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位过度沉浸式工匠的短文

我喜欢你












잘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부터 죽도록 치고 받는 아이가 하나 있다. 뭘 하든 시비가 붙지 않는 말이 없고 서로 한 대 쥐어박으면 두 대로 갚아주는 사이. 우리 사이에는 오갈 게 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애가 갑자기 나한테 고백해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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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사귀자."


"...?"




쨍쨍한 여름, 기껏 전재산을 끌어모아 산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철퍽. 소리를 내며 볼품없이 아스팔트 바닥에 스며든 아이스크림이 내 심정을 대변했다. 

...그냥 존나 어이가 없었다.




"응? 사귀자고 김여주."


"싫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연히 내 대답은 거절이었다.















박지민의 성격 상 차인 이후로 잠잠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거절 당한 것에 대한 창피함도 없는지 더 치대기 시작했다.




3교시 체육. 문득 체육복 상의를 오늘 아침에 세탁기에 넣어둔 게 생각 나 이마를 탁, 쳤다. 머저리.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위에는 생활복을 입고 체육관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내려갔다. 그걸 언제 봤는지 박지민이 복도에서부터 시끄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온다.




"야 김여주!"


"?"




그러더니 가만히 있던 내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악! 또라이 변태 새끼야!! 당장 입어!"


"아니 안에 티 입었거든? 

그리고 너 체육인데 체육복 안 입고 어디 가냐."




그러면서 지 체육복을 벗어 입혀준다. 입어보니 딱 맞긴 개뿔, 소매는 한 뼘은 더 길고 기장이 허벅지를 거의 덮을 지경이었다. 그냥 아빠 옷 가져가서 입은 딸내미라는 표현이 딱 적합했다. 저가 보기에도 제법 우스운 꼴인지 배를 부여잡고 웃어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뒤져 그냥."




얄미운 박지민의 다리를 콱. 차버리니 앓는 소리를 낸다. 그리곤 알았다며 갑자기 내 허리에 손을 감는다. 자세가 껴안는 것처럼 되니까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몇 초 더 꼼질거리더니 뿌듯한 얼굴로 말하는 박지민.




"됐네, 길이 맞지?"


"...어. 대충."




그냥 밑단 접어준 거였다. 길이 맞다며 끄덕거리니 소매까지 접어준다.




"내가 애냐, 쓸데없이."




지난 번의 고백도 마음에 걸리고 이 행동도 낯설어서 괜시리 툴툴거렸다. 내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 올려서 웃는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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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맞잖아 뭘."



"..."




멍하니 보다가 바로 고개를 내렸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다. 그렇게 다 접어주고선 머리 한 번 쓰다듬고 가는데 그게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박지민 체육복에서 몽글몽글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올라왔다. 한 번 킁, 하고선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간지러운 게, 참 기분 나쁘다.















비 오는 날이었다. 야간 자율이 끝나고 매번 그러듯 박지민이 우리 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우산 하나를 챙겨 쪼르르 달려가자 답지 않게 헤실거린다.




"니 거는"


"없어."


"그럼?"


"같이 써야지."




우산이 없다며 빈 손을 자랑하는 박지민. 때리고 싶다. 밖에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데 이 조막만한 우산을 둘이서 쓰고가면 물에 젖은 생쥐 꼴밖에 더 되나 싶었다. 하지만 무작정 가자며 끌고 나가는 박지민 덕에 계단을 내려간다.




"나 감기 걸리면 니 탓이야."


"그래서"


"너도 옮아야 돼."




우산을 쫙 펴며 눈을 흘기자 뭐가 또 웃긴지 눈이 휘어지게 큭큭댄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우산을 높이, 그리고 박지민과의 거리를 넓게 잡으며 천천히 운동장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줘, 답답하게."


"? 뭐 하는-"




박지민은 답답하다며 우산 손잡이 빼앗고 내 어깨 감싸서 제 쪽으로 밀착시켰다. 깜짝 놀라서 옆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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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이렇게 하니까 비 안 맞지?"


"...그러네."




괜히 봤다 싶었다. 부쩍 가까워진 우리 둘의 간격 때문인지 둘다 말수가 확 줄었다. 투둑투둑 비 떨어지는 소리만 주위를 메울 뿐이다. 언뜻 본 박지민의 어깨는 흠뻑 젖어있었다.




"야"


"왜"


"너 다 젖었어. 알아?"


"어, 알아."


"..."




올려다보면서 진하게 물든 어깨 쪽을 가리키니 잠시 나만 가만히 바라보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반해 나는 하나도 젖지 않았다. 우산은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















나랑 박지민은 다른 반인데 정말 우연찮게 체육관 청소 당번으로 발탁됐다. 좋은 일은 아니니 발탁됐다는 표현이 좀 맞지 않긴 하지만. 요즘 왠지 모르게 박지민을 평소대로 대할 수 없었다.




"거기 다 쓸었어?"


"어"


"그럼 나 대걸레 가져와도 돼?"


"어"




하는 말 족족 단답만 하니 박지민 입이 또 튀어나온다. 얼굴 보면 기분 이상해질까봐 바닥만 보고 빗자루질을 하던 참이었다.




"너 아직도 나랑 사귀기 싫어?'


"...청소나 해."




갑자기 와선 지난 번의 고백을 언급한다. 이번엔 이상하게도 싫다는 말이 안 나왔다. 그저 청소나 하라며 박지민에게 핀잔을 줄 뿐이다.




"야 거기 조심-"


"아!"




타이밍 좋게 내 발이 뜀틀에 걸렸다.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려던 걸 박지민이 잡아 그 꼴은 면했다. 대신, 내가 박지민을 깔고 앉아있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


"..."




서로 입술만 움찔거리며 섣불리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내가 먼저 일어서려고 하자 손목을 확, 끌어당겨 다시 가까워지게 하는 박지민. 깜짝 놀라서 명치라도 한 번 칠까 했는데 너무 진지해보이는 바람에 시도도 못했다.




"...뭐하냐."




눈만 깜박이면서 뭐하냐고 물었더니 대뜸 말한다.




"왜 싫어 내가."


"안 싫어"


"그럼"


"..."


"왜 안 받아주는데"


"...장난 같아."




네 고백, 장난 같다고.

 마음에도 없는, 그냥 뱉은 말이었다. 이 지독히 낯선 간질거림에 자칫하면 말려들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 체육관이라 그런지 정적이 더 길게 느껴졌다. 슬금슬금 눈을 피하니 박지민은 자세를 바꿔 바닥에 나를 눕혔다.




"...야...!"


"진심이야."


"..."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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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김여주."


"..."




기다려도 간질거림은 끝내 멎질 않았다.
















좋아해 마침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