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6화 - 구원

*우진의 과거입니다.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15년 전.

 

외곽에 버려진 공장의 지하는 한낮에도 어두웠다. 습기 찬 벽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났고, 천장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물이 떨어졌다. 더러운 공장 안, 어린 우진은 복도 끝 철문 앞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품이 큰 검은 옷 아래로 드러난 팔에는 멍이 가득했다. 철문 안에는 며칠 전 끌려온 여자가 갇혀 있었다.

 

우진은 하루에 두 번 여자에게 음식을 가져다줬다. 더러워진 맨발로 복도를 걸을 때마다 차박차박 소리가 났다. 그날도 식은 밥과 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철문을 열었다. 여자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납치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얼굴과 타오르는 눈을 하고있었다.

 

 

“거기 두고 가.”

 

 

우진이 쟁반을 내려놓자 여자가 물었다. 우진이 허리를 펴고 여자를 쳐다봤다. 키가 작은 우진과 바닥에 앉아있는 여자의 눈높이가 비슷했다.

 

 

“너는 밥 먹었니?”

 

 

우진에게 그런 걸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은 우진은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묵묵함에 답답해질 법도 한데, 여자는 싫은 기색 하나 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는 우진의 마른 손목을 바라보다 밥을 절반쯤 덜어 쟁반 끝으로 밀었다.

 

 

“같이 먹자.”

“…그러면 맞아요.”

“누구한테?”

 

 

비쩍 말라 피딱지가 묻은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꼿꼿한 자세를 하고 물어오는 질문에 우진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더 묻지 않고 밥을 내려놓았다.

 

 

“배고프면 먹어. 아무도 없을 때.”

 

 

먹으면 맞을텐데. 하지만 배는 고팠다. 꼬질한 손으로 꼬질한 옷자락을 쥐곤 고민을 한다. 여자는 모르는 척을 해주는건지 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식어서 눌어붙고 노란색으로 맛없어보이는 밥을 쥐고 와구와구 먹었다. 그 때도 여자는 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틀만에 먹는 첫 끼였다. 인질에게 줄 밥은 있어도, 꼬맹이에게 줄 밥은 없었던건지. 어떠한 반찬도 없이 우전은 맛있다는 듯 우걱우걱 밥을 삼켰다.

 

밥을 다 먹기 까지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쟁반을 여자쪽으로 밀고 입가를 닦은 우진이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철문을 닫고 나온 우진은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눅눅한 복도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이어졌다.

 

 

 

*

 

 

 

그날 밤, 지상에서 총성이 울렸다. 우진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여자의 독방과 비슷한 눅눅하고, 창문 하나 없는 방. 바닥에서 누더기 천을 덮을 덮고 몸을 웅크리며 잠에 든 우진이 쿵, 쿵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바깥을 보기 위해 문 근처로 다가가 틈새를 확인했을 땐, 덩치 큰 남자들이 손에는 연장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있었다. 복도의 낡은 전등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어지럽게 사방을 비추었다.

 

처음에 짧게 터지던 총성이, 이내 연달아 터졌다. 큰 소음과 무더기로 이쪽을 향하는 발소리에 깜짝 놀란 우진은 후다닥 다시 누더기 천으로 돌아갔다. 마치 이 곳이 자신의 방공호라도 되는 냥, 그 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이내, 방문이 열렸다.

 

 

“꼬맹이!”

 

 

계단을 뛰어 내려온 남자가 우진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늘 취해 자신을 때리던 남자였다. 남자의 옷에는 피가 묻어 비린내를 풍겼다. 우진은 덜덜 떨었지만, 울음소리도 눈물도 내지 않았다.

 

 

“여자 데리고 뒷문으로 가. 놓치면 죽을 줄 알아.”

 

 

남자는 누워있던 우진을 목덜미를 잡아 무자비하게 일으켜 세웠고,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바닥에 던져지곤 다시 복도로 나갔다. 총성이 가까워질수록 천장에서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울지는 않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줍곤, 복도를 보다가 후다닥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여전히 축축했다. 이게 공포에 질려 비오듯 쏟아진 땀 때문인지, 아니면 공장의 습기 때문인지는 알 턱이 었었다.

 

우진은 곧장 복도 끝으로 가, 떨리는 손으로 철문을 열었다.

 

 

“나와요.”

 

 

여자가 우진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일 있니?”

“빠, 빨리.”

 

 

우진은 여자를 데리고 이번엔 복도의 왼편을 향했다. 젖은 바닥에 발이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튀어나온 돌덩이들에 쓸려 이미 발바닥과 종아리에선 피가 흐르고있었다. 지하실 왼 쪽에는 낡은 철제 계단이 있다. 거기가 바로 조직의 남자가 말한 뒷문이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비명과 총성이 뒤섞여 들렸다. 낡은 철제 계단만 오르면 뒷문이었다. 우진이 먼저 계단에 발을 올린 순간, 위에서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조직원이었다. 남자는 여자와 우진을 발견하자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잘 데려왔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우진이 뒤를 돌아보자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여자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여보!”

