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사연애] 귀공자

9화. 소개팅

MT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창가에 기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와 버스가 출발하면서 흔들리던 느낌뿐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중간에 목이 말라 눈을 떴다가 다시 감으려는데,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여주 소개팅 안 나간다더니."

 

동기들이었다.

나는 잠든 척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 이번엔 진짜 괜찮은 애야."

"여주가 나간대?"

"아니, 아직 싫다고 하는데."

 

민석이 웃었다.

 

"내가 계속 꼬시는 중이지."

 

친구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사람은 진짜 괜찮아. 성격도 좋고, 얼굴도 괜찮고."

"그럼 여주도 좋아하겠네."

"일단 만나보면 알겠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네.'

 

민석은 예전부터 소개팅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때마다 싫다고 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민석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만나보게 해야지."

"걔가 여주 진짜 마음에 들어 한단 말이야."

"여주도 계속 혼자잖아."

 

나는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런데 앞쪽에 앉아 있던 원빈은 달랐다.

원빈은 처음부터 잠들지 않았다.

창밖만 보고 있던 원빈의 시선이 천천히 뒤쪽으로 향했다.

 

'걔가 여주 진짜 마음에 들어 한단 말이야.'

 

그 말이 원빈의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다.

소개팅.

원빈은 무심코 창밖을 바라봤다.

그 순간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누나."

"연하는 진짜 별로예요?"

 

술기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용기가 났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질문을 들은 누나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당황한 눈.

대답하지 못하고 피하던 시선.

그리고 결국,

 

"술 너무 취했다."

 

그 말만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원빈은 그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역시 싫은 건가.

연하라 부담스러운 건가.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눈치챘다면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지금.

소개팅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번 사람 진짜 괜찮다니까."

"내가 계속 나가보라고 하는 중이지."

 

원빈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결국 누나는 소개팅에 나가는 건가.

어쩌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연상이 좋다고 했으니까.

자기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누나는 당연히 그 사람을 좋아하겠지.

원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누나가 누구를 만나든.

누나가 누구를 좋아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계속 답답했다.

'...나 진짜 좋아하나 봐.'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니까 이렇게까지 아픈 거였다.

 

 

*

 

 

학교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가방을 챙겼다.

 

"원빈아."

 

버스에서 내리던 원빈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원빈이 멈췄다.

"...누나."

"잘 잤어?"

"...네."

"어제 술 많이 마셨던데."

"괜찮아요."

"다행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원빈 옆으로 다가갔다.

 

"우리 해장하러 갈래?"

 

예전 같았으면 원빈은 조금 망설이다가도 따라왔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저 약속 있어요."

"어?"

"먼저 갈게요."

"...그래."

 

원빈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먼저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약속이 있었나?'

조금 이상했지만 피곤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원빈은 나를 피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지나가고,

내가 말을 걸면 대답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

카톡은 이상하게도 평소와 비슷했다.

 

밥 먹었어?

 

네.

 

오늘 수업 많아?

 

조금요.

 

그런데 직접 만나면 달랐다.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짧아졌고, 예전처럼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친구에게 물었다.

 

"야."

"응?"

"원빈 요즘 왜 저러지?"

"뭐가?"

"나 피하는 것 같아."

 

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싸웠어?"

"아니."

"그럼 왜?"

"몰라."

 

나는 턱을 괴었다.

MT에서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술 취해서 이상한 말을 했던 게 창피한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챙겨줬나?'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았다.

 

 

*

 

 

한편 원빈은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눈앞의 글자는 한 줄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개팅.'

그 단어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나는 정말 소개팅에 나갈까.

그 사람을 만나서 잘되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멀어질까.

원빈은 펜을 내려놓았다.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어제 들은 이야기 때문에 더 그랬다.

 

누나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계속 옆에 붙어 있는 건 오히려 방해일지도 몰랐다.

원빈은 휴대폰을 꺼냈다.

 

누나 |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지웠다.

 

보고 ㅅ_

 

 

 

이번에는 쓰지도 못했다.

결국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조금만 멀리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도.

괜히 기대했던 마음도.

전부 혼자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복도에서 여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원빈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문 쪽을 바라봤다.

"...하."

아직은.

멀어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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