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호 나페스] 별바라기

7화. 별 보러 가자

금요일 밤, 건호는 말한 대로 데리러 왔다.

대문 밖으로 나가자 검은 차 한 대가 골목 끝에 서 있었다. 언제 온다는거지. 문 앞에서 멀뚱멀뚱거리고있는데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곧이어 건호가 창에 팔꿈치를 걸치곤 나를 불렀다.

 

“여.”

 

나는 깜짝 놀라 건호와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너 차도 있어?”

“있으니까 데리러 왔지.”

“면허는 언제 땄대.”

“딸 수 있는 나이 되자마자 땄지.”

 

나는 차의 앞으로 돌아서 조수석으로 향하곤,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맸다. 은은한 풀내음의 디퓨저가 코끝을 조금씩 스쳐지나갔다.

 

건호는 내가 문을 닫자 바로 출발했다.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기보단, 차가 있는 안건호에 놀랐고, 그 내부를 조금씩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산 지 얼마 안 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특별히 구경할 건 없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동네가 천천히 뒤로 밀렸다. 낮에는 별것 없어 보이던 간판들이 밤이 되니 제각각 불을 켜고 있었다.

건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그날 왔지?”

 

나는 창밖을 보던 채로 대답했다.

 

“아…어. 편의점 들르다가.”

“나 보러 온 거야?”

“그냥 지나가다가 본 거라니까.”

“응.”

 

생각보다 쉽게 물러나는 대답이라 괜히 내가 그쪽을 봤다. 건호는 앞만 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웃음이 살짝, 걸려있었 던 것 같기도 하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

 

나는 다시 창밖을 봤다.

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켜져 있지 않았다. 대신 엔진 소리와 가끔 방향지시등 소리만 낮게 들렸다. 어색하냐고 물으면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편하냐고 물어도 바로 그렇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 사이의 어디쯤이었다.

 

“촬영하는 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건호가 아주 짧게 나를 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촬영까지 봤어?”

“어 뭐…어쩌다가.”

“어땠어.”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날의 골목이 떠올랐다. 교복을 입고 서 있던 건호. 카메라가 돌아가자 다른 사람처럼 변하던 얼굴. 닫힌 문 앞에서 작게 숨을 내쉬던 장면.

 

“신기했어.”

“그게 끝이야?”

“응.”

 

건호가 잠깐 조용해졌다.

 

“섭섭하네.”

“뭘 기대했는데.”

“잘하더라 정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건호는 말없이 차선을 바꿨다. 그 옆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빵 터진 건 아니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듣고 싶은 말은 꽤 분명한 게 웃겨서.

나는 결국 작게 말했다.

 

“잘하더라.”

 

건호의 손이 핸들 위에서 아주 조금 멈췄다.

그걸 보고 나는 괜히 말을 덧붙였다.

 

“연기 알못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엎드려 절받기 같지만, 좋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창문에 비친 건호의 얼굴을 봤다. 가로등 빛이 지나갈 때마다 얼굴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화면 속에서는 늘 또렷하던 얼굴이, 지금은 밤길 사이로 조금씩 흐려졌다.

 

“처음부터 배우 하고 싶었던 거야?”

 

내가 물었다.

건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아니.”

 

그는 낮게 말했다.

 

“그럼?”

“예전에 캐스팅은 몇 번 당했어. 너도 알다시피.”

“어어, 뭐. 그랬던 것 같다.”

“집 일 있고 나서는 그게 생각났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

“…….”

“처음엔 그냥 했어. 돈도 필요했고,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고.”

 

그 말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래서 나도 괜히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마음 아픈 얼굴을 하는 것도 이상했고, 괜히 위로하는 말도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물었다.

 

“지금은?”

 

건호가 앞을 보며 말했다.

 

“지금은 좋아해.”

“…….”

“힘들 때도 있는데. 못하면 짜증나고, 잘하면 좋고. 다음엔 더 잘하고 싶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된 것 같았다.

 

돈 때문이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어도 지금은 달라질 수 있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어쩔 수 없이 붙잡은 걸 어느 순간 진심으로 붙잡게 되기도 하니까.

 

-

 

차는 도심을 벗어나 점점 어두운 길로 들어섰다.

창밖에 낮은 산 그림자가 보였다. 길가의 가게들이 줄어들고, 가로등 간격도 멀어졌다. 나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가, 들어오는 찬 공기에 바로 다시 올렸다.

건호가 그걸 보고 말했다.

 

“추워?”

“조금?”

“위에 올라가면 더 추울 텐데.”

“그걸 이제 말해?”

“차에 옷 있어.”

“준비성 좋네.”

 

건호는 자랑이라도 하듯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뒷자리로 고갤 빼꼼 내밀어보니 옷들이 쌓여있었다. 촬영같은걸 하고 갈아입을 옷들인건가? 구태여 묻진 않았다.

