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김남준은 괜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로서는 이여주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의아스러운데, 전정국 또한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김남준을 쳐다보고 있다.

나와 당황한 포인트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전정국
눈 밖.


김남준
…어, 이해를 못 했어? 뭐가 문제지?

고개를 까닥이고, 목을 가다듬은 후에 김남준이 큰 키를 천천히 펴고 일어나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안 설명해 주고 넘어가면 멱살이라도 잡을 참이었는데 이건 좀 다행.

그리고 나는 곧이어 김남준이 왜 엑스트라가 아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김남준
네가 사람을 지웠다는 걸 알아, 예화야.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할 수 없는데…… 강다다는 알고 있더라.


한예화
그거 김, 김석진이었지.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장면.


강다다
- 절대 그 종이 주지 마, 씨발!

……아.

소설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 버리고 나서, 김석진은 더 이상 유티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 악역이 될 이유도 없어졌다. 나를 싫어하지 않으니까.

나는 그냥 관전 중인 작가였을 뿐이니까.

김석진은 이 세계에 있어 봤자 의미가 없고…… 그래서 사라졌다. 김석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도 전부 함께.

하지만 강다다는 기억했고,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지. 그래서 나에게 종이를 주지 말라고 말하려고 왔던 거야. 김석진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퍼즐 조각이 차차 맞춰지네…… 하, 이 걷잡을 수 없이 나쁜 사람이 된 기분 어떡하지? 아무튼 이게 다 김석진 때문이다.


김남준
나 역시도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있어.


한예화
그래, 너도 김석진도 원래는 있지 않던 사람이었…

쉬발 맞다 얘는 너와의 마법학교를 모르지!


한예화
었, 다고 드을었어.


김남준
나는 거울의 방을 찾았으니까.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화 네가 네 상태를 봐야 했기 때문에 나는 거울의 방을 찾는 도구로 이용됐어.



김남준
그래서 내가 김남준이 된 거야, 예화야. 네가 지어 줬던 이름이잖아.

그래. 내가 지어 줬던 이름이지……


전정국
이용한다는 거에 대해서, 확신은.

전정국은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그런지 상당히 굳어 있는 표정이다. 아닌가, 쟤 표정은 원래 저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냥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로 파악하건대 좀 당황한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왜 쟤는 누군가가 본인을 이용할 거라고 판단했던 거지? 실질적으로는 아무도 이용되고 있지 않은데.

소설의 수단으로라면 모를까.


김남준
음~ 그러네. 확신.


김남준
그냥, 느낌이 그래.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그것 말고는 답이 없잖아.


김남준
누군가 나를 예화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것 말고는 그, 석지인이는 사라지고 나만 남을 이유가 없어.

개천잰데? 추리력이 엑스트라 수준이 아니신데요. 얘 어떻게 전직 못 시키나, 작가 권한 이런 거 없나.


김남준
아니면 여주를 도와야 하는 수단일 수도 있고.


전정국
이여주는 왜.


김남준
여주 옆에 있으면 이상한 일이 생기거든. 책장이 쏟아지고, 샹들리에가 부서지거나…… 사고가 발생하지.


김남준
그리고 민윤기나 김태형이 여주를 도와 줘. 하하, 말하고 나니까 연극 같네.

씨바 맞다 나 김태형이랑 화해도 해야 되는데! 할 일이 태산이다. 오늘은 마법의 소라고둥도 받으러 가야 하고, 화해도 해야 하고.

뒤끝을 안 남겨 놔야 실런에서 떠돌다가 지존최강마법사 김태형 님의 바람을 맞고 뒈지는 일이 없지 않을까? 연애 감정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니고……

물론 난 쟤네처럼 빙의글 같은 사랑 해 본 적 없어서 잘 모르지만. 허허, 허허. 옘병.


한예화
그 거울의 방,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아?

김남준은 짐짓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보조개를 띄웠다. 뭔가, 뭔가 크게 불길하다.


김남준
사라졌어.


한예화
어디로?


김남준
콩퓜은 이제 유토피아에 없어.


한예화
어떻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일이 없냐~


전정국
꼭 필요해?


한예화
꼭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있으면 좋긴 한데…… 아니, 뜯어서라도 올 것 같이 물어보지 마세요.


전정국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뜯어 와.

맞는 말이네. 그럼 왜 물어봤니? 버르장머리 없는 사기캐 같으니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쯧쯧.

내적으로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면서 너와의 마법학교에 썼던 그 순둥하고 귀여운 김태형에 대해 생각했다.



김태형
- 이여주, 안녕.

아오. 내가 뭘 잘못했지? 도대체 비아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은 뭘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이없을 뿐.

그냥 화해를 안 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



미나토자키 사나
예화야!


한예화
엄메깜짝야!!

구석에서 고양이처럼 얼굴만 쏙 내민 사나 때문에 나는 뒤로 넘어졌다. 덕분에 전정국의 공기 서포트를 받았고.

