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venuto, è la prima volta che ti comporti in modo maleducato.

Gravatar


헤어지자 















.
파리의 늦여름. 우리는 해가 지는 때에 맞춰 해변을 찾았다. 큼지막한 돗자리를 펴고 간식거리와 술들을 얹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사람들이 재잘재잘 저마다 하고픈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린넨 소재의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었다.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폼이 마음에 들었다. 해안을 따라 걷고 있을 때즈음, 김태형이 나를 불렀다. 최이안. 돌아봤을 때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전정국과 박지민 역시 날 보고 있었다. 차츰 입꼬리를 올렸다. 적당한 정도의 미소를 보였다.

그들의 시선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기분이 오묘했다. 너희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가 너희 모두와 만난다는 사실을. 그저께와 어젯밤, 오늘 아침을 각각 너희 중 한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김태형이 찍힌 사진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파도를 따라 걸었다.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행복했다. 어린 아이가 힘겹게 쌓아 올린 모래성이 무너졌다. 예기치 않게 멀리 다가온 파도 때문이었다. 곧 아이의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었다. 머지 않아 내 육체에 큰 충격이 전달됐고, 그 원인은 남자 둘이 동시에 내게 어깨동무를 한 탓이었다. 박지민과 전정국. 나를 보며 웃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응~”

“물에 던질 생각이면 관둬 진짜.”


나 오늘 새로 산 원피스다. 그들을 향해 경고했지만, 이미 듣지 않는 눈치였다. 둘이서 잠깐의 아이컨택을 하더니 기어코 박지민이 날 안아들었다. 바다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그였다.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김태형과 전정국은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 할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다. 


“나 던질 거야?”

“하는 거 봐서.”


두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조심스레 그의 뺨 부근에 입을 맞추었다. 이정도면 됐지? 박지민은 환히 웃었다. 붉은 물감이 옅게 퍼져가듯 그의 미소는 점점 퍼져갔다. 그 입맞춤이 독인 줄도 모르고.






.
Gravatar


“어디서 샀어?”

“오는 길에 보이는 곳에서.”

“예쁘다.“


이런 이쁜 케이크 처음 받아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그가 준 케이크를 꺼내봤다. 상자를 열자마자 풍기는 단내가 좋았다. 여기서 먹을까? 그는 칼로 조각내어 내 앞접시에 덜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입에서 녹네, 녹아.”


정말이지 달콤했다. 생크림도, 빵 시트도, 딸기도… 뭐 하나 맛 없는 게 없다. 어쩜 케이크가 이러지. 원래 달달한 걸 찾아 먹는 편은 아닌데도 썩 마음에 들었다. 아껴 먹으려고 포크로 조금씩 먹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여자친구분 생일이신가봐요~”

“네?”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입술에 묻은 크림을 닦아내며 김태형을 봤다. 아무 말 없이 눈빛만 주고 받다가, 그가 답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곧이어 직원 몇 명과 소품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생일 고깔모자는 나에게 주었고, 원하는 게 있으면 골라보라며 보여주었다. 선글라스, 하와이안 목걸이… 다채로운 색의 소품이 그저 귀여워 웃음짓는 동안 김태형은 내 옆으로 와 고깔을 씌워주었다. 정리 안 된 옆머리를 귀에 걸어주었다. 그의 손길이 간지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우린 포즈에 대해 상의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그리고 김태형은 내 허리를 감싸며 브이를. 필름카메라로 두 장을 찍어주셨다. 인쇄된 사진을 기다리는 동안 고깔을 벗어서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 두 장을 건네받았을 때, 바람 빠지듯 웃음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연인처럼 보일 수가 있지. 브이한 그의 손가락은 꽤 길었다. 맞다, 손이 컸었지. 내 옆에 앉은 그의 손을 한 번 봤다가 그 다음 필름을 보았다. 그 사진에서 역시 나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김태형은,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이제 그의 손이 아닌 내 손에 케이크 상자가 있다. 다 먹지 못했으니 집 가서 먹어야지. 차가 주차된 곳까지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아까 눈이 오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친 모양이었다. 이 도시에 남은 눈의 흔적이라곤 살짝 젖은 아스팔트 하나였다. 시원한 겨울밤의 향기를 맡으며 한 걸음 두 걸음 내딛고 있었을까. 갑작스레 발걸음을 멈추는 김태형이었다. 아 맞다.


“촛불 안 불었네.”

“됐어.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케이크 하나로 족해. 갈 길 가려는 나를 붙잡더니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곤 날 보며 웃는 거 있지. 그나저나 아직 담배를 끊지 않은 건가 싶어 물었다.


“끊으래도.”

“누가 자꾸 담배 생각나게 하던데.”


