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3화 - 너무 가까워

종소리가 울리고,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얼마 안 가 끝나자 교실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둔 공책과 필통을 가방에 밀어 넣은 뒤, 핸드폰을 확인했다. 네시 사십분. 오늘도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나.

 

오늘은 하민이 전학온 지 나흘 째. 목요일이었다. 하민은 늘 빠르게 종례가 끝나는 모양인지, 늘 교문 앞에 서있었다. 처음에는 날 기다린다는 사실에 기겁을 했으나, 매번 핑계란 핑계가 있어서 어떻게 떨쳐내지도 못하고 같이 하교한지도 벌써 사흘이나 되었다. 월요일엔 늦게 끝난 날 기다렸고, 화요일에는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고 했다. 어제는 더 이상 생각나는 핑계가 없었는지 그냥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늦으면 안 되는거니까.

드르륵,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예준이었다.

 

 

“오늘 같이 갈래?”

“집에?”

“그럼 어디를 같이 가.”

“갑자기?”

 

예준은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요즘 하교할 때 안 보이길래.”

 

이번 주 내내 하민과 같이 집에 갔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거절을 해야하는데. 기다리고 있을텐데. 고민을 하는 나와는 다르게 예준은 거절의 선택지는 없다는 듯 먼저 교실 뒷문쪽으로 향했다. 아니, 난 대답 안 했다고!

 

당황하며 뒤따라 나가니 예준이 예상했다는 듯 씩 웃었다. 2년 전에도 저 웃음 때문에 괜히 의미를 붙였던 게 떠올랐다. 정말 사람 홀리는 얼굴이다. 익숙하게 대화 주제를 꺼내오는 것에 대답을 하다보니 벌써 교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 어떡하지. 벌써부터 덩치 큰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하민이는 담장 아래 그늘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만 가방을 걸친 채 긴 다리를 느슨하게 뻗고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수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교문에서도 내 인기척을 느낀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하민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했다. 곧이어 내 옆에 있는 예준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모르는 척해라. 모르는 척해라. 제발 오늘만! 눈치 있게 행동해줘 유하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교문으로 다가갔다.

 

하민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담장에서 등을 떼었다. 그대로 우리 앞으로 똑바로 걸어왔다.

 

“하민이네.”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예준이었다.

 

“너도 이제 집 가는 거야?”

“응.”

 

하민은 짧게 대답하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섰다. 이, 이게 무슨 …. 그나저나 예준이 너는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거야? 참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결국 셋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예준은 가는 내내 오디오가 비지 않게끔, 화제를 던졌다. 이야기를 하는건 주로 나와 예준 뿐이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떡볶이 집 맵더라.”

“너는 원래도 매운거 잘 못 먹잖아.”

“내가 여주보다는 잘 먹었는데, 어떤 음식이든.”

“참나.”

 

예준이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아, 너무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를 했나. 옆에서 아무말도 없이 걷는 하민이 신경쓰였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렇다고 혼자 먼저 가지도 않고, 우리와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걸었다.

 

“다음에는 같이 가자.”

 

예준이가 말했다.

 

“어디를?”

“분식집. 너 떡볶이 좋아하잖아.”

“네가 사?”

“그 정도는 사주지.”

 

예준이 먼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에, 별거 아니라는 그 대답에 마음 한 켠이 덜그럭거렸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교복 치마 주름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하민이 입을 열었다.

 

“원래도 둘이 같이 하교해?”

 

나는 하민을 돌아봤다.

하민은 나를 보지 않았다. 시선은 바로 옆의 예준에게 향해 있었다. 예준이는 별다른 의심 없이 대답했다.

 

“아니. 근데 오늘은 내가 같이 가자고 한 거야.”

“흐음.”

 

하민은 작게 소리를 내고 다시 앞을 봤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어째 좀 삭막한가? 싶을 정도였다.

 

큰 길가에 도착하자 예준이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지만, 예준이네는 여기서 왼쪽으로 가야 했다.

 

“난 이쪽.”

“응. 내일 봐.”

 

손을 흔들며 보내려는데 예준이가 내 뒤에 서 있던 하민을 바라봤다. 입꼬리만 올라간 채로 웃는 얼굴을 하고있었는데, 왠지 차가워보였다.

 

“근데 너는 어디 사는데?”

 

하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 쟤 저쪽에 있는 아파트!”

 

내가 먼저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거기로 이사 왔다고 하더라고, 하하.”

 

예준이는 내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그 사이 하민이 뒤에서 내 얼굴을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그래? 그럼 여주랑 방향이 같네.”

“어어. 우연히.”

 

대답이 너무 빨랐다.

예준이가 잠시 나를 봤지만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그래서 요즘 하교할 때 안 보인 거였나.”

“뭐?”

“아니야. 내일 보자.”

 

예준이가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가던 예준이 다시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들어 보였다.

 

예준의 뒷모습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나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안 들켰겠지…?”

“그 정도의 발연기에도 속아넘어갈 사람이 있다면.”

“뭐라고?!”

“좋아 죽던데, 대화하면서.”

“엉??”

“잊은거 맞나.”

 

 

제 할 말만 틱틱 내뱉는 하민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신호가 바뀌었다.

하민은 먼저 횡단보도를 성큼성큼 건넜다. 보폭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다 그만뒀다. 어차피 알려주지도 않을 테니까.

 

한동안 느껴본 적 없던 간질거림이 가슴 한쪽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까 예준이랑 대화한 것 때문에 그런가. 이미 끝난 감정인 줄 알았는데.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하민의 뒤를 따라갔다.