 

 

조직원이 곧장 총을 들어 남자를 겨눴다. 곧 방아쇠가 당겨지고, 저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남자는 죽을 것이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어린 우진은 고뇌했다. 어쩌지. 막아야하나. 이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늘 하던 납치, 늘 있던 습격, 늘 있던 싸움. 우진이 있던 조직 안에서 그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저 남자가 죽으면 이 여자도 살아나가지 못할거다. 그건 본능과도 같은 예측이었다. 이 여자가 살았으면 좋겠다. 내게 화를 내지도 않고, 날 때리지도 않고. 오히려 걱정해주며 제 밥을 절반이나 내어주었던 여자가 고마워서.

우진은 속에서 피어오르는 뜨뜻미지근한 무언가를 난생 처음 느껴보았다. 그리고 그 따스함은 곧 우진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시궁창같은 곳에서 받은 단 한 번의 온기는 그리도 따뜻한 것이었다.

 

우진은 초조한 얼굴로 여자와 복도 끝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할 틈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라 조직원의 다리를 힘껏 밀었다.

 

탕!

총알이 빗나가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

 

 

“…이 새끼가!”

 

 

조직원이 우진의 뒷목을 잡아 집어 던졌다. 작은 몸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숨도 쉬지 못하고 웅크린 우진을 향해 검은 총구가 내려왔다. 방금 발포한 총은 녹은 철처럼 뜨거웠다. 우진은 몸을 벌벌 떨었지만, 울거나 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 기묘함에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뒤지고 싶어?”

 

 

우진의 몸이 굳었다. 피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 여자가 살 수 있다면 된 것 같아. 어쩐지 제 역할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온하게 감는 눈과 다르게, 작은 몸은 덜덜 떨렸다.

 

남자는 숨을 내쉬어 이마 위에 뜬 머리를 불어내더니, 우진을 한 차례 걷어찼다.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배은망덕한 놈.”

 

 

그리곤 우진을 겨냥한다. 이윽고 총성이 울렸고, 우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쩐지 아픈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여보!!” 하는 우렁찬 포효가 저 멀리서 들린 것도 같았다. 너무 맞아서 총도 안 아픈건가, 생각하며 눈을 떴을 때. 우진의 앞은 캄캄하고 깊은 총구가 아닌, 부드러운 머리칼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우진의 앞엔 여자가 있었다. 가슴에서 번진 피가 옷을 빠르게 적셨다. 여자의 몸이 힘없이 기울었다. 우진은 자신에게 쓰러진 여자를 얼떨결에 받아 안았다. 따뜻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아줌마…?”

 

 

조직원이 다시 총을 들었다. 그보다 먼저 복도 반대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반대편에서는 다급히 뛰어오는 구둣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두 세 번의 총 소리가 더 울려퍼졌다. 남자의 몸이 철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화약 냄새가 습한 공기 속을 헤집었다.

 

구두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총을 쏘며 달려오면서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우진의 품에 안긴 여자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

 

 

“……여보.”

 

 

우진에게 달려온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여자를 받아 안는 손이 거칠게 떨렸다. 여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입술이 몇 번 움직였지만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손끝이 우진 쪽을 향했다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여보.”

 

 

남자가 다시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바깥의 총성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복도에 남았다. 식식거리는 소리는 마치 분에 찬 짐승과도 같았다.

 

우진은 피가 묻은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 그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두려움? 혹은 미안함인지. 손이 벌벌 떨렸다. 우진은 처음으로 눈에서 흐르는 따뜻함을 느꼈다. 눈물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껴안고 처절하게 울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우진을 향했다. 손에 들린 총구도 함께 움직였다.

 

우진은 도망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었다. 차가운 총구가 이마에 닿았다.

 

 

“몇 살이지.”

“……아홉 살이요.”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내 딸도 네 또래다.”

 

 

총구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남자의 목소리도 함께 흔들렸다.

 

 

“요즘 쫑알쫑알 말이 많지.”

 

 

남자는 품에 안긴 아내를 내려다봤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참 뒤, 우진의 이마에서 총구가 떨어졌다. 남자의 한 손은 여자를 안고, 총을 든 손을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남부끄럽지 않게 컸으면 해.”

“…….”

“네 부모도 그랬겠지.”

 

 

남자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

 

 

 

그날 우진은 조직에서 빠져나왔다. 남자는 우진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다시는 이쪽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우진은 평범하게 사는 법을 몰랐다. 평생 어두운 곳에서 자랐으니 갑자기 햇빛 아래로 나갈 수는 없었다.

대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찾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아이들. 의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쫓기는 사람들. 죽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어떤 정의감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제 어릴 적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했어서, 그 기분을 안고 가는 이들이 없었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그 여자 같은 희생자도 나오지 않을테니. 일종의 속죄였다.

 

 

몇 년 뒤, 우진은 다시 남자를 찾아갔다. 처음 사귄 '친구'를 데려간 날이었다.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잡힌 남자는 우진의 말을 듣곤 웃었다.

 

 

“이 사람 살리고 싶습니다.”

 

 

남자는 우진의 뒤에 숨은 사람을 바라보다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 날, 한 사람이 죽었다. 서류 위에서만. 이름과 주소가 바뀌었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때마다 남자의 서재에는 사망 처리된 사람들의 서류가 쌓여갔다. 우진의 일만 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도 종종 우진을 '사용'했다.

 

 

우진은 햇빛 아래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지하에서 꺼내 그늘로 보내줬다.

그것이 자신을 살려준 두 사람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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