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수사반 BTS 2
EP 19. 폐장 시간 아쿠아리움의 진실 (3)


연여주
"……."

무릎도 아프고, 복부도 아프고, 허벅지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 분명 눈을 떴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손목과 발목에 거친 느낌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밧줄로 묶여있는 모양이다.


프시케
"일어났어?"

귓가에 울리는 쨍한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프시케가 날 데리고 온 건가. 여주는 입에 묶인 천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최면제를 주사한 건가. 원래는 5일 동안 자지 않아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래도 몇 분 눈 좀 붙였다고 아까보다는 쌩쌩한 편이었다.

그냥 경찰서로 오기 전에 30분이라도 잘걸. 뭣같은 컨디션으로 이렇게 잡혀있으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프시케
"특별수사반 팀원들이 너 엄청 찾더라. 짧은 기간에 꽤 정이라도 쌓였나 봐?"

연여주
"……."


프시케
"뭐, 곧 만나게 될 테니까 기다려. 지금 이건 일종의 경고라는 것만 알아두고."

연여주
"…!!!! ㅇ, ㅇ…!!!"

프시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군가 여주의 몸을 확 들어올렸다. 갑자기 들어올려진 몸에 크게 움찔거리며 다치지 않은 반대쪽 무릎으로 턱을 차 올리니,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프시케
"적당히 하고 빨리 데려가. 시간 못 맞추겠다."

"……네."

어떻게든 손에 닿지 않으려 몸부림을 쳐봤지만 양손과 다리가 묶여있어 어림도 없었다. 눈과 입도 막혀있는지라 오로지 귀에만 의존해야했다.

그리고 그렇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정호석
"…형. 아무래도 이거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민윤기
"뭐가. 빨리 더 돌기나 해."


정호석
"아니, 이 벽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수족관으로 되어있지 않은 벽을 짚으며 호석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에 윤기는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대충 손등으로 닦아내고는 호석과 같이 벽에 손을 댔다.


민윤기
"…그러네. 뭐, 부숴볼까?"

정말로 호석의 말대로 무언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불규칙적이었고, 물소리라고 하기에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너무나도 작았다.

어차피 이곳은 이제 기관의 소유도 아니고, 그저 어느 국민의 소유일 터. 배상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닥치는대로 뭐라도 해야했다.

윤기의 말을 알아들은 호석은 주위를 빙 둘러보다 좋은 걸 찾았다며 손에 소화기를 들고 왔다. 짜식, 통 크게 가져왔네. 해맑은 호석을 보며 윤기가 피식 웃었다.


민윤기
"저기요,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뒤로 물러나세요. 벽 부십니다. 하나, 둘… 셋!!"

콰악–!!

소화기를 잡아 반동으로 벽에 박아넣었다. 진짜 벽이면 어떡하지,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이 벽은 가벽이었고 손쉽게 무너트릴 수 있었다.

얇은 나무판자들이 공중에 휘날렸다. 가벽을 이루던 물질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 호석이 먼저 벽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윤기의 손에서 소화기를 뺏어 다시 한 번 벽에 던졌다.

콰악–!!


민윤기
"야야, 왜 그래! 이거 다 무너져!!"


정호석
"안에… 안에 사람이 있어!!"


민윤기
"…뭐?"

사람이라니. 믿을 수 없는 말에 윤기는 호석의 행동을 멈추고 커다랗게 뚫린 구멍 안을 들여다 보았다. 겁먹은 듯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이 총 여섯 명.


민윤기
"괜찮으세요? 왜 여기에 계세요?!"

"사… 살려주세요……."


정호석
"정국아, 남준아. 너희 다 여기 와 봐야 할 것 같아. 그, 한쪽만 벽인 곳."


김남준
— 왜? 무슨 일 있어?


정호석
"여기… 사람 있어. 여섯 명 정도 되고.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김남준
— 뭐, 사람? 알겠어. 금방 갈게.

무전을 하는 호석을 뒤로 하고 윤기는 부신 가벽 안으로 발을 옮겼다. 빛 하나 비치지 않는 곳에 발을 들이니 역한 냄새가 훅 코를 찔렀다.

기분 나쁜 느낌에 윤기는 바로 팔을 들어 코와 입을 막았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민윤기
"……."

역시나. 천장에 모래 주머니가 걸려있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안에서 하얀 가루를 톡톡 떨어트렸다. 저 모래 주머니에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저 안에 무언가 있는게 틀림없다.


정호석
"자, 저한테 기대세요. 발 조심하시고."

어느새 호석은 안에 들어와 사람들을 부축하고 있었고, 윤기도 그 모래 주머니의 끈을 잘라버린 뒤 호석을 도와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얼마나 이 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쌀쌀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반팔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최소 3개월은 이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전정국
"형! 우리 왔어. 사람들이라니, 무슨… 이 안에 있었던 거야?"


민윤기
"어. 이분들도 챙겨서 같이 나가야 할 것 같아. 석진 형, 내 말 들려?"

윤기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여섯 명 모두를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석진
— 어. 들려. 너 인이어 좀 켜두면 안 되냐? 자기가 필요할 때만 키네.


민윤기
"소리가 겹쳐서 들리잖아. 복잡해. 여기로 엠뷸런스 좀 보내줘. 사람은 여섯 명 탈 거니까 넉넉하게 오라고 해."