능글맞은 저 태도. 이제 적응이 됐다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아랑곳 않고 라이터로 불을 켰다. 산지 얼마 안 됐는지 불꽃이 제법 컸다. 그는 내게 어서 소원을 빌라고 말했다. 소원이라… 지금 이 상황에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아 마음속으로 빌었다. 세 남자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불꽃을 후 불었다. 앗 뜨거. 홀로 중얼거리며 김태형은 다시금 라이터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의 어깨 위로 하얀 무언가가 떨어졌다. 점점 그 양이 많아져, 나는 하늘을 응시했다. 눈이 내린다.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 소원에 대한 신의 긍정적 응답일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짧게 끝난 내 소원에, 김태형은 궁금하다고 했다. 널 위한 소원을 빌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너에게 여지를 주어선 안됐다. 너는 나를 잊어야만 하니까.







.
일주일이 흘렀다. 3월이었다. 세 남자를 마주하지 않은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됐다. 나는 예상 외로 꽤 잘 살았고, 더이상 그들과 마주친 일도 없었다. 순간의 극심한 통증이 밀려올 때면 정말 죽는가 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구나 실감하다가도, 완전히 망각하는 순간도 있었다. 우리가 보지 않는 시간만큼 결국 마음도 멀어진다면 너희는 날 잊을 것이다. 나를 증오하고 원망하다가도 가끔은 나를 추억하겠지. 좋은 사람이었든, 좋지 않은 사람이었든 너희의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길가에 나가면 푸릇푸릇한 잎이 나고 있는 나무가 많았다. 저 나무에 꽃이 필 무렵, 나는 살아있을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벚꽃을 보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살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집을 정리하고 싶었다. 흔적들을 정리하고, 기억들을 새기고 싶었다. 제일 먼저 먼지 쌓인 상자를 꺼냈다. 교환학생 기간동안 타지에서 담은 모든 추억들이 있는 곳이었다. 셋의 기억도 있을까 싶어 열어보았다. 내 기억으론 그들과 추억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우리가 무언가 기록할 만큼 떳떳한 관계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현지에서 산 옷 몇 벌, 일기장.. 그리고 떠오른 기억.









.
그 해, 파리의 늦은 가을. 온통 갈색빛인 도시에서 나는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해는 저물고, 공기는 쌀쌀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 김태형이 나타났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눈의 실핏줄은 다 터진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처음 보는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색에 걱정이 됐다. 괜찮은 거야? 그의 어깨를 잡기도 전에 그는 나의 손을 뿌리쳤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무슨 말이야 대체.“

”너 아니잖아.“


도통 알 수 없는 말들을 했다. 아니 어쩌면, 은연 중에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천천히 손을 내렸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목구멍에 따뜻한 무언가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내가 본 적 없던 눈빛이었다. 그의 표정은 점차 더 일그러졌다. 그는 골목 벽까지 나를 몰아세웠다.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팠지만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말해.”

“…”

“왜 그딴 짓을 벌여. 왜.”

“…”

“제정신이야 너?”


그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어쩌면 그의 말대로 제정신이 아닐지도 몰랐다. 한 우정을 조각조각 깨부쉈으니. 알면서도, 모든 걸 모른 척했다. 모든 걸 알았던 나와 전정국. 그리고 몰랐던 김태형. 모르고 있을 박지민까지. 



”…더러워.”



울분에 가득 차서 그가 내게 내뱉은 말이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끝내 나를 놓고서 뒤돌아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멸시의 눈빛이었다. 그래, 넌 날 그렇게 증오하겠지. 그런 눈빛으로 보게 되겠지. 하지만,



“넌 나 안 볼 수 있어?”




그 순간에도 나는 최악이었다. 그가 날 못 떠나리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일종의 세뇌였다. 이렇게 끝날 관계가 아니라는 걸,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했고 서로를 위로했으니. 하지만 이제 그 감정이 변질되어 얼룩이 졌다. 애증, 그리고 사무치는 원망. 그리고 약간의 희망. 우리가 평범해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

그 희망 하나로 위태로운 관계는 지속됐다.









.

“그냥 병원에서 치료 받으세요.”

“나아질 건 없잖아요.”

“죽기 전까지 고통이 덜 하겠지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병원이 싫어서…”


머리 빠지는 것도 싫고요. 나의 반항에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무슨 말을 해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아셨던 거지. 암세포가 다른 장기까지 전이되었을 거예요. 통증이 찾아오는 주기는 더 짧아질 겁니다. 견디기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저 혹시,”

“안 됩니다.”

“들어는 주셔야죠.”

“…뭡니까.”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건…”


미치셨군요. 짧고 강력한 한 마디였다. 자기가 내뱉은 후에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셨다. 비행기에 묫자리 두고 싶으신 거 아니면 꿈도 꾸지 마세요. 웃음이 나왔다.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여행하고 싶어서 그러죠. 


“남자친구는 알아요?“

“네?”

“저번에 응급실에 최이안 씨 업고 온 남자.”

“아…”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혼자 다녀오는 건 안 돼요. 남자친구라도 데리고 가야지. 그 친구가 그때 나한테 물었어. 병명이 뭐냐고. 근데 나 대답 안 했어요. 이안 씨가 남자친구한테 안 말했구나. 여태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죽기 전까지 비밀로 할 셈이에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