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4화 - 달라졌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하민을 피해 다녔다.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수가 없었다.

일요일에는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목이 말라도 하민이 거실에 있는 동안은 참고, 밥을 먹을 때도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민은 몇 번인가 내 방문 앞을 서성였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드디어 맞이한 평일,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엄마는 빠르게 학교로 향하는 날를 보며 놀라워했고, 나는 수행평가를 핑계로 대충 얼버부렸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내 교실에 도착한 뒤에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까.

 

그 생각은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깨졌다.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시러 교실 밖으로 나왔다가 계단을 올라오는 하민을 발견했다. 하민도 순간적으로 나를 본 것 같았다.

왜 일 학년이 이 학년 층까지 올라오는데. 설마 날 찾으러?!

나는 곧바로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가, 내 책상 아래에 몸을 숨겼다.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민은 우리 교실 앞에 서있는 모양이었다. 책상과 친구들의 다리 사이로 보인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굳은 표정을 하고있었다.

머지않아 하민이 자리를 떴을 때, 그제서야 나는 의자 위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책상 위로 널브러졌다. 흐아, 하고 숨고있던 한숨이 터졌다.

 

 

“너 왜 하민이 피해?”

 

깜짝 놀라 고개를 들면, 앞자리에 앉은 예준이가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아, 뭐. 그냥.”

“둘이 싸웠어?”

“내가 잘못한 게 좀 있어서 그래.”

“무슨 잘못?”

“있어, 그런 게.”

 

대충 얼버무리니 예준은 알겠다는 듯 화제를 돌려줬다. 뭐라뭐라 이야기하는데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왜 여기까지 찾아오냐고. 미친거야? 놀란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는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물도 못 마시고 그냥 돌아왔잖아! 속으로 심통을 부리고있는데, 앞에서 커다란 손바닥이 휘휘 왔다갔다했다.

 

“뭐, 뭐야?”

“장여주.”

“엉?”

“그래서 갈 거냐고.”

 

예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얘기 집중 안 하지?”

“아, 그게….”

“오늘 떡볶이집 가는 거 어떠냐고 방금 물어봤잖아.”

“아하.”

 

떡볶이집.

저번주 하굣길에서 예준이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던 곳이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민이 생각났다.

 

“가자.”

“그래, 그럼 이따가 같이 나가자.”

 

예준이 씩 웃으며 앞으로 몸을 틀자 곧이어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서랍에서 책을 빼며 창 밖을 바라봤다.

운동장 건너편으로 일 학년 건물이 보였다.

 

 

*

 

 

종례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곤, 예준의 팔을 끌었다.

 

“후문으로 가자.”

“아, 그래. 후문이랑 가까웠지?”

“응. 배고파. 얼른 가자.”

 

예준은 별다른 의심 없이 나를 따라왔다. 가는 길에도 예준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했지만 동선이 다르다고 마냥 방심하고있을 순 없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걷고있으니 예준이는 그런 나를 가끔가다 이상하게 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후문을 빠져나온 뒤에야 뒤를 한 번 돌아봤고, 당연히 하민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놓이는 마음에 배가 더 고파졌다. 서둘러 향한 떡볶이집 안에는 벌써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자리를 잡곤 곧바로 떡볶이와 튀김을 시켰다. 예준이 카드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결제가 끝난 후 나는 예준을 보면서 웃었다.

 

“오, 진짜 사네?”

“약속했잖아.”

 

맞은편에 앉은 예준은 예전과 똑같았다.

별거 아닌 말로 계속 웃게 했고, 내가 싫어하는 어묵은 자연스럽게 자기 접시로 가져갔다. 둘이 밥을 먹는 것도 오랜만인데 어색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그냥 오랜만에 이렇게 어색하지 않은 자리가 제법 반가웠다.

 

“근데 하민이 인기 많더라.”

 

떡볶이를 집던 손이 멈췄다.

 

“갑자기 걔 얘기는 왜 해?”