남준과 호석, 정국이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윤기는 수족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쾌쾌한 곳에 있었나, 괜히 숨이 답답한 것 같았다.


민윤기
"아 그리고 패딩이랑 따뜻한 물도 많이 챙겨줘."


김석진
— 패딩이랑 물? 아직 패딩 입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그리고 너 외투 입고 갔잖아.


민윤기
"나 말고 여기서 발견된 사람들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탈수 증세가 조금 있는 것 같아. 여유 있으면 작은 간식도 갖다,"

풍덩–


민윤기
"……."


김석진
— 뭐라고? 작은 간식? 어떤 거. 빵? 밥? 면?

석진의 질문에 윤기는 답할 수 없었다. 계속 보고 있던 파란 물과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던 수족관에, 무언가 들어갔다.

투명한 창 넘어로 그 무언가가 뚜렷하게 보인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눈과 입, 양손과 다리가 밧줄로 묶여진 사람….


김석진
— 아아. 안 들려? 여보세요? 민윤기. 왜 대답을 안 해.


민윤기
"……연여주."


김석진
— 뭐? 갑자기 왜 여주 씨가,


정호석
"어? 형!!!!"

분명하다. 여주가 분명했다. 왜 수족관 안에 들어간 거지? 왜 저렇게 묶여있는 거지?

윤기는 수족관 안에 들어간 사람이 여주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아까 내부를 둘러볼 때 찾았던 관계자실로 뛰어갔다. 마네킹, 붉은 물, 폐장.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연여주는….


민윤기
"……연여주!!!!!!"

위험했다.


풍덩–

다짜고짜 물에 빠진 여주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발버둥부터 쳤다.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어 공기가 최대한 빠지지 않게 만들었고, 몸을 최대한 흔들어 눈을 가리는 천을 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연여주
"……."

몸에 살짝살짝씩 닿았던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모두 한 방향으로 헤엄친다 해야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여주는 최선을 다해서 몸부림을 쳤다. 무릎의 고통을 참아내고 부력을 이용해 다리를 뒤로 보내서, 뒤로 묶인 손가락을 어떻게든 움직여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었다.

연여주
"…윽!"

다리를 묶은 밧줄을 풀고 이제는 손에 묶인 밧줄을 풀려 하니, 아까 하이힐에 찍힌 어깨가 너무 아팠다. 하필 뒤로 묶여있는지라 알아서 풀기도 힘든데…. 그러는 와중에도 몸은 계속 가라앉았다.

스으윽–

연여주
"…!!"

순간, 소름끼치는게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작은 물고기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상어다.

윤기가 지도를 보며 걸어갈 때 자기 혼자 몰래 중얼거리던 말이 생각났다. 마네킹, 붉은 물, 폐장 시간. 분명 여주를 못 들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한 말이었을 테지만, 워낙 어렸을 적부터 오감이 예민한 여주에게는 다 들렸다.

마네킹, 붉은 물, 폐장 시간, 그리고 상어까지. 이렇게 네 단어를 합쳐보니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폐장 시간에 상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피가 흩어져 붉은 물처럼 보였겠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충 여기까지는 알겠다. 그래, 알겠는데… 이제 알아서 뭐하냐는 말이다.

다리는 풀었다지만 아직 손과 눈, 입은 풀지도 않았다. 간간이 숨도 빠져나가 이제는 버틸 시간도 얼마 없었다.

질식해서 죽느냐, 상어에게 밥이 되어 죽느냐. 두 가지 결과만이 남은 건가.

스으윽–

연여주
"……."

또 다시 상어가 다가와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전에 보스가 지나가듯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상어에 관련된 말이었었는데….

'여주야. 상어는 먹잇감을 포착하면, 바로 잡아먹지 않아. 먹잇감의 주위를 뱅뱅 돌아 공포로 압박하지. 마침내 먹잇감이 피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면….'

'콱!! 물어뜯기는 거야. 앞으로 여주는 그런 무시무시한 상어 같은 사람이 돼야 해. 그게,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야.'

연여주
"……."

상어는 개뿔. 지금 제가 그 먹잇감이 되게 생겼다고요.

여주는 천 사이로 입술을 깨물으며 밧줄에 묶인 왼손을 꼼지락거렸다.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오른팔을 못 쓰니 아주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허리춤에 있는 잭나이프를 들어 세로로 세웠다. 그리곤, 그것을 왼손과 오른손 사이에 넣어 손목을 좌우로 흔들며 밧줄을 살살 긁어냈다.

중간에 위치를 잘못 잡았는지 손에 베이는 느낌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청각에 집중하고 물의 흐름에 집중했을 때, 상어는… 다가오고 있었다.

연여주
"……윽."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베였다. 혹시 상어가 완전히 다가왔을 때에도 밧줄을 못 풀 것을 대비해 무게중심을 허리로 잡았다. 언제든 반동으로 발차기를 할 수 있게. 이것이 지금의 최선의 방법이었다.

무게중심을 허리로 잡고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있으니 몸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빨리… 빨리 잘려라….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물살의 방향이 바뀌고 흐름이 바뀌었다. 상어가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촉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던, 촉.

밧줄을 자르는 것을 멈추고 몸을 더 구부정하게 만들었다. 여차하면 발길질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며 곧 다가올 고통을 기다리던 그때,

풍덩–

또 한 명의 누군가가, 수족관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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