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6화 - 질투일까

또 하루가 지나간다. 5시 지루한 전공 수업이 끝나고 막 건물을 나서던 찰나였다. 웅웅, 휴대폰이 울렸다.

 

큰 화면에는 '김준서' 세 글자가 써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도 가끔 연락하는 남자애였다. 성격이 좋아서 나같은 애도 잘 챙겨주는 그런 애였다. 김준서는 내 대학 근처에 있는 다른 대학교에 재학중이다. 고등학교 인연 따위, 대학생이 되면 전부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김준서는 시간만 맞으면 종종 만나러 와줬다. 그렇다고 서로 연애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막말하기 편한 사이 정도였다.

 

 

[ 뭐함? 나 지금 너네 학교 ]

[ 한 시간 정도 나한테 양도해 ]

 

 

걸음을 멈추고 답장을 보냈다.

 

 

[ 술 마시는 거 아니면 너랑 안 놀아 꺼져 ]

 

 

카페에 마주 앉아 건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이는 아니었다. 할 말도 별로 없었다. 술이라도 있어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당히 털어놓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한텐 어색한 사람이었다.

 

답장은 금방 왔다. 연달아 오는 메시지에 진동이 웅, 우웅ㅡ 하고 끊겼다가 울렸다.

 

 

[ 그래 그럼 내가 자주 가는 바 ㄱㄱ ]

[ 난 약속있어서 논알콜로 마심 ]

[ 정문으로 나와 ]

 

 

난 아직 놀아주겠다고 답장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약속은 확정이 되어있었다. 그보다 내가 집 가려면 정문으로 가야하기도 하고. 학교 정문으로 나가자 준서가 가로수 아래 서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너 살쪘냐?”

“보자마자 지랄이네.”

“얼굴이 좀 부었는데.”

“너는 더 삭았다.”

“오랜만에 봐도 반갑지가 않다.”

 

 

준서가 돌아서서 먼저 걸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근데 술 안 마실 거면 왜 바를 가.”

“이따 여친 만나야 돼.”

“그럼 걔나 만나지 왜 날 불러.”

“약속 시간까지 남았다니까.”

“나는 시간 때우기용이냐?”

“너도 술 아니면 나랑 안 논다며.”

 

 

할 말이 없었다. 준서는 학교 앞 골목을 익숙하게 걸었다. 몇 번 방향을 꺾을수록 묘하게 낯익은 길이 나왔다. 설마 싶었는데, 녀석은 익숙한 간판 앞에서 멈춰 섰다.

 

RESET.

 

유리문 너머로 익숙한 조명과 바 테이블이 보였다.

 

 

“시발, 동네가 얼마나 좁으면 술집이 여기밖에 없냐?”

“왜?”

“다른 데 가자.”

“싫어. 여기 내 단골 바임.”

 

 

혼자 씩씩대고있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김준서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찌르릉 울리고, 곧이어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지난번보다 손님은 적었다. 계단을 내려와 바 안쪽을 확인하니 이상원이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얘는 여기서 사나? 정규직이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샌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들어오는 걸 본 이상원의 시선은 슬며시 내 앞에 서있는 김준서에게로 옮겨갔다. 날 먼저 발견한건가, 아주 짧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우리는 바 테이블 끝쪽에 나란히 앉았다. 준서는 메뉴판을 펼쳐보지도 않고 손을 들었다. 다른 바텐더가 이쪽으로 오려는 순간 상원이 먼저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말투도 표정도 영업용이었다. 멀끔하게, 적당히 웃는 얼굴이었다. 준서는 익숙하게 논알콜 칵테일 하나를 주문했다. 상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도 메뉴판을 보지는 않았다.

 

 

“그걸로.”

“저번에 드신 거요?”

“엉.”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준서가 곧장 나를 쳐다봤다.

 

 

“뭐야. 아는 사이야?”

“아니.”

“근데 알아듣는데?”

“몇 번 왔어.”

 

 

잠시 후 상원이 잔 두 개를 가져왔다. 준서 앞에는 투명한 탄산 위에 레몬이 올라간 잔을, 내 앞에는 익숙한 칵테일을 내려놓았다. 준서가 내 잔을 보더니 웃었다.

 

 

“너 아직도 그런거 마시냐?”

“왜. 이게 뭔데.”

“입맛 진짜 안 변하네.”

“넌 얼굴이 더 삭았다.”

“오랜만에 봐도 말하는 꼬라지는 똑같네.”

 

 

김준서는 픽 웃으면서 잔을 입에 가져다댔다. 상원은 빈 쟁반을 든 채 우리를 한 번씩 바라봤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시선이 마주쳤지만 상원은 웃지 않았다. 공손한 존댓말을 하곤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나도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준서는 손으로 잔을 흔들며, 얼마 전 헤어진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를 꺼냈다. 음악 소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몇 번이나 되물었다. 준서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겼다.

 

 

“그래서 걔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대.”

“누가?”

“김건우.”

“걔가 누군데.”

“방금 말했잖아.”

“뭐라는거야, 하나도 안 들려.”

