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사연애] 귀공자

15화. 좋아하는 것 같아

며칠 전부터 나는 원빈을 조금씩 피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피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마주치면 괜히 신경 쓰여서 먼저 자리를 피하게 됐다.

원빈이 연락하면 답장은 했다.

 

누나 뭐 해요?

 

과제.

 

힘들어요?

 

좀.

 

도와줄까요?

 

괜찮아ㅋㅋ

 

예전처럼 대화도 했다.

 

 

그런데 만나면 달랐다.

눈이 마주치면 괜히 심장이 뛰고, 원빈이 가까이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특히 그 여자 동기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뒤부터는 더 그랬다.

나한테는 그렇게 서툴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웃고 떠드는 게 괜히 얄미웠다.

 

 

*

 

 

오늘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먼저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원빈과 눈이 마주쳤다.

원빈은 동기들과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여자애도 있었다.

 

"원빈아, 너 이번 주말에 진짜 안 갈 거야?"

"아직 모르겠는데."

"너 없으면 재미없는데."

 

여자애가 웃으면서 원빈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원빈은 별다른 반응 없이 웃었다.

 

그걸 본 순간.

또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나 먼저 갈게."

"어? 같이 가."

"괜찮아."

 

친구에게 대충 대답하고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나."

 

못 들은 척했다.

"누나."

 

이번에는 바로 뒤였다.

결국 멈춰 섰다.

 

"왜 따라와?"

 

원빈이 나를 바라봤다.

 

"누나가 갑자기 가길래."

"나 친구들이랑 가려고."

"알아요."

"그럼 너도 쟤네랑 놀러 가는 거 아니었어?"

원빈은 잠깐 뒤를 돌아봤다.

친구들이 아직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봤다.

 

"안 가려고 했어요."

"왜?"

 

원빈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나랑 같이 가려고."

"...뭐?"

"아까 누나 봐서 바로 왔어요."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원빈은 내가 이상하게 보는 게 민망한지 시선을 내렸다.

"저 오늘 누나랑 놀고 싶어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더 설렜다.

 

"나랑?"

"네."

"왜?"

"그냥."

 

원빈이 잠깐 고민했다.

 

"보고 싶었어요."

 

나는 결국 시선을 피했다.

 

"...너 요즘 말 잘한다."

"아닌데."

"잘하잖아."

"누나한테만 그런 말 하는 건데."

 

이번엔 정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괜히 먼저 걸었다.

 

"가자."

"어디요?"

"집."

 

원빈이 바로 따라왔다.

 

 

*

 

 

집으로 가는 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원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요즘 저 피하는 거 맞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니."

"맞는데."

"아니라니까."

"그럼 왜 자꾸 저 보면 가요?"

"..."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원빈이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제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

"그럼요?"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결국 말했다.

 

"그냥 네가 다른 여자랑 있는 게 싫었어."

 

말하고 나서 내가 제일 놀랐다.

원빈도 눈을 크게 떴다.

 

"...진짜요?"

"몰라."

"누나."

"왜."

"그거 질투한 거예요?"

"아마."

 

원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지 마."

"미안해요."

 

전혀 안 미안한 얼굴이었다.

 

"근데..."

 

원빈이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요."

"...뭐가."

"누나가 질투하는 거."

 

나는 괜히 원빈 팔을 한 번 때렸다.

 

"진짜 얄미워."

 

원빈이 웃었다.

그러다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럼."

"응?"

"저한테 조금이라도 마음 있는 거예요?"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원빈의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애였다.

차갑다고 생각했고.

까칠한 귀공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누구보다 낯을 많이 가리고.

내 앞에서만 조금씩 편해졌고.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를 좋아해주고 있었다.

 

그런 원빈을 생각하니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자꾸 원빈을 찾았는지.

왜 연락을 기다렸는지.

왜 다른 여자와 있는 게 싫었는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빈이 숨을 멈춘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진짜?"

"응."

 

원빈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원빈?"

"잠깐만요."

"왜?"

"지금 너무 좋아서."

원빈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너 아직도 뚝딱거리네."

"누나가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어떻게 안 떨려요."

 

그 말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잠시 후 원빈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췄다.

"잡아도 돼요?"

 

나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원빈이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마치 조금만 세게 잡아도 내가 사라질 것처럼.

나는 괜히 손가락을 움직여 원빈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원빈이 나를 바라봤다.

 

"누나."

"응."

"이거 꿈 아니죠?"

"아니."

"그럼..."

 

원빈이 아주 작게 웃었다.

 

"우리 사귀는 거예요?"

 

나도 웃었다.

 

"응."

"진짜?"

"응."

 

원빈이 다시 한번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한참을 걷다가 말했다.

 

"나 진짜 잘할게요."

"뭘 잘해."

"남자친구."

 

나는 웃음을 참으며 원빈을 바라봤다.

 

"기대할게."

 

그 말에 원빈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려웠던 박원빈이.

이제는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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