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 la douleur a une pré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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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사장님 안녕하세요. 늘 먹던 와인으로 주세요.

내 옆자리에는 김석진 작가님이 앉았다. 난 한번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작가님이 날 봤다고 해도 나인지 모를 거다. 작가님이 옆을 보려고 하자 난 바로 회피했다.

사장님

오랜만에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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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좀 답답해서요.

사장님

오늘 뭔 답답한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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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사장님

아니, 너랑 비슷한 친구가 또 있어서.

윤여주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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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 그래요?

난 뭔가 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일단 화장실 골목으로 피신했다. 도망친 거라고 해야 하나···.

사장님

그래서 왜 답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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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냥 문득 옛날 그림들을 보면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기억이 전혀 안 나요. 저 자신이 너무 답답해서요.

사장님

그럼 그냥 하지 마. 어렸을 적 많이 힘들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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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좋은 기억도 있긴 했죠.

사장님

오··· 뭔 썸이라도 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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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뇨ㅋㅋㅋ 그것까진 아닌데 첫사랑이 있었거든요.

사장님

첫사랑이라··· 그거 이루어지지 않아. 기억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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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사장님은 뭐 다 하지 말래요ㅋㅋㅋ

사장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야. 아직도 첫사랑 생각하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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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크···.

사장님

좀만 마셔라. 술이 그 답답함을 풀어주진 않는다. 술도 잘 못 마시는 애가 많이 달리네.

작가님은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뭔가 막혀있는 느낌이었다. 사장님 말대로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걸 주변에서도 전혀 본 적이 없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그게 바로 첫사랑이다. 내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작가님은 이미 반쯤 죽어있었다. 술을 잘 못 마시나 보다.

윤여주

사장님, 이분은 언제부터 여기 단골이었어요?

사장님

석진이? 성인 되고 바로?

윤여주

되게 오래됐네요. 저보다 오래된 사람은 처음 봐요.

사장님

그렇지···. 참 좋은 애인데 하필 사고를 당해서.

윤여주

좋으신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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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윤여주··· 큐레이터님? 맞죠.

윤여주

깜짝아···! 그··· 사장님! 다음에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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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

작가님은 나인 것을 확인하고 도망치듯 나오는 나를 뒤따라왔다. 술에 취한 건지 안 취한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달리기는 무척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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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왜··· 나 피해요?

윤여주

제가··· 언제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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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왜 아는 척 안 했어요. 나인 거 알면서.

윤여주

힘들어 보여서··· 그래서 모르는 척했어요. 얼른 집 들어가세요. 늦었어요. 가볼게요.

작가님이 내 손목을 잡았다. 작가님처럼 나도 취해있었다면 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분명 예전에 그 첫사랑이 나고 지금 작가님을 여전히 좋아한다고. 그랬을 게 뻔하다.

윤여주

작가님, 취하셨어요.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 어어, 작가님!

작가님이 부축하던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에 들어버렸다. 작가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많이 당황했다. 얼른 작가님을 부축해 작가님 집으로 향했다.

윤여주

작가님··· 집 비밀번호 뭐예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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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으···.

윤여주

비밀번호요.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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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00801···.

‘띠띠···’

2008···01? 2008년 1월, 우리의 첫 만남이자 첫사랑이 시작되었던 날. 그날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가님은 그날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걸 수도 있다.

윤여주

작가님··· 가볼게요. 내일 집 비밀번호 꼭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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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가지··· 마···.

진짜 작가님이 내일 아침에 술 깨면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같으면 안 갔을 거 같은데, 가야만 한다. 작가님과 나, 둘 모두를 위해서 가는 게 맞다.

갑자기 왜 굳건해졌냐 하면, 내가 약해지면 작가님한테 수없이 빠져들게 뻔하니. 작가님과 나는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운명을 계속 찾으려 들지 않고 싶다. 찾으려 들면 난 계속해서 힘들어지니까.

주말 아침,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아침 운동을 나섰다. 오랜만에 그 산을 올라가 보려고 한다. 쌀쌀한 날씨지만, 추운 날 운동하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 추워서 다른 생각은 전혀 안 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윤여주

후···. 어···? 앗!!

산 정상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깜짝 놀라 바로 멈춰 조금 아래로 내려가다가 그만 발을 삐끗했다. 어제에 이어서 또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다. 솔직히 좀 불편했다. 상쾌했던 공기가 싹 사라졌다.

조금 크게 소리를 내어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작가님도 쳐다보려고 한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런데 배려심 깊은 작가님이 다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다. 그냥 지나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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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괜찮으세요?

다행히 날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대답 대신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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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업혀요.

윤여주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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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윤 큐레이터님이에요?

하··· 그만 업히라는 말에 놀라 말하고 말았다. 나의 목소리에는 단번에 알아차린다. 그냥 그 순간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윤여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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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왜 모르는 척했어요? 모르는 척해야 할 사람은 난데.

윤여주

아··· 작가님이 불편할까 봐 일부러 피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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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어제는 미안해요. 제가 많이 실수한 거 같아요. 원래 그러지 않는데··· 왜 그랬나 싶어요.

윤여주

괜찮아요. 비밀번호는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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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비밀번호요?

윤여주

그건 기억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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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죄송해요···. 기억이 나는 게 있고 안 나는 게 있네요. 혹시 집에도··· 들어갔어요?

윤여주

작가님 눕혀드리고 바로 나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집 가서 비밀번호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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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뭐··· 괜찮아요. 큐레이터님이 막 집에 쳐들어올 사람도 아니고. 상관없어요. 일단 얼른 업혀요.

윤여주

여기 정상이에요. 날 업고 어떻게 내려가요. 그냥 부축만 조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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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냥 업히라고 할 때 업혀요.

윤여주

진짜 무거운데···.

계속 업히라고 부추기는 작가님에 할 수 없이 업히고 말았다. 그냥 심장이 혼자 나댔다. 작가님을 밀어내 보려 했는데 상황이 자꾸 이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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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

윤여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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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심장이 저보다 더 빨리 뛰네요. 심박수가 빨리 뛰어야 하는 건 열심히 내려가는 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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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손팅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