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둥지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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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 외곽을 둘러싼 장막 위로 차가운 은빛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가문의 수장인 숙부를 필두로 한 수십 명의 정예 헌터들이 결계를 부수며 성채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은제 장검과 성수 병들이 달빛 아래서 차갑게 번뜩였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실패작’이자, 밤의 지배자에게 굴복해 몬스터가 되어버린 수빈을 단죄하러 온 가문의 마지막 총력전이었다.

“최수빈! 당장 나와라!”

숙부의 호통이 정적을 깨뜨렸다.

“가문의 피를 더럽히고 괴물의 개가 된 것도 모자라, 감히 뱀파이어의 피를 받아들여 인류를 배신하다니!

오늘 네놈의 목을 베어 가문의 수치를 씻겠다!”

저택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하지만 걸어 나오는 것은 연준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핏빛 코트를 단정하게 걸치고, 우아하면서도 압도적인 자태로 걸어 나온 이는 바로 수빈이었다. 수빈의 붉은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짙은 빛을 발했다.

“수치... 라.”

수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마력을 타고 마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가문의 명예가, 능력 없다며 어린아이를 골방에 가두고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이었습니까?”

“이놈이 감히...!”

“난 단 한 번도 가문의 피를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날 먼저 버린 건 당신들이었지.”

수빈이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수빈의 혈관 속에 흐르는 순혈의 마력이 폭발하듯 분출하며, 수빈의 손끝에서 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검이 형상화되었다.

헌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피워내지 못했던 강력한 폼이었다.

수장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 저 정도의 마력이라고...?

말도 안 된다! 저놈은 감응력조차 없던 실패작이었단 말이다!”

“실패작이라 부르던 그 능력이, 당신들이 틀어쥐고 있던 좁은 규율 안에서는 피어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수빈의 몸이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사슬처럼 튕겨 나갔다.

콰-앙!

수빈의 칼끝이 숙부의 수호 결계를 단숨에 부수며 마당 바닥을 쪼개버렸다.

선두에 서 있던 정예 헌터 넷이 수빈의 자비 없는 검풍에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오차라곤 없었다.

헌터로서 배운 체술에 순혈의 피가 보태어지자, 수빈은 마당을 지배하는 완벽한 학살자가 되어 있었다.

가문의 헌터들이 당황해 일제히 수빈을 향해 성수 단검을 던지고 주술 부적을 퍼부었지만, 수빈은 기묘한 각도로 그 모든 공격을 피해 내며 차례차례 그들의 무기를 파괴해 나갔다.

“크악! 말도 안 돼... 저게 정말 최수빈이라고?!”

마당이 아수라장이 되어갈 때쯤, 숙부가 이를 악물고 품속에서 가문의 보물인 ‘성인(聖印)의 사슬’을 꺼내 들었다.

순혈조차 구속한다는 가문의 최후 병기였다. 숙부가 주문을 외우자, 은빛 사슬이 뱀처럼 수빈의 사지를 죄어들며 마력을 봉인하려 했다.

“끝이다, 미친 놈!”

은빛 사슬이 수빈의 어깨와 다리를 감싸 쥐며 살을 타들어 가게 만들었다.

수빈이 억누른 신음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으려던 그 찰나.

파-앗!

공기를 가르는 지독한 장미 향과 함께, 붉은 눈의 연준이 수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연준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수빈의 사지를 얽매던 성인의 사슬을 가볍게 잡아채어 산산조각 내버렸다.

은 기운이 연준의 손바닥을 태웠지만, 연준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나른하게 웃으며 수빈의 허리를 감싸 안아 일으켜 세웠다.

“내 눈앞에서 내 반쪽을 또 괴롭히려고?”

연준의 붉은 동공이 지옥의 불꽃처럼 번뜩였다.

“연준 씨...”

“잘했어, 수빈아. 너 혼자서도 이 하찮은 놈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건 증명됐어.”

연준이 수빈의 뺨에 살포시 입을 맞추며, 수빈의 칼을 쥔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쥐었다.

순혈의 지배자인 연준의 마력이 수빈의 칼날로 흘러 들어가며, 붉은 장검의 크기가 두 배로 증폭되어 마당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두 사람의 마력이 완벽하게 하나로 얽혀드는 공명(共鳴).

“자, 마무리짓자.”

연준이 수빈의 귓가에 다정하게 읊조렸다.

수빈과 연준이 동시에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붉은 절단선이 마당 전체를 쓸어버렸다.

수장을 비롯한 가문의 정예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고, 가문이 자랑하던 유서 깊은 결계석들이 깨끗하게 두 동강 나며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잦아든 마당에는, 더 이상 수빈에게 칼을 겨눌 수 있는 헌터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문의 수장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드린 채, 달빛 아래 서로를 감싸 안고 서 있는 수빈과 연준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 이상 수빈은 가문의 수치도, 실패작도 아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밤의 또 다른 지배자였다.

수빈은 싸늘한 눈빛으로 숙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선언했다.

“돌아가서 전하십시오. 오늘부로 가문과의 모든 인연은 끊어졌노라고.

다시 한 번 이 저택의 경계를 넘는다면, 그땐 가문 전체의 이름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수빈의 마지막 인사는 냉정하고 단호했다.

피와 잿더미가 자욱한 사냥터 한가운데서, 연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빈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어매며 나지막이 웃었다.

둘만의 완벽한 영원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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