것일수도 있겠다. 한참을 못 보았으니.

푸스스 웃으며 손을 건반 위로 얹으려는데 울리는 핸드폰의 화면에서 졸업식 준비로 주말부터 모이라는 말들이 창 위로 띄워졌다.

시끄러우니까 알람을 꺼두어야지, 약속시간만 보고 알람삭제를 누르고서야 음표를 떠올리면서 화음곡을 쳐내렸다.

보고 싶다.

그리움이 주제가 된 곡이었다.

정말 아무런 기대도 없이 교실문을 벌컥 열어재끼고 아무렇게나 앉아 휴대폰을 보며 스크롤만 주구장창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 쾅하고 큰 소리를 내며 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별 관심이 없었지만, 노래가 끊기도록 하는 공백기에 타이밍 맞추어 어깨를 톡, 두드리는 것에 돌아보니,

보고싶었던 니가 있었다.

배 진영 image

배 진영

"..뭐야."

일부러 차갑게 건넨 말에 너는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었다. 귀엽, 아니. 아니지. 이게 아닌데.

You

"음.. 그러니까. 다른 애들은?"

배 진영 image

배 진영

"..몰라."

약속시간만 본 나로서는 짐작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려했다. 왜 떨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조금 지나고, 혼자서 음악실로 향했을 때.

단둘이 너와 있다는 건 내게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왜 떨리는 건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한 것이었음을 느꼈다. 한 마디로 나도 몰랐지. 그때까지만 해도.

복도의 끝에 숙여서 삐죽, 머리를 내민 니가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그동안 들려주고 싶었던 곡을 연주했다.

티나게 움직이는 너에 어쩔 수 없이 아는 척을 했지만, 혼자 가겠다는 너를 위험한 밤길로 보낼 생각은 없었기에 따라나섰다.

순전히 내 자의로 말이다.

You

"음, 아 그게. 나도 친구 없거든. 그래서."

일부러 짖궂게 친구가 없냐는 너의 말에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곧이 곧대로 다. 안절부절, 내가 상처 받을까봐 한 마디를 더 붙인 너에 대한 감정이 오묘했다.

아니, 그건 호감이었다.

무작정 친구가 없으니, 니가 해주겠냐는 말에 당황한 너는 횡설수설하더니 긍정을 표했다.

드디어, 이어질 줄 몰랐던 연결고리 하나가 엮였다.

다음 모임에 가보아하니 너는, 무리에서 빠져나와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다. 나는 그것보다 예전부터 신경쓰였던 너의 얇은 옷이 더 눈에 띄었다.

어색하게 안녕이라는 인삿말을 건네자 모래바람을 맞으며 대답해주는 너에 충동적으로 내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키가 좀 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작다라만하니 오밀조밀 모여있는 것에 미소지어졌다.

매어준 목도리를 뿌듯하게 보고 있자 니가 손가락을 내 뺨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온기, 찬 바람이 부는 데도 따스한 손이 나를 어루만지니 일순간이 정지되었다.

무언가 말하고 있는 너의 입모양만 보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의 큰 소리도 나를 지나쳤다.

한동안을 그 자리에 서서, 너의 뒷모습이 아른거리는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평소같았다면 학교의 소모임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내가, 너를 보려 잠시라도 기쁘게 준비를 끝냈다.

이렇게 학교 가기 좋아한 적이 있었나, 아니다. 학교를 몇 번 가보지 못했구나.

어렸을 적부터 공연하는 광대도 아니고,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피아노만 죽어라 쳐댔으니 친구란 있을리가.

이젠 한 명 생겼지만.

마음 속 구석에서, 친구로만 있기는 싫다는 욕심이 피어올랐다.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교실에 다가서니 모두가 내가 이런 곳을 올 줄 몰랐다는 눈으로 빤히 보고있기에 애써 무시하고 너의 옆으로 가 앉았다.

최대한 밝게 겉치레한 안부말을 하고, 조금 이상하다는 투로 나를 말하는 너와 주위에 너와 나를 이으려하는 억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기분 좋았는데.

일명 무임승차로 네게 과제를 뒤집어씌우려고만 하지 않았다면 괜찮은 아이로 남았을지 모른다.

이런 일엔 당하고 있으려나, 하여 내가 하지도 않던 욕을 써보이니 무섭다는 것인지 수법이 통한 듯한 남자애가 우스웠다.

그렇게 역시 여린건가, 하고 있으니 일어나서 너는 조물거리던 몇가지 잡동사니들을 집어던지고 힘차게 맞받아쳤다.

뭐야, 나 없어도 잘만 하네.

예쁜 짓만 해.

오늘따라 유독 예뻐보였다. 그래, 인정한다.

내 손을 거칠게 잡는 너를 쫓아가는 내가 흔한 드라마 여주인공 같아 손을 놓자 씩씩대는 니가 귀여웠다.

배 진영 image

배 진영

"나는 이때까지 내 이상형이 덜렁인 줄 알았다."

나는 네가 그렇게 보였으니까. 인정할게.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고, 나의 이상형이며.

-나의 첫사랑.

그리고, 너의 말을 조금 흘려들으며 너만 멍하니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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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근데 아니었나봐. 똑 부러지는 애가 더 좋다."

매우 간단히,

입술을 이마에 맞댔다.

배 진영 image

배 진영

"예를 들면, 너."

너는 그걸 알까.

이마에 하는 키스의 의미는,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난 너에게 반했어.

그러니까.

너 이제부터,

내가 간섭할 거라는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