박지민 전정국이 안 놀래키니까 이제 네가 내 수명을 줄이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세상 사람들아. 이 수련회 담력체험을 세 달 동안 하는 기분 뭐죠.


미나토자키 사나
미안! 귀 달린 소라 여기 있어.


한예화
미안할 필요는 없어. 좀 놀래긴 놀랬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전정국
많이 넘어지던데.

이 새끼가 나를 쫄보로 만드네? 너도 구석에서 갑자기 사람 튀어나왔을 때 안 놀라나 보자.


전정국
풉.


한예화
……화낼 기운도 없다.

그래 놀라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 놀라면 사기캐 광공 이미지 실격인데. 캐릭터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놀라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제 이런 모습에도 적응했다. 이곳에서 소설 속 인물들과 부대낀 지 몇 주째, 아니 몇 달째인데 저런 미친 얼굴들을 매일 마주치면서 아직도 비현실적인 대사들에 당황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암.

애당초 전정국이 사람을 무서워는 할까? 한국에서는 귀신보다 돈이 무섭고, 돈보다 사람이 무섭다 그랬는데……

나는 사나의 희고 얇은 손 속에 가득 들어찬 크기의 소라를 보았다. 소라 모양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디자인이다. 초록빛으로 은은하게 반짝거리고 있는 게…….

어딘가 익숙하게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한예화
잠깐, 마법의 소라고둥?


미나토자키 사나
에?


한예화
어? 아니, 내 예상보다 훨씬 저기,


한예화
어…… 예쁘게 생겼다고!

내 손으로 넘어온 녹음기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역시 어느 나라를 가도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구만. 똑같이 생긴 물건도 있고. 하긴, 마법의 소라고둥이 좀 큐트한 디자인이기는 하지.

속으로 스0지밥과 핑0이의 듀엣 송 (ft. 월요일) 을 부르고 있던 나는 따가운 시선에 멈췄다.

전정국의 표정이 딱히…… 좋은 걸 본 표정은 아니다. 그러니까 썩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불알친구가 틱톡을 찍으며 잘난척하는 걸 본 것 같다는 느낌.

넌 내가 뒤집어지는 것도 봤고 머리통 깨지는 것도 봤고 유토피아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도 봤고 목 졸리는 것도 봤으면서 지금 노래를 부르는 거에 충격을 받니?


전정국
너무 못 해서.

아, 안 읽는다며 시발 새끼가 진짜!


미나토자키 사나
이제…… 여주한테 가는 거야?

사나가 퍽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풍문에 의하면 이여주와 두 남자 주인공 분들께서는 아주 유티를 주름잡고 다니시는 모양이던데……

거기 휘말리면 못해도 죽는다. 여태까지의 고통도 그나마 운이 좋아서 그 정도지, 인복이라도 없었으면 난 그냥 죽었다.

당장 머리에 비커 맞았을 때도 이대휘가 도와 줬었잖아. 민윤기랑 싸우는 건 박지훈이 도와 줬고. 이런 건 참……

아, 왜 눈물이 날라 그러지. 아무래도 한예화 고유의 심성이 나한테 옮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급하게 주머니의 수첩을 펼쳐 들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스토리를 정리했었던, 역사 있는 수첩이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녹음기와 잘 맞다.

펜으로 휘갈겨 쓴다. 아무도 동글동글한 한예화의 필기인지 모를 것이다.

실런 한예화 인성 수준 ㅋㅋ.


한예화
…… 응. 이제 정말 끝났어. 이제 정말 이여주를 만나러 가는 거야.

사나가 종이를 한 번 훑어봤다가, 어쩐지 묘하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꼭 공주를 위해 대신 죽어주기라도 할 기사의 모습 같다.


미나토자키 사나
네가 나가고 나면, 아무도 예화를 오해하지 못하게 할 거야.



미나토자키 사나
방학 전에 이사 가면 안 돼. 내가 꼭 만나러 갈게.

…… 나, 좀 설레도 되는? 저 얼굴에 남자 주인공 같은 대사 반칙 아니야? 아무리 예화의 절친한 친구라지만 원작에서는 중립적인 존재였는데.

새삼스럽게 내가 써내린 글자들과 이 세계의 차이를 실감했다. 내가 정말 많은 걸 바꿨구나.


한예화
실런에서 이여주 시선 아래에 있지 않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예화
난 절대 이사 안 갈 거야! 일단 돈도 없고, 마땅한 장소도 없고 이사 가면 너한테 주소 또 새로 알려 줘야 하잖아.

사나는 다시금 웃어 주었다. 그 올라간 입꼬리가 어쩐지 마지막 같아서 괜히 벅차올랐다.

이여주 듣고 있냐? 내 인생 하나 망치려고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 금수저야! 내가 진짜 밑바닥에서 올라온 악녀라 이거지. 쇼미0머니 나가면 내가 우승일 듯.

그러니까, 마지막 순서인 네가 확실하게 망쳐라.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