胶带友谊

07. 地狱前奏

이른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연세대 교감의 편지를 몇번이고 다시 읽던 준현은 곧 답장 안에 수표를 하나 끼워넣었다. 매의 눈으로 샅샅이 살피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위치였다.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니까. 마음 운운하는 새끼들은 나약한 놈들이라 준현은 굳게 믿었다.


‘다 돈이 없어서 자기 위로식으로 지껄이는 작자들이지.’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난 뒤 준현은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그는 집중해야 했다. 광주의 일이 틀어진다면 그의 기반도 틀어질 것이 뻔했으니까. 뭐, 국민들이야 다 잘 구슬리면 되지 않는가.

그에게는 빨갱이라는 아주 훌륭한 핑곗거리가 있었다. 북한을 가장 열렬히 배척하고 있는 준현이지만 동시에 그는 가장 큰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준현은 커피를 마시다 곧 아는 부대장 중 하나를 호출했다.


“광주에 계엄군을 더 투입하자고요?”


부대장이 되물었다. 준현은 신경질난다는 듯이 부러 들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리꽂았다. 부대장이 흠칫 놀라 차렷 자세를 했다.


“지금 광주가 어떤 상황인지 알면 그렇게 되묻진 않을텐데.”
“…”
“빨갱이 소굴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우리 국민들 생각은 안 하나? 광주의 폭동 때문에 맘졸이고 있을 저 국민들 생각은 안 하냔 말이다!”


부대장이 바로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준현은 승리감에 젖은 얼굴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부대장을 응시했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어? 당장 광주로 향하지 않고. 준현이 버럭 고함을 지르자 부대장은 헐레벌떡 준현의 사무실에서 뛰쳐나갔다. 그 꼴이 퍽 우스웠다.


“그까짓 민주주의가 뭐라고.”


준현은 가죽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속으로 비소를 머금었다.





“저, 저, 저기 계, 계엄군 아니여?”
“왜 더 들어오는거지?”
“설마……”


감히 더 말을 내뱉을 용기가, 아직 그들에겐 없었다. 거대한 탱크들과 총을 든 군인들이 광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테레비 있는 집은 켜봐요, 뉴스에서 뭐라고 하나 보자고요!”


바깥을 내다보던 수빈이 연준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단단히 엄포를 놓은 연준은 세 종류 남짓한 식재료들로 자신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뉴스 켜볼까요?”
“왜요, 무슨 일 났어요?”


내용물은 정말 평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떨리는 목소리로 수빈은 연준이 겁에 질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창문을 닫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도 지금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걸 아는지 이번엔 단번에 켜지며 전두환 대통령을 비췄다.


“전두환 각하께서는 광주에 주둔한 빨갱이들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라 약속하셨으며 이를 위하여 어떠한 희생도 마다치 않을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한편 오늘 새벽에 출발한 탱크는 현재 광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보내옴으로 빨갱이 토벌에 막이 올랐음을…”


어디선가 연준이 나타나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화면을 발로 차버렸다. 발길질 한 번에 텔레비전은 그것을 받치고 있던 의자에서 떨어져 큰 소리를 냈다. 왜 그래요! 수빈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광주에 하늘을 향한 총성이 울렸다. 총성이 멎자 이번엔 탱크에서 포탄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진동하며 더러는 떨어지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포탄의 소리에 연준과 수빈은 동시에 귀를 막고 웅크렸다. 소리가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성가시게 남은 진동에 쉽게 발을 디디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 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생각했다. 진짜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제 일어나도 괜찮겠죠?”


수빈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물어왔다. 연준은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보았다. 겁에 질린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연준은 먼저 벌떡 일어섰다.


“아무 일 없을 거에요.”


연준은 괴인 눈물을 닦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사실 그것은 수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수빈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방금 전 들린 총소리와 포탄 소리는 지옥의 서곡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