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제 아내가 되어주세요.

EP.6

신혼집에서의 첫날 저녁.

집 안은 놀랄 만큼 조용했다.

너무 넓은 거실과 높은 천장 때문인지, 발소리마저 희미하게 울렸다.

여주는 아직도 이 집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구나.'

그녀가 멍하니 거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 계단을 내려온 성호가 말했다.

성호 "집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주 "...아, 네."

둘은 나란히 걸으며 집을 둘러봤다.

주방, 서재, 영화관, 헬스장, 드레스룸.

하나같이 웬만한 집 거실보다 넓었다.

여주는 속으로만 감탄을 삼켰다.

'집 안에 영화관이 있다고...?'

마지막으로 2층 복도에 도착하자 성호가 가장 끝방의 문을 열었다.

깔끔한 침실이었다.

햇빛이 잘 드는 창과 새 가구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성호 "여기가 여주 씨 방입니다."

여주 "...제 방이요?"

성호 "네."

여주 "그럼 대표님은요?"

성호는 바로 맞은편 문을 가리켰다.

성호 "저 방을 씁니다."

여주는 두 방문을 번갈아 바라봤다.

여주 "...같이 안 써도 되는 거예요?"

성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 "계약서에도 적혀 있습니다."

"..."

"사적인 공간은 존중."

"..."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순간 여주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차갑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대를 배려하려고 했다.

표현을 못 할 뿐.


---

짐 정리를 마친 여주는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주방에서는 성호가 셔츠 소매를 걷은 채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여주 "...뭐 하세요?"

성호 "저녁."

여주 "...직접 하세요?"

성호 "네."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냄비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여주는 놀란 얼굴로 냄비 안을 들여다봤다.

여주 "...잘하시네요."

십여 분 뒤.

식탁 위에는 생각보다 훨씬 제대로 된 상이 차려졌다.

된장찌개.

계란말이.

불고기.

간단한 반찬들.

여주는 젓가락을 들었다.

한입 먹자 눈이 커졌다.

"...맛있어요."

성호는 물을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성호 "다행이네요."

여주 "대표님."

성호 "...네."

여주 "회사도 다니시는데 언제 요리까지 배우셨어요?"

성호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성호 "유학 시절에."

"..."

"매일 외식하기 싫어서."

그 말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대답 속에서 혼자 지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조금은 느껴졌다.


---

식사가 끝난 뒤.

여주는 자연스럽게 설거지할 준비를 했다.

성호 "...두세요."

여주 "네?"

성호 "식기세척기가 합니다."

"..."

여주 "...아."

괜히 민망해진 여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주 "이 집은 사람보다 기계가 많이 일하네요."

순간.

성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정말 잠깐.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미소였다.

하지만 여주는 똑똑히 봤다.

'...방금.'

'웃었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빤히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성호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성호 "...왜 그러십니까?"

여주 "...아니에요."

'잘못 본 건가?'


---

밤 10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

여주는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낯선 집.

낯선 방.

그리고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남자.

'오늘부터... 1년.'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계약결혼이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성호가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성호 "...이거."

여주 "네?"

성호 "생활비입니다."

봉투를 받아 든 여주는 안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두툼한 현금과 함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여주 "...이렇게 많이요?"

성호 "생활하는 데 부족하지 않게 넣었습니다."

여주 "아니... 이건 너무..."

성호는 조용히 말을 끊었다.

성호 "계약 내용입니다."

"..."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섰다.

복도를 걸어가던 성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성호 "...좋은 밤 되세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여주는 봉투를 품에 안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속에는 남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배려가 조금씩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배려들은, 여주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아주 조금씩 열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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