 

 

별로 흥미도 없는 이야기라서 등을 의자에 붙였다. 김준서는 답답하다는 듯 내 쪽으로 바짝 몸을 숙였다. 팔이 맞닿을 만큼 가까웠다. 귀 옆에서 다시 설명하는 목소리는 이번에는 똑똑히 들렸다. 김건우. 키 엄청 큰 애 있잖아.

 

 

“아, 걔.”

“이제 알아들었냐?”

“근데 난 걔 별로.”

“네가 좋아하는 애가 있긴 하냐?”

 

 

대답 대신 팔꿈치로 김준서의 어깨를 밀어냈다.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구만 뭘 꾸역꾸역 하겠다고. 얜 고딩 때부터 이랬지. 걍 혼자 말이 많은 애였다.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꼭 다 해야하는.

어릴때와 똑같은 행동이 웃겨서 픽 웃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상원은 다른 테이블에서 셰이커를 흔들고 있었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선은 이쪽에 머물러 있었다.

 

뭐야. 이 쪽을 보고있네.

 

눈이 마주치자 상원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기분탓이 아닌데. 정신이 저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김준서가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다. 상원은 완성된 칵테일을 손님 앞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아까보다 차가워 보였다.

 

 

이상원은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다시 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며 잔을 들었다. 서로의 시선이 고요히 맞닿았다.

 

꿀꺽, 침을ㅡ 아니 술을 한 모금 삼켰을 때 나무로 된 바 테이블에서 진동이 울렸다. 김준서의 폰이었다.

화면을 확인한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전화 좀.”

“여친?”

“응.”

 

 

고개만 살짝 돌려 물어보니 김준서는 벌써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가게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아 잔 안의 얼음을 흔들었다. 어느새 절반 이상을 마셨다. 조금, 빨리 마셨나. 괜히 딴짓을 하는 척, 다른 생각을 하는 척을 하는 사이. 이상원이 빈 잔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올 줄 알았다. 그냥 감이 그랬다. 나는 기다리고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상원은 김준서가 나간 문을 한 번 보고는 빈 의자 앞에 섰다.

 

 

“취향 특이하네.”

“누가?”

“오늘 만나는 사람.”

“네가 내 취향을 잘 알던가?”

 

 

나도 모르는데. 말을 잇곤 비꼬듯 피식 웃었다. 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에 떨어진 물기를 마른 천으로 닦았다. 이미 깨끗한 자리였다.

 

 

“상처를 빨리 잊는 편인가 봐.”

“뭐?”

 

 

천을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유부남 사건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무슨 뜻인지 뒤늦게 알아들었다. 이상원은 김준서를 내가 새로 만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뭐지, 질투? 사실 오늘 바에 들어왔을 때부터 조금씩은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표현을 할 줄은 몰랐다.

 

변명을 해보자면 바로 할 수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애와는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다. 김준서에게는 여자친구도 있다.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굳은 얼굴로 테이블을 닦는 상원을 보고 있으니 조금 골려주고 싶어졌다. 정말 신경 쓰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손으로는 잔을 들고, 턱을 괸 채 상원을 올려다봤다.

 

 

“원래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래잖아.”

 

 

상원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단전에서부터 짜릿한 쾌감이 올라왔다. 저 잘난 얼굴이 나 때문에 구겨진 모습이 꽤 볼 만했다. 상원은 나를 잠시 내려다봤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쥔 천을 접어 바 테이블 아래에 내려놓고 그대로 돌아섰다. 등의 셔츠가 움직일 때마다 날개뼈를 따라 구깃구깃, 구겨졌다. 마치 일그러졌던 이상원의 미간처럼.

 

빠르게 올라왔던 도파민은 더 빠르게 식었다. 입꼬리는 한 순간에 바닥을 향해 꽂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가 없다. 흥미가 식는다기보단 뭐랄까, 찝찝함이 남았다.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나는 괜히 빨대로 녹은 얼음을 휘저었다. 잔 안에서 둥글게 돌며 녹는 얼음을 한참 바라보다가 남은 술을 마셨다.

잠시 후 김준서가 돌아왔다.

 

 

“나 이제 여친이 불러서 가야겠다.”

“갑자기?”

“근처 다 왔대.”

“가.”

 

 

김준서는 의자에 걸어둔 겉옷을 집어 들었다.

 

“너는?”

“난 한 잔 더 마시고 감.”

“그래, 또 보자.”

“연락하지 마.”

“그래, 집 가면 연락하고.”

 

 

내 말을 대충 씹은 김준서는 근처에서 노는 바텐더를 잡고 계산을 마치더니 빠르게 가게를 벗어났다.

 

이상원은 반대편 테이블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김준서가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누군지 궁금하면 이런 것 까지 들으라고. 타이밍을 참 못 맞추는 남자다.

 

김준서가 앉았던 자리가 비었다. 나는 혼자 남아 천천히 잔을 기울였다. 조명을 벗어난 자리는 아늑했지만, 한 편으로는 우울했다.

 

아, 오늘은 좀 빨리 취했나본데.

내 시선은 이상원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에도 이상원은 제 앞의 손님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그래도 나는 안다. 저 휘어진 눈이, 웃고있지 않다는걸.

 

잠시 후 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빤히 쳐다보던 내 시선과 이상원의 시선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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