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reve saggio di un artigiano troppo immersivo

incubo




일곱 살 언저리의 기억은 내게 있어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성인이 된 지금, 돈깨나 버는 사업가 새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 덕에 잘나가는 남편 둔 사모님으로의 신분상승은 순식간이었다. 그 여자는 원래 이곳이 제 자리였던 것처럼 지난 밑바닥 인생을 그저 단편적 악몽으로 치부하며 거들먹거렸다. 남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않고 고급진 척을 해댈 때는 그 철면피 같은 낯짝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다만 큰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삼시세끼 모두 대면하며 먹을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었으며, 내 나잇대에 과분하리만치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해준 아버지와 그의 집안 덕에 나는 오히려 재혼을 감사하게 여겼다. 사람 욕심이 그랬다. 애당초 가진 적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손에 들어온 걸 순진하게 놓쳐버릴 수야 없었다. 목에 핏대를 세워서라도 지켜낼 것이기에, 될 수 있다면 어릴 적 기억을 싸그리 지워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닮았다. 과거가 끔찍이도 싫었고 회상 끄트머리에 딸려오는 죄책감에 속이 쓰려 가끔 변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특히 그 얼굴이.


"하아······ 씨발."


세면대 앞에 서서 애꿎은 얼굴을 몇 번 더 씻어내렸다. 여기저기 충혈된 눈은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수건으로 대강 얼굴을 훑었다. 요즘따라 산길을 오르는 악몽을 꾼다. 이 집에 오기 위해 내가 버려야 했던 모든 것. 거추장스런 자존심과 의지. 그리고,


핏덩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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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이기적인 면은 누구나의 속에 내재되어 있다. 그 정도를 스스로도 감히 측정할 수 없었을 때가 일곱 살이었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그걸 이리저리 굴려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을 때 즈음. 나는 책에서 가르치는 양보보다는 득과 실을 따져 내게 이로울 선택지를 골라내는 능력을 길렀다. 동생은 정반대였다고 볼 수 있다. 내버려뒀다간 제 분량도 못 챙길 머저리였다. 성격은 순박하기 그지없어 동네 아이들에게 시비가 걸리면 늘상 맞고 오는 통에 집에는 구급상자가 열려 있는 날이 태반이었다. 단칸방에 눌러앉아 볼에 연고를 치덕치덕 발라줬다. 왜 당하고만 있냐 한소리 하면 그 애는 세상물정 모르는 웃음을 내지으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때리면 걔네가 아프잖아."

"······."

"그건 나쁜 거야."


솔직히 말하면 저런 바보가 나와 같은 피를 나누고 있단 게 믿기지 않았다. 약 뚜껑을 닫고선 나는 이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역시 동생 같은 건 내게 일말의 쓸모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탓이었다. 짐이라면 모를까. 그 후로 며칠이 지나고, 새벽녘에만 들쑥날쑥 얼굴을 비추던 어머니가 한 아저씨를 집까지 데려왔다. 고작 하룻밤 잠자리 따위를 위해 온 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새아버지였다.


처녀 때 버릇 못 버리고 밖을 나돌던 습관이 영 헛된 건 아니었는지 큰 걸 하나 물고 왔다. 언뜻 보이는 값비싼 장신구들과 위 아래로 맞춰입은 정장, 시선 끝에 들어차던 광 나는 구두. 사람 좋게 인사 건네던 그는 나와 동생을 보고서 퍽 곤란하다는 눈치를 비추었다. 짐작건대 애가 둘이나 딸렸다니, 하는 생각이었겠지.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행복해지기엔 둘은 너무 많다. 고개를 슬쩍 내려 옆에 잠을 자고 있던 동생의 얼굴을 응시했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난 아주 못돼처먹은 아이였다.


"ㅡ아, 여기서 60초 세야 해. 알겠지?"

"응 누나. 근데 창고는 너무 무서운데···."