“아까 이 학년 층에 올라왔을 때 애들이 다 쳐다보던데.”

“그래?”

“너 찾으러 온 거 아니야?”

“아니거든.”

 

오늘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나? 하는 말에 됐어됐어, 를 연발하며 마저 떡볶이를 먹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예준이 웃었다.

 

“천천히 먹어.”

“안 매워.”

“입에 묻었어.”

 

휴지를 뽑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예준의 손이 먼저 닿았다.

예준이 휴지로 내 입가를 가볍게 닦아냈다.

 

 

굳은 내 몸이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예준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아니, 내가 닦으면 되는데. 고마워”

 

휴지를 뽑아 직접 입가를 문질렀다. 예준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2년 전이었다면 집에 돌아가서도 몇 번이나 떠올렸을 행동.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고민하고, 혹시 나를 다시 좋아하는 건 아닐까 기대했을지도 모를, 그런 의미심장한 행동.

 

분명 두근거려야하는데, 제법 부담스럽고… 껄끄럽게 느껴졌다.

하민이 때문에 지금 남자들과의 스킨십이 조금 부담스러워진걸까?

 

예준은 별 말 없이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부드러운 아이다. 좋은 애야. 그래서 내가 좋아했었지.

그와 시덥잖은 대화를 하는 동안, 속은 꽤나 복잡해져가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데이트라고 좋아하고 의미부여했을 날이 그렇게 끝나가고있었다.

 

 

 

*

 

 

 

집에 도착하자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오늘 엄마 아빠 둘 다 야근이라고 했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데 맞은편에 있는 욕실 문이 열렸다.

수증기와 함께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막 씻고 나온 모양새의 하민이었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습기 때문에 입고있는 반팔 티셔츠는 그의 몸에 조금 달라붙었다. 하민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금 들어온 나를 봤다.

 

 

“늦었네.”

“아, 엉. 약속…때문에..”

 

부끄럽지도 않나?! 내가 고개를 홱 돌리자 하민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냉장고로 향했다.

얇은 티셔츠가 젖은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다. 물을 꺼내 마시는 동안에도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이 턱선을 타고 흘렀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예준이 내 입가를 닦아줬을 때도 조용하던 심장이었다.

뛰어야 할 심장은, 예상했던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뛰고 있었다.

 

하민이 냉장고 문을 닫으며 나를 돌아봤다.

 

“왜 그렇게 봐?”

“안 봤거든.”

“오해하겠네.”

 

시선을 피하며 거실을 가로질러가자 등 뒤에서 하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일은 더이상 묻지 않았음에도, 그 어떤 감정이 녹아있는 말투라는걸 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게 표현을 하고있진 않지만, 내가 예준이랑 놀고 온 걸 아는거야. 그리고, 지금 질투하는 중인거다.

 

“내일은 같이 가.”

“응.”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나서 걸음을 멈췄다. 머뭇거리던 시선을, 고개를 꺾어 뒤를 돌아보자 하민은 물병을 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 얼굴에 한 번 더 쿵, 심장이 떨어졌다. 오랜만에 시선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 들어갈게.”

“응. 잘자, 누나.”

 

하민은 내게 가볍게 인사했다. 보장된 내일이 있어서 그런지 그 어떤 부담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속이 짓눌린듯한 기분이 들었고, 심장은 터질 것 처럼 쿵쿵대고있었다.

 

내 방문을 닫고 나서도, 씻고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서도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묘한 밤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하민과 함께 학교로 가겠다고 한 걸 후회한 건 현관을 나선 직후였다. 어째서인지 하민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원래는 남이 우리 둘이 같이 문을 나서는 걸 볼까봐 신경이 쓰였다면, 이제는 그저 옆에 있는 유하민. 그 존재 자체가 신경이 쓰였다.

팔이 스칠 것 같으면 괜히 가방을 다시 매는 척 어깨를 들썩이며 거리를 벌렸고, 하민이 내 쪽을 보면 주변 풍경이나 신호등, 또는 지나가는 차를 보는 척했다.