 

산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작은 주차장이 나왔다. 전망대라고 하기엔 크지 않았고, 천문대라고 하기엔 조금 소박한 곳이었다. 대신 하늘이 꽤 넓게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산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안건호는 뒷좌석에서 두꺼운 겉옷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입어.”

“아, 땡큐.”

 

겉옷을 꿰입고있는데 안건호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쳐갔다. 그러더니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아니, 나도 같이가지. 치사하게…! 뒤늦게 발걸음을 옮기니 안건호가 빠르게 다시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음료 두 개가 들려있었다.

저거 사러 뛰어갔다온거구나. 머쓱해져 음료를 받으러 손을 슥 내밀었다.

 

 

“이 정도 까진 안 해도 되는데.”

“내가 먹고 싶어서.”

“참나.”

 

받든 음료는 따뜻한 코코아였다. 제법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따뜻한 품 넓은 옷 속에 파묻히고 손엔 따뜻한 음료까지 들려있으니 꽤나 안락한 느낌이었다.

 

“핫초코네.”

“응.”

“너 이런 것도 먹어? 애입맛이네.”

“가끔.”

 

나는 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끝이 천천히 녹았다.

 

전망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멀리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서 누군가 조용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아주 쏟아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 집 옥상에서 보던 것보다는 훨씬 많았다. 도시의 불빛이 아래쪽으로 멀어져 있어서 그런지, 하늘이 조금 더 깊어 보였다.

 

건호는 난간에 팔을 가볍게 올리고 하늘을 봤다.

나는 그 옆에 섰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건호가 별 이름을 먼저 말했다. 저게 뭔 별이고, 저쪽은 무슨 자리이고, 오늘은 어디쯤을 봐야 한다고 혼자 아는 척을 했다. 조용하게 별을 보는 안건호라니. 나와 떨어진 동안 많이 달라지긴 한 모양이다.

 

“나 네 작품 봤어.”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곧이어 건호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별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말하는데 목이 뻐근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봤어?”

“응.”

“뭐 봤는데.”

“지금 하는 거.”

“아, 학교.”

 

탄식하는 목소리에 나는 캔음료의 뚜껑을 어루만졌다.

 

“제목은 좀 그렇더라.”

“나도 처음엔 그 생각 했어.”

“너도?”

“응. 근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졌어.”

“그런 것도 익숙해지는구나.”

“대부분 그래.”

 

건호는 다시 하늘을 봤다.

 

“어땠어.”

 

그가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말하려니 조금 민망했다. 괜히 대단한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너무 늦게 알아본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별을 보던 시선을 거두곤 안건호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조금 부끄럽지만, 인정을 해주는 것도 좋은 친구의 모습이니까.

 

“멋있었어.”

 

건호의 눈이 커졌다.

 

“뭐?”

“멋있었다고.”

“…….”

“…왜 그렇게 봐.”

 

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핫초코 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말을 이었다.

 

“별 좋아하더니 진짜 스타가 됐구나 싶었어.”

“…….”

“반짝반짝 빛나더라.”

 

건호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멈췄다.

나는 그 반응이 조금 이상해서 눈을 깜빡였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말을 했나? 배우한테 멋있었다고 한 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왜?”

 

아무말 없이 놀란 표정을 한 건호가 이상해서 물었는데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지나갔고, 손에 든 캔이 아주 조금씩 식어갔다. 내가 이상한 걸 물은걸까. 조금, 멋쩍어졌다.

건호는 시선을 살짝 피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아는 거야?”

“어엉?”

“방금 말.”

“멋있었다고?”

“그거 말고.”

“스타 됐다고?”

 

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반짝반짝?”

 

건호가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 방금 거의 고백한 거 알아?”

“그게 왜 고백이야. 작품 감상이지.”

“그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좀 다르지.”

“너 배우잖아.”

 

건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배우이기 전에 난….”

 

그 말에 이번엔 내가 조용해졌다.

손에 쥔 핫초코 캔은 아직 따뜻했는데, 괜히 손끝만 이상하게 굳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거든.”

“뭐가.”

“고백 아니라고.”

“응.”

“진짜 아닌데.”

“알았어.”

 

하나도 안 믿는 목소리였다.

나는 괜히 캔을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조금 식어 있어서 단맛만 남았다.

 

“너 진짜 이상하게 받아들인다.”

“네가 이상하게 말했어.”

“좋은 말 해줘도 난리네.”

“좋은 말이라서 그런 건데.”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얘가 오늘따라 이상한 것 같아. 취했나? 아니, 취했으면 음주운전인데…. 실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머리가 복잡해져 다시 하늘을 봤다. 별은 분명 위에 있는데, 이상하게 옆에 선 사람이 더 신경 쓰였다.

조금 짜증났다. 별 보러 와서, 별 말고 다른 게 눈에 들어오는 게.

 

“추워?”

 

건호가 물었다.

 

“조금.”

“내려갈까?”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건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내 옆에 서서, 같은 하늘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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