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venuto, è la prima volta che ti comporti in modo maleduc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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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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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이게 마지막인가.”


그는 나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어젯밤 이미 이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굿바이 키스까지 했는데. 우리가 긴 시간에 걸쳐 서로에게 스며든 정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이별을 질질 끌 줄이야. 나는 애써 그가 던진 물음을 삼키고 주머니 속 립스틱을 매만졌다. 전정국의 차에서 가지고 내린 물건이었다. 다른 것들은 필요 없었다. 그저, 닳아 없어지는 새빨간 립스틱 하나로 족했다. 언젠가 사라지는 이 립스틱만이 우리의 관계를 정리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전정국.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그랬듯 날 맞이하는 무거운 적막. 이제 이 외로운 느낌을 받을 날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 침묵마저 사랑하게 됐다면. 구두를 벗으려던 참에, 아 참. 이 구두는 마찬가지로 전정국의 차 안에 있었다. 어쩜 그리 서로의 삶에 진득하게 흔적을 남겼는지. 화려하고 예쁜 구두였다. 이제 신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런데…

현관에 웬 남자 구두가…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들기 무섭게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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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스친 생각은 딱 하나. 그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탁자 위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봤으면 안 되는데. 정말 그건 안 되는데. 박지민이 내게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저 웅얼거리는 효과음으로만 들렸다. 그 종이가 탁자에 없었다. 어디 갔지. 설마 박지민이 벌써…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돼. 미친 사람처럼 넋을 놓아버릴 뻔했는데, 어느새 내 시야에 가득 차 있는 박지민의 얼굴. 그제서야 그의 어깨 너머 소파 아래로 거의 들어가 있는 하얀 종이가 보였다. 내가 저기다 던졌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제 가까스로 숨이 쉬어졌다. 그리고 이제서야 네가 제대로 보였다.


“잊었어? 우리 헤어졌어.“

“알아. 어젠 네 말을 들었고.”

“…”

“오늘은 내가 말하러 왔어.”


명색이 이별인데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면 허무하잖아. 나도 매달려는 봐야지. 어제 울던 그 남자는 어디 가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있다. 그동안 마음을 정리하고 온 건가. 허락도 연락도 없이 마음대로 내 집에 찾아온 건 괘씸하지만, 어제 내 말을 듣고 어이 없었을 너의 심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손님인데 옛정을 봐서 대접은 해야지 싶어 물었다. 뭐라도 먹을래? 아님 마시거나.


“뭐든 좋지 나는.”


박지민만이 가진 매력이었다. 특유의 눈웃음. 보는 사람이 절로 웃음짓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웃음이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 저 사람 주변에 있으면 왜인지 웃을 일이 많아질 것 같다고. 내가 사람을 볼 줄 알았지. 그와 함께했던 시간 내내 나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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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전정국이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그 해 봄을 지나 여름. 나는 이국의 더위를 한껏 만끽하던 참이었다. 사귄 친구들과 해변도 다녀오고, 피크닉도 가고, 파티도 참석하고. 하루하루가 꿈이었고, 하루하루 내 꿈에 다가가는 듯한 기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인생을 패션에 목숨 걸기로 다짐한 게. 잔잔하던 날들 속, 하루는 파도가 칠 법도 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파도는 박지민으로부터 시작됐다.

한국에 있는 박지민은 곧 나를 보러 온다는 짧은 말의 메일을 한 통 보내왔다.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흐려질 때즈음,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어 내심 설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머지 않아 전정국도 알았지. 그때였을까. 우리 넷의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 게.

