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사랑합니다.
03. 이기적이라서


우진의 품에 안겨서 결국에는 파티장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주변을 보니 다들 왕족들 같았고, 모두가 화려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도 이렇게 차려입고 오라고 했구나. 그런데 이 사람이 나를 언제까지 들고있을 셈이야?


이대휘
저기요, 왕자님? 저 좀 내려주세요...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점점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으아, 부끄러워...갑자기 성운 님이 보고싶어진다. 친절한 성운 님...지금 어디계신 건가요. 쟤가 저 안 내려준단 말이에요!


박우진
음, 폐하가 어디계실려나. 얘 데려다줘야 되는데.


이대휘
그러니까 좀 내려달라고요! 혼자서 갈 수 있다니까!

아무리 말해도 안 내려주자 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이러면 무슨 반응이 있겠지, 했는데...


박우진
귀엽네, 그렇게 하면 내가 내려줄 줄 알았나.

응, 아무 반응 없어. 몸 흔들어도 소용없어. 그냥 이대로 그 망할 왕한테 가는 방법 밖에 없어...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이대휘
저, 저기 망할...아니, 그 사람 오는데요.

망할 왕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 이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우진은 나를 꼭 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저기, 인사하는 건 좋은데 나 좀 놓아주실래요?


김동현
꼬맹이는 내 품에서만 있어야 되는데...네가 왜 안고 있는거지?

미친놈이 뭐래? 아마 또 안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나를 앞에 내려다 주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째려봐도 소용없다. 그래도 귀엽다고 웃을 거니까. 좋냐, 이 놈아...


김동현
너는 가있어. 얘한테 뭐라 그러지 말고.


박우진
아, 형 왜 그래~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저 뻔뻔한 말투 봐라...왕자라고 안 봐주는 대휘는 당연히 등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려주었다. 왕에게 욕도 하는 아이인데, 때리는 건 기본이지.


박우진
아아..! 야, 너 나한테 때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이렇게 때리는 거야?


이대휘
뭐. 어쩌라고. 죽일 거면 죽이던지. 왕자라고 내가 네~ 귀하신 왕지님~ 이러는 줄 알아?

대휘의 반응에 그만 허탈하게 웃었다. 원래라면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정상인데...아니, 애초에 맞아 본 적이 없지. 아마 자신을 때린 사람은 대휘 뿐일거다.


박우진
그래...내가 미안해. 그리고 동현이 형?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김동현
그럼 이 꼬맹이는 어쩌고. 제 몸도 잘 못 챙기는데 어디에 놔두고 가?

대휘를 보며 머리를 한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미친놈인가, 라며 쳐다봐도 돌아오는 건 웃음 뿐이고. 대휘는 대체 뭐가 좋다고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박우진
뭐...여기 가만히 있어. 진짜 잠깐이면 돼.


김동현
그냥 여기서 하라고, 좀...

그 둘이 없어진 걸 다 확인하고 나서 대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을 대휘가 아니지. 바로 그곳을 나가서 탈출할 곳을 찾아댔다.





김동현
그래서, 무슨 얘긴데 그래?


박우진
음...대휘라고 했나? 걔 내가 사면 안 돼?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이 사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 누구도 대휘가 노예라고 안 말했는데, 우진은 이미 노예인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김동현
쟤 노예 아니야. 내가 아끼는 애인데 돈으로 바꾸자고? 너도 알다시피 나 왕이야. 로즈마리의 왕.


박우진
노예 맞잖아. 형 원하는 만큼 줄게, 그러니까 제발...내 시종이랑 바꾸면 딱 좋을 것 같단 말야, 예쁘고...


김동현
안 된다고 했다. 이런 말 할거면 하지마.

우진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대로 대휘를 찾으러 나갔다. 원래라면 노예는 다 팔았을 동현인데, 갑자기 안 판다고 하니 우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김동현
괜히 시간만 끌었잖아...이 꼬맹이는 가만히 안 있는단 말야.




동현의 말대로 대휘는 지금 파티장에 쪼르르 달려가서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가다가, 어떤 귀족 한 명이 대휘를 불렀다.


이재희
저기, 혹시 저랑 춤 한 번 추고 가실래요?

긴 흑발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말했다. 거절 하기도 전에 팔짱을 끼고 대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 같았다.





이대휘
ㅈ, 저 어디가시는 거예요? 네..?

대휘의 팔을 잡고 가던 여자가 멈추더니 입술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다가 사나운 눈빛으로 변하고, 못 도망치게 손목을 꽉 잡았다.


이재희
내가 보니까...네가 우리 왕자님이랑 폐하 님께 많이 꼬리를 치더라고? 재수없게.


이대휘
그게 무슨...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저한테 그러는 거라고요. 그리고 제가 꼬리를 친다니...

뭔가 이때 만큼은 동현이나 우진이 오기를 바랐다. 이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를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기 때문일까, 많이 불안했다.


이재희
어? 아, 폐하아~ 언제 오신거에요?

갑자기 돌변하고 벽 쪽으로 밀어냈다. 아마 대휘를 숨기려고 그러는 거겠지. 180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소름이 들었다.


