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MT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고기를 굽는 냄새가 숙소 앞을 가득 채웠고, 여기저기서 맥주캔 따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어색하게 인사만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서로 이름을 부르며 웃고 있었다.
"여주!"
"여기 와!"
나는 친구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원빈도 앉아 있었다.
낮보다 표정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말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아까보다 훨씬 낫네.'
나는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
"자, 건배!"
"중간고사 끝난 것도 축하하고!"
"MT도 즐겨보자!"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원빈도 조용히 잔을 들었다.
평소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닌 것 같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잔이 비는 속도가 빨랐다.
"야, 원빈."
성찬이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또 한 잔을 비웠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술 좋아하나?'
뒤이어 술게임이 시작됐다.
평소 같으면 구석에서 웃기만 했을 원빈도 벌칙이 걸릴 때마다 술을 마셨다.
"박원빈 잘 마시네?"
"그러게?"
"의외다."
원빈은 웃지도 않았다.
그저 잔을 받아들고 조용히 마실 뿐이었다.
*
한 시간이 지나자 원빈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야."
성찬이 원빈 어깨를 툭 쳤다.
"그만 마셔."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괜찮습니다."
말끝도 조금씩 늘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석이 내 쪽을 돌아봤다.
"여주."
"응?"
"네 짝후배 취한 것 같은데?"
"그러게."
"좀 데리고 나가 봐."
"짝선배잖아."
주변에서도 맞장구쳤다.
"맞네."
"여주가 좀 챙겨."
"바람 좀 쐬고 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빈 앞에 섰다.
"원빈아."
"...네."
"밖에 좀 나갈까?"
원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숙소 밖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벌레 소리만 들리고, 멀리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자판기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뽑아 원빈에게 건넸다.
"이거 마셔."
"...감사합니다."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빈은 음료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많이 취했어?"
"...조금."
"조금은 무슨."
나는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술 잘 못 마시면 적당히 마셔야지."
"...죄송합니다."
"오늘 죄송하다는 말 몇 번째야."
"..."
원빈이 작게 웃었다.
그러다 다시 조용해졌다.
평소보다 훨씬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걱정됐다.
"무슨 일 있어?"
"..."
"아까부터 계속 이상했어."
"..."
"원빈아."
한참 침묵하던 원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죄송해요."
"뭐가?"
"...낮에."
"...?"
"...실수로 들었어요."
순간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편의점 앞.
민석이랑 했던 대화.
"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
"죄송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왜 사과해."
"들은 건 어쩔 수 없잖아."
원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붉어진 귀가 보였다.
"...누나."
"...응."
"...연하는."
원빈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진짜 별로예요?"
나는 그대로 굳었다.
"...뭐?"
원빈은 웃으려는 듯했지만 웃지 못했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질문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걸.
술김이라 해도 진심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너."
나는 괜히 원빈 팔을 툭 쳤다.
"술 너무 취했다."
"..."
"바람도 쐬었고."
"이제 들어가자."
원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숙소까지 걸어가는 내내 둘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누나."
"...응?"
"...죄송합니다."
"..."
"아까 한 말."
"..."
"잊어주세요."
나는 잠시 원빈 얼굴을 바라봤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원빈은 끝내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들어가."
"...네."
원빈은 조용히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동안 닫힌 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뭐였지.'
술 취한 사람의 실수라고 넘기기엔.
자꾸만.
'연하는 진짜 별로예요?'
그 한마디가 계속 귀에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