하민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토요일 오후.

부모님은 장을 보러 나갔고, 거실에는 나와 하민만 남아 있었다. 드디어 찾아온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정말 혼돈의 일주일을 보냈다.

 

엄마는 나가기 전까지 냉장고에 과일이 있다느니, 배고프면 냉동실에 있는 만두를 데워 먹으라느니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관문이 닫힌 뒤에야 집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소파 한쪽에 비스듬히 누워 예능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과자 봉지를 올려두고, 발은 소파 팔걸이에 걸쳤다.

 

하민은 반대편에 앉아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가끔 짧은 영상 소리가 들렸지만 서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방송에서는 출연자들이 계속 웃고 떠들었다. 나도 별생각 없이 과자를 집어 먹다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 결국 저 사람이랑 사귄대.”

 

하민은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누가?”

“아까부터 같이 보고 있었으면서.”

“안 봤는데.”

“그럼 여기 왜 앉아 있어?”

“누나 혼자 심심할까 봐.”

“안 심심하니까 방에 들어가라.”

 

하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리모컨을 집었다.

화면이 곧바로 축구 중계로 바뀌었다.

 

“야, 나 보고 있었잖아. 미쳤냐?”

“내용 다 아는 것 같던데.”

“재방송도 방송이야. 돌려.”

 

손을 내밀었지만 하민은 리모컨을 반대편 손으로 옮겼다.

 

“축구 끝나고.”

“두 시간이나 남았잖아.”

“그러니까 조용히 봐.”

 

어이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하민은 어째 실실 웃고있었다. 웃기냐?!

내 주말마저 얘한테 뺏길 순 없어.

집념으로 리모컨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자 하민은 팔을 높이 들었다.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얌전히 내놔라.”

“가져가.”

“팔을 내려야 가져가지!”

 

소파 위에 무릎을 올리고 하민 쪽으로 다가갔다. 하민은 손을 쭉 뻗으며 소파 끝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니 얘 이렇게 유치했나? 역시 어리니까 유치한건가.

고작 한 살 차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며 그의 움직임을 읽으면서 점점 다가갔다.

 

“치사하게 키 큰 걸로 이기려고 하네.”

“억울하면 누나도 크든가.”

 

한 손으로 하민의 어깨를 짚고 다른 손을 등 뒤로 뻗었다. 손끝에 리모컨 모서리가 닿았다.

하민의 눈이 커진 것도 같았다.

 

“잡았다!”

 

리모컨을 움켜쥔 순간, 소파 끝에 걸쳐 있던 무릎이 미끄러졌다.

몸이 옆으로 쏠렸고, 나도 모르게 하민의 어깨를 쥐고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짧게 숨을 삼키는 사이 하민이 한 손으로 떨어지려는 내 허리를 힘을 줘 붙잡아, 소파 위쪽으로 힘을 실어 떨어지려는 나를 올렸다.

 

푹신한 소파가 무게를 받아 깊게 내려앉았다. 손에서 빠져나간 리모컨이 바닥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내 손은 하민의 어깨 옷자락을 쥐고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얇은 티셔츠와 단단한 어깨가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꼭 하민에게 안긴 것처럼, 그의 위에 누워있었다.

 

“헉,”

 

고개를 살짝 들었더니 하민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돌릴 생각 조차 없어보이는 표정이다. 나를 아주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아직 내 허리에 감겨 있는 하민의 단단한 팔이 느껴지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하민이의 팔 때문에 많이 올라오지도 못했다. 내가 꼭 덮치는 모양처럼, 하민의 위에 올라타있었다.

 

TV에서는 해설자가 빠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가까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코끝이 닿을 것 같았다. 하민이 숨을 내쉴 때마다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일어나야 하는데.

허리에 닿은 손 때문에 몸을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야, 손 좀….”

“…….”

 

작게 말하자 하민의 손가락이 잠시 움직였다. 그런데도 팔은 풀리지 않았다.

하민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이 상황을 즐기는건지, 나를 뚫어져라 눈으로 훑고있었다.

눈이 마주친 것도 잠시, 시선이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나도 모르게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하민이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순간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왔다~”

 

하민이 먼저 눈을 떴다.

곧바로 내 허리를 받쳐 소파에 앉힌 뒤, 자신은 리모컨을 주워 바닥으로 내려갔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나는 쿠션을 붙잡은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둘이 잘 있었어?”

 

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네.”

 

하민은 부모님께 웃어보이면서 리모콘을 들어 협탁 위에 놓았다.

나는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 끝으로 물러났다. 아까 허리를 붙잡았던 손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커서 엄마에게도 들릴까 봐 쿠션을 가슴 앞까지 끌어올렸다.

 

“너는 왜 얼굴이 빨개?”

 

엄마가 나를 보고 물었다.

 

“더워서.”

“에어컨 켜져 있는데?”

“과자 먹어서 그래.”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다.

엄마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한번 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살짝, 멀어지니 내 심장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렸다.

 

쿵- 쿵-

 

장바구니가 식탁 위에 놓이는 소리, 냉장고가 열리며 분주히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옆을 슬쩍 바라봤다.

하민은 여전히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하민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나는 들고 있던 쿠션을 그대로 하민의 얼굴에 던졌다.

 

“채널이나 돌려.”

 

쿠션을 받아낸 하민이 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집었다.

화면은 다시 예능으로 돌아왔지만, 그 뒤로는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민은 여주의 살결이 닿았던 제 손을, 여주 몰래 만지작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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