김동현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런 곳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이재희
그냥 잠깐 들렸지요~ 우리 빨리 가요!

동현과 그 여자가 가고 난 뒤에 괜히 한숨을 쉬었다. 털털한 성격이라 방금 있었던 일은 깔끔하게 잊고 자, 이제 또 탈출을 해볼까? 라고 생각하던 중에 또 누군가가 대휘의 이름을 불렀다.


전 웅
어, 대휘 님...맞나요?

로즈마리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 단장, 전 웅이었다. 기사 단장 답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또 이 사람은 왜 부르는 걸까...


전 웅
다름이 아니라...지금 폐하께서 좀 찾아오라고 하셔서요.


이대휘
아..? 어...안 갈거라고 전해주세요..!

어색하게 웃은 다음에 그 사람을 지나쳐서 숨을 곳으로 뛰어갔다. 내가 오라면 오게? 나 여기 안 있을거다! 도망칠거라고!


전 웅
...어디가십니까?

음, 상대를 잊지 말자. 이 사람은 기사 단장이야...이거 봐, 도망친지 5초도 안 됐는데 목덜미가 잡혔잖아. 민망하다, 대휘야...


이대휘
그게...아, 아니 여기 싫단 말이에요..! 이거 놔요...


전 웅
오랜만에 파티를 열었는데 가기 싫다고요? 폐하께서 기다리시니 얼른 가셔야됩니다.


이대휘
조금만 있다가 가면 안 돼요..? 저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데...


전 웅
안 됩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버티시려고 그러십니까?

아 놔, 드럽게 단호박이네. 파티 그딴 거 관심 없다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 최대한 상냥하고, 예쁘게 말했다. 은근 이 사람은 착해보였는데 알고보니 그 왕자나 망할 왕이나 비슷해 보였다.


이대휘
아하하...네, 네 갑시다. 그런데 아까 다른 여자랑 가던데 왜 저를 찾으실까.


전 웅
폐하께서요? 아닐텐데요, 아마 그 분이 강제로 가자고 한 거겠지요.

어떻게 아셨대? 되게 오랫동안 함께 했었나보네. 휴, 이 사람은 절대 못 속이겠어. 내 얼굴을 사용해도 안 되겠는 걸.


이대휘
그런데 혹시 결혼 하셨어요? 너무 잘생기셔서.


전 웅
아직 미혼입니다. 대휘 님이 더 잘생기셨는 걸요.

키도 비슷한데 되게 설레게 하네...아니, 그런데 아직 미혼이라고? 여자 여러 명 홀렸을 것 같은 얼굴을 해놓고는 미혼이래. 워낙 철벽이라 다 포기했나?




기사 단장, 그 분과 여러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다시 파티장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저기 금으로 빛나는 의자 위에는 망할 왕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고. 하는 꼬라지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어.


김동현
어디 갔다가 지금 오는거지? 분명 내가 아무대나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을텐데.


이대휘
아, 예 죄송합니다. 너도 알다시피 제가 워낙 활발하잖아요?

단호박, 그 사람이 옆에서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아마 평생 폐하라고 불러왔겠지, 그리고 나처럼 반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을거고.


김동현
그래, 그렇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질 않고, 욕이란 욕은 다 말하지.


이대휘
네, 그럼 저를 죽으면 되는데 왜 안 죽이세요? 이런 애한테 시종까지 붙여주고.


김동현
말 했잖아, 그래도 네가 마음에 든다고. 너 같은 애는 처음봐서 더 끌린달까.


이대휘
.....


김동현
다른 여자들은 다 나랑 결혼만 할려고 했단 말이지. 지금 봐, 다 몰려있잖아.

여러 머리색,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자신이 더 잘나보이게 온갖 보석들을 붙이고 있었다.


김동현
나는 저런 사람들 싫어, 이용하려고만 하니까. 그런데 너는 달라, 무슨 짓을 해도 또 괜찮아지고...


이대휘
그래서, 지금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전 웅
.....


김동현
뭐, 아무래도 그렇지? 너는 나를 싫어할거고.


이대휘
그래, 노예를 사고파는 일을 즐기는 사람은 혐오하거든. 잔인하게 사람이나 죽이고...


김동현
너한테만 피해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자꾸 그런 거에만 신경 써.


이대휘
...제발 이럴 거면 나를 죽여. 난 이기적인 거 질색이니까.

역시나 말을 딱 자르고 뒤를 돌아섰다. 이기적인 거, 잔인한 거,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 딱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그걸 지금 동현이 하고있는 거였고.

...

....

.....


전 웅
...정말로 저 애가 좋은거야? 대체 어디가?


김동현
아까 말했잖아, 좋다고. 형도 좋지 않아?


전 웅
별로. 나 이만 가볼게, 파티 잘 즐겨.


김동현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보이네.





휘슬 / 로휘
허억 이 2화를 12월 24일에 썼는데 3화를 1월 5일에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반성할게요...


휘슬 / 로휘
기다려 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려요🙏🏻 이제 잊지 않고 연재할게요..! 글자수 4천 넘겼으니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