하민은 그런 나를 힐끔거리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은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는데도 부산스러운 등굣길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로 돌아가다 운동장 쪽에서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체육대회 농구 경기를 준비하는지 일 학년 남학생들이 코트에 모여 있었다.

 

“1학년들 체육대회 경기 준비하나보네.”

“그러게.”

 

그중 하민은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키가 큰 데다 움직임까지 빨랐다. 공을 잡자마자 수비를 피해 골대 아래로 들어갔고, 점프한 뒤 가볍게 공을 던졌다.

공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코트 주변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민은 씩 웃으며 친구와 손바닥을 마주치고 다시 공을 받았다.

 

 

 

잘하네.

 

구경하는 여학생도 많았다. 하민이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함께 따라다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민이 골대 밖에서 점프 슛을 던졌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 티셔츠가 위로 딸려 올라갔다. 단단한 배가 잠깐 드러났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젖은 머리에 딱 달라붙은 티셔츠를 입공있던 하민이 떠올랐다.

대체 그게 왜 지금 생각나는 거야!

 

고개를 휘휘 돌리며 친구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

 

 

 

하교할 때까지도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다. 계속, 계속 하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니, 뭐 남자 몸 본 게 처음인 것도… 처음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는데. 없어야하는데.

 

느릿느릿 발걸음을 정문으로 옮겼고, 여느때처럼 하민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옆에 섰다.

 

“가자.”

 

집으로 향하는 동안 하민은 평소처럼 걸었다.

나는 평소처럼 걷지 못했다.

조금만 가까워져도 팔이 닿을 것 같았다. 아까 운동장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아, 미치겠다. 얼굴 빨개진거 아냐? 날 변태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눈을 꾹 감고있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어?! 왜, 왜.”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기분탓 아니야 ?! 원래 얼마나 말 많이, 했다고….”

“흐음.”

 

당황해서 목소리 피치가 나갔다. 얼굴 빨개졌나? 내 안색을 못 살피게 고개를 홱 돌렸다. 하민은 옆에서 의아하다는 듯 입으로 소리를 낼 뿐이었다.

악! 자꾸 머릿속에서 복근이 떠오르잖아! 게다가 주말에 그 가슴팍, 복근 위로 넘어졌던 게 생각나 머지않아 촉감까지 상상이 갔다. 뇌가 통제가 되지 않았다. 나 이렇게까지 추한 변태였던건가…. 가까운 사람의 몸을 봐서 이러는건가.

 

자책하며 걷고있는데, 엄청난 힘에 팔이 뒤로 확 당겨졌다.

그대로 몸이 하민 쪽으로 휘청이다가 이내 폭 안긴 모양새가 되었다. 이, 이거 주말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바로 앞을 자동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헉.”

 

놀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자 보행 신호는 아직 빨간불이었다.

하민이 내 팔을 붙잡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정신이 왜 이리 팔렸지, 이 누나가.”

 

하민은 한동안 나를 내려다봤다. 두근, 두근. 하민이의 단단한 가슴팍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 심장 소리도 들릴까? 아니, 나 뭐하는거야! 놀라서 몸을 뒤로 홱 젖혀 하민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그, 미안.”

“됐어. 가자.”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잡고 있던 손은 놓지 않았다.

하민이 내 팔을 당기며 먼저 횡단보도로 들어섰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끌려갔다.

길을 다 건넌 뒤에야 하민의 손이 떨어졌다.

 

붙잡혔던 자리만 이상하게 뜨거웠다.

나는 손으로 그 부분을 문질렀다. 그러니까, 이건 … 그 때랑 똑같아.

 

하민은 반걸음 앞에서 걸었고, 나는 다시 살짝 뒤에 서서 하민의 뒤통수를 보며 걸었다.

 

 

그 때랑 똑같은 기분이야.

내가, 예준이를 좋아하던… 그 때랑.

 

같은 기분을 느꼈다.

대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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