김태형을 제외한 세 명이 다시금 이 타지에서 마주했을 때. 우리의 사이는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하루 중 절반은 함께였고, 함께였던 만큼 정도 많이 붙였겠지. 몇 달 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두 사람에게 감춘 비밀이 점점 불어나고 있더라. 전정국을 볼 때, 박지민을 볼 때… 두 사람에게 다 죄를 짓고 있었다. 불륜이라기엔 두 관계는 동시에 시작됐고, 사랑이라기엔… 어딘가 불편한 형태였다. 불결한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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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걸 못 마시는 그를 위해 커피에 따뜻한 우유와 시럽을 넣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거실로 갔을 때에도 여전히 소파 아래에 있는 종이가 거슬렸다. 저걸 언제 치우지. 일단 타이밍을 생각해보기로 하고,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ㄱ자 소파의 각각 끝부분에 앉은 우리는 손 안의 머그잔을 내려다봤다. 고소한 커피의 향기는 거슬리지 않게 딱 적당한 농도였다.


“할 말 해.”


기다렸다는 듯 잔을 몇 모금 홀짝이다 탁자에 내려놓는 박지민. 나도 덩달아 내려놓게 됐다. 무슨 말을 하려고 넌 내게 직접 찾아왔을까. 이별은 없던 일로 하자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아니지. 우리가 즐거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속으로 오만 가지 추측이 난무할 때즈음, 무거운 입이 열렸다.


“고마워.”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카펫의 끝자락에 가있던 시선은 너에게로 옮겨갔다. 네 친구들과의 우정을 박살내고, 원수 지간이 될 지경에 이르게 했는데. 너에게 끝도 없이 상처를 줬는데. 난 온전히 너의 사람이 된 것도 아니었는데. 대체 내게 뭘 고마워 할 수 있지. 너에게 뺨이라도 한 대 맞아도 싼 나인데. 너는 대체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참 착하고 여린 사람이구나.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돼.


“네 덕에 지루하진 않았어.”

“순탄하지도 않았지.“


냉정해져야 했다. 너같은 사람에겐 더이상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에 후회하는 일을 하나 고르라 한다면,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박지민을 만난 일이라 말할 것이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다. 너라는 훌륭한 사람이 내겐 너무 과분해서. 겨우 나같은 존재가 너를 망친 것 같아서. 내 인생에서 너를 만난 일은, 가장 최악이자 가장 최선이었다.


“이 말 하려고 온 거야?”

“응.”


턱 끝까지 뜨거운 무언가가 가득 차올랐다가 내려앉았다. 다짜고짜 이별을 통보한 나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고맙다는 인사라니.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딱 하나. 죄책감이다. 잘 울지 않는데, 이상하게 너만 보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애초에 너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너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좋은 사람 만나. 이안아.”

“…”

“가벼운 마음 말고, 진중한 마음으로.”

“…”

“널 아주 깊게 사랑해줄 사람.”

“…”



누군가의 삶에 더이상 상처라는 존재가 되지 말아줘. 박지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리고선 그는 커피가 채 다 식기도 전에 볼 일이 생겼다며 이곳을 떠났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상처라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서. 상처… 너는 나를 상처로 기억하겠구나. 나는 너에게 아주 깊은 흉터로 자리 잡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어떻게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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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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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France





“나랑 만나보고 싶다고?“

”나 진지해.“


이안은 창가에 걸터 앉아, 제게 달콤한 말을 속삭인 지민을 바라봤다. 우수를 삼킨 듯한 저 눈동자가 유달리 매력적인 밤이었다. 이안은 잠시 생각했다. 머릿 속의 정국을 떠올렸다. 누구 하나를 버리기엔 둘 다 탐이 났다. 둘 다 가질 수만 있다면, 하고 이안은 생각했다.


“나 연애할 때 많이 귀찮은 스타일인데.”

“나 챙겨주는 거 좋아해.“

”다른 남자랑 바람 나면?“

”날 두고 누구랑 눈 맞으려고?“


이안은 그의 대답과 말솜씨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순진한 외모에 은근히 사람 홀리는 말재주. 미친 척하고 둘을 만나볼까. 이성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왜인지 이안은 도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싶어졌다. 치정으로 간주하기엔 나름 순수했고, 호기심으로 포장하기엔 다소 불순했다. 이안의 위험한 모험은 머지 않아 큰 파도를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