"너 나랑 놀기 싫어? 숨바꼭질은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산 정상에 위치한 폐가 옆 창고. 아이들이 종종 대낮에 담력체험 한답시고 들르던 공간이지만 이젠 찾는 이가 드물어져 문짝에 먼지가 끼여 있다. ㅡ이가 무서운 듯 벽에 팔을 댄 채 제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는다. 나는 속으로 찔려 바락 성질을 냈다. 그런 호통에 시무룩하게 처진 뒷모습이 여전히 멍청해 빠졌다. 아, 가여워라. 곧 버림받을 줄도 모르고 제 누나의 말만 철썩같이 믿는 꼴이라니. 이내 동생의 입에서 숫자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셋··· 나는 서둘러 창고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


그런 후에 철문을 닫았다. 끼이익- 하는 녹슨 쇳소리가 귓청을 찢어놓을 듯 선연했다. 철컥. 안에서 뭐라 말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눈을 꼭 감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서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잠구기까지 했으니 안에서 문을 열 턱이 없었다. ㅡ이는 갇혔다. 내가 동생을 가뒀다. 이 동네를 떠나기 전 누군가에게 귀띔은 해놓을 작정이니 어쩌면 이르면 내일쯤 발견될지도 모른다. 한참을 달려 내려가다 나뭇가지를 잘못 밟아 중심을 잃고 산 중턱에서 와르르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서 눈가가 벌게졌다. 큰 상처가 아니었는데도.


"미안··· 미안해, 미안······."


듣는 사람 없는 사과를 몇 번 주절거린 후엔 눈두덩이를 닦아내고서 다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밖에 있으면 자꾸 동생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 해 곧장 집으로 걸었다. 아저씨를 데려온 뒤로 어머니는 아침에도 집에 있어 나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엄마, ㅡ이가 없어졌어요. 아까 같이 놀러나갔는데 길을 잃었나 봐요. 듣는 이의 표정은 왔다 갔다 했다. 처음엔 당황, 그러다가 옅은 미소, 최종적으로는 어색하게 슬픈 낯. 사실 속으라고 한 말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와 그녀의 공통된 욕망을 실현시켰을 뿐이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걱정을 빙자한 진정한 쓰다듬을, 사랑을 받은 날이었다. 실종 신고도 않고 우리는 도망가다시피 새아버지의 집으로 떠났다. 기필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 참으로 단란한 가족이었다.


쾅ㅡ


그러니 지금 벌어진 일은 틀림없이 내 업보라 할 수 있겠다. 밤잠을 설치게 한 악몽은 누군가가 던진 예고장이었으며, 그 속에 내리박힌 얼굴은 곧 마주할 표상이었다. 버려진 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끼익, 하는 날선 쇳소리가 머리를 갈가리 찢고 들어오는 듯 했다.


"아··· 씹,"


몸뚱이가 찬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밖과 달리 아무런 고성도 들리지 않는 VIP룸. 눈 앞엔 내가 입성해 있는 카지노의 수장이라고 명명된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한 손에 양주잔을 위태로이 돌려대는 게, 수틀리면 이걸로 네 대가리를 부숴버리겠다는 뜻 같다. 늦은 밤. 집 가던 길목 어귀에 우연이라기엔 퍽이나 수상한 얼굴을 띈 남자들이 대여섯. 다들 나누던 눈빛이 씹스럽더라니 개중에 가장 덩치가 곰만한 놈에게 잡혀 여기 바닥에 납작 꿇려진 채 있는 것이다. 입안에 핏기가 물린다.


"오랜만이네."


가라앉은 음성이 방 전체를 진동했다. 나는 이 자를 안다. 알기에 더욱이 맞닥뜨릴 용기가 없다. 평범할 거라곤 감히 생각지도 않았건만 거진 십 년만의 재회가 이따위 식일 줄은. 남자는 나를 보더니 한 차례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곤 뚜둑, 하고 제 손목을 가볍게 꺾었다. 이어 들리는 발소리가 또각- 또각- 청명하게도 머리께를 울려댔다.


어슴푸레 끼치는 소름이 그 형상을 내게 똑똑히 보여준다. 또각. 곱게 처 박힌 시야에 잘 닦인 구둣발이 들어찼다.


이내 턱을 억세게 잡아올리는 손짓에, 나는 마주하고 만다.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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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은 끝이야."




악몽의 실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