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사연애] 귀공자

10화. 고백

며칠째 박원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봤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강의실 앞에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빈은 나만 보면 한 발짝씩 멀어졌다.

 

"원빈아."

"...네."

"잠깐만."

"저 수업 있어서요."

"아직 십 분 남았는데?"

"..."

 

대답이 없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 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불편해진 건지.

처음에는 MT에서 술 취했던 게 부끄러운 줄 알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계속 이러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

 

 

결국 참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원빈을 발견한 건 저녁 무렵이었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걷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뒤따라갔다.

 

"박원빈."

 

원빈이 멈췄다.

이어폰을 빼고 나를 돌아봤다.

"...누나."

"너 나 피해?"

"...아니요."

"피하잖아."

"안 피하는데."

"그럼 왜 요즘 나만 보면 도망가?"

"..."

 

원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MT 때 술 취한 거 때문에 그래?"

"...아니에요."

"그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일주일째 이러냐?"

 

원빈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원빈이 입을 열었다.

 

"...소개팅."

"응?"

"소개팅 나간다면서요."

 

순간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

 

MT 돌아오는 버스에서 민석이랑 나눈 이야기.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원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 소개팅 안 나가."

"..."

"민석이가 계속 나가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원빈이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상관없잖아요."

"뭐가?"

"누나가 누구를 만나든."

"누나가 누구를 좋아하든."

 

원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

 

"원빈아."

"...네."

"너 진짜 왜 그래."

 

나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요."

"그럼 왜 나한테 이러는데."

 

원빈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웃었다.

"...누나가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럼?"

"...제가 이상한 거예요."

"뭐가."

 

원빈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누나만 보면 자꾸 이상해져서."

"..."

"괜히 말 걸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다른 남자랑 있으면 싫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피했어요."

"계속 옆에 있으면 제가 더 좋아할 것 같아서."

"근데..."

 

원빈이 짧게 웃었다.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누나 좋아해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놀랍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걸까.

원빈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끝까지 내 눈을 바라봤다.

 

"누나는 저 남자로 안 보잖아요."

"..."

"그냥 귀여운 후배고."

"처음부터 계속 저 챙겨주셨잖아요."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친구도 만들어주고."

"제가 뭘 좋아하는지도 기억해주고."

 

원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더 힘들었어요."

"싫어하는 남자한테는 그렇게 잘해주면 안 되잖아요."

"..."

"저 혼자 계속 기대하게 되니까."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원빈이 왜 나를 피했는지.

왜 그렇게 어색해했는지.

왜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했는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싫지 않았다.

원빈이 좋았다.

처음에는 귀여운 후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원빈이 학교에 안 보이면 괜히 찾게 됐고, 연락이 없으면 신경 쓰였다.

MT에서 술에 취한 원빈이 했던 말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빈아."

"...네."

"나 너 싫어하는 거 아니야."

 

원빈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히려 좋아."

"..."

"너랑 친해지면서 진짜 괜찮은 애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나 피하는 것도 싫었어."

 

원빈이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근데..."

"아직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

"처음부터 너를 남자로 생각했던 건 아니니까."

 

원빈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덧붙였다.

 

"조금만 더 지내보면 안 될까?"

"나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싶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원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알겠어요."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기다릴게요."

"진짜?"

"네."

 

그리고 아주 조금 웃었다.

"제가 잘하면 되잖아요."

"..."

"누나가 저 좋아하게 만들게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자신 있어?"

 

원빈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는데."

"그래도 해볼게요."

 

처음으로.

그날 원빈이 나를 향해 제대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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