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실존 인물과 관련 없는 글입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윤 비서가 손을 내밀었지만 정국은 고개를 그었다. 특별히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습관 같은 일이다.
불 꺼진 밤, 위스키 한잔으로 그날을 정리해보는 것.
보통은 한 잔 정도면 충분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두 잔, 세 잔, 연이어 술을 넘기는 그의 눈이 무심히 유리창 밖으로 향했다. 창문 너머 하나둘 들어 오는 야경의 불빛에도 정국의 검은 눈은 점점 더 짙어져만 같다.
“…그래. 말해."
기다린 듯 휴대전화를 들어올린 그의 목소리가 극도로 음산했다.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람을 극도로 가리는 그의 성격에 어차피 진짜 번호를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다. 그 와중에 추적을 피해 번호까지 바꾸어 전화할 사람이라면, 한 사 람밖에 더 있을까.
"-…••삼촌. "
"이제 다 도망친 건가? 이렇게 빨리 전화까지 해주는 걸 보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네. 축하해."
역시나 축 가라앉은 유하의 음성을 듣자마자 정국의 웃음이 비릿해졌다. 한 손에 술잔을 든 그가 뚜벅뚜벅 거실의 창가로 나아갔다. 확실히 남자 둘이 살기엔 지나치게 큰 집이다 싶었다.
혼자가 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조금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언제 들어올 거야?"
"- 안 들어가. "
“그럼 전화는 왜 한 건데? 아직 살아 있다 알려주려고?"
여기서 좀 더 늦으면, 아마 살아 있지 못할 거라는 정국의 경고가 담담했다. 흥분이나 화 한번 없이 이렇게나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어딘지 말해. 지금 사람 보낼 테니까."
"- 말했잖아. 나 안 들어간다고. 학교에서도 연락 왔을 텐데 못 들었어? "
"내가 좀 많이 바빠서."
수화기 저편 유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직 이렇게 어려서야.
정국의 비웃음 역시 더해졌다.
“빨리 끝내자. 정확히 원하는 게 뭐야."
"-…나 피아노 다시 시작하려고. "
"그 이야기는 전에 끝난 걸로 아는데."
"- 삼촌 혼자 끝낸 거잖아. "
“그러니까.”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는 정국의 물음이 나름대로 진지했다. 자신이 그리 결정했고, 유하은 따를 뿐이다. 그걸 이제 와 엎으려는 시도가 그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깜찍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못 할 짓이라도 시키는 줄 알겠어. 남들처럼 조카 자리 다 빼앗아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넘겨준다는데, 넌 뭐가 그리 불만이야?”
"- 누가 그렇게 해달래? 난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
"휴우우."
아직도 이렇게 세상을 모르다니.
가볍게 혀를 찬 정국이 남은 위스키를 그대로 넘겼다. 강한 알코올 향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씁쓸함은 여전히 사라지질 않았다.
"하여튼 당장 들어와. 오래 안 기다려."
"- 안 들어가. 삼촌이 뭐라든 난 피아노 다시 시작할 거라고. 내 꿈이라는 거 알잖아."
"꿈이나 꾸고 살기에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고는 생각 안 하나 보네? "
"- 그런 세상일수록 꿈이라도 꿔야 하는 거 아니야? "
툭.
그대로 끊어진 전화를 붙잡은 정국이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감탄도 무엇도 아닌 헛웃음이 비릿하게 넘어갔다.
"……제법이네, 전유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분고분 입시를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가 없다.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윤 비서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윤 비서가 적당히 알아서 통화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신경 쓰자고."
"당장 카드랑 휴대전화 추적해. 최대한 조용히."
"아, 네에!"
"친구 관계도 전부 알아 와. 최근 한 달간 만났던 사람들도 전부."
현관으로 향하는 정국이 손목을 풀어냈다. 그래봐야 상대할 가치도 없는 비슷비슷한 애송이겠지만 조금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저만큼이나 무심한 조카 놈이 그리 쉽게 넘어가버렸는지.
"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련 없이 나서던 정국의 걸음이 엘리베이터의 홀 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내밀던 윤 비서까지 크게 주춤했다. 그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되는 개인적인 공간을 멋대로 서성이던 검은 구두가 황급히 그들을 향 해 돌아섰다.
"아, 안녕하세요! 유하 담임인 한여주라고 합니다."
"담임이라면."
"아아. 혹시 유하 아버님..., 은 아직 아니실 거 같고 형님이실까요?"
닮아도 너무 닮은 그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반색한 여주가 슬그머니 말을 고쳤다. 유리 정원의 분수대를 배경으로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새의 날개 처럼 파닥거렸다. 갈색 두 눈이 애절하게 깜빡였다.
어찌할까 묻는 보안 직원에게 고개를 그은 정국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일단 들어오십시오. 형님은 아니지만."
"가, 감사해요. 형님. "
하지만 그런 놀라움조차 이 남자 앞에서는 무의미해졌다. 서울 시내에 이런 궁전 같은 집이 어디 있을까 싶다가도, 막상 집주인을 만나고 나니 모든 것이 그럴듯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유하의 혈육이다. 올려다보는 목이 아플 만큼 커다란 키도, 쉽게 범접하기 힘든 묵직한 분위 기도 이 집안의 내력인 듯했다.
숨결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이라면, 이 남자가 훨씬 더 강했지만.
"마실 것 좀 내어오지."
"네, 사장님."
정국의 무감한 음성에 여주가 또 한 번 움찔했다.
진짜 사장님이라니.
정황상 당연한 일이겠거니 싶으면서도 더욱더 몸 둘 바를 몰랐다. 괜히 떨리는 양손을 꼭 붙들어보는 그녀를 지켜보던 정국이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 덕였다.
"정식으로 인사드려야겠군요. 유하 삼촌 되는 전정국이라고 합니다."
"사, 삼촌분이셨군요. 제가 또 실수했네요."
"괜찮습니다."
흠 하나 잡을 수 없을 만큼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왜 갈수록 숨이 막히는지 모를 일이다. 지독하게 완벽한 공간에 잘못 발을 들여버린 것 같은 불 편함 속에서도 그녀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유하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까, 하는.
"음, 혹시 부모님과는 이야기를 좀 해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문제가 문제이니만큼 직접 말씀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해서."
“그냥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네?”
"형님 내외분께서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표정을 보니 모르셨나 보군요."
“아....."
멍하게 넋이 나간 여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정국이 차를 내밀었다. 이런다고 마실 것 같지는 않지만 늘 제 앞에선 찍어낸 듯한 얼굴만을 대해왔던 그 에게는 꽤 신선하긴 했다.
“혹시 문제가 되는 일입니까?"
"아, 아뇨오"
“그럴 리가요! 전혀요!"
이렇게 머리와 손을 한꺼번에 젓는 것도, 저 작은 몸에서 저렇게까지 큰 소리가 나는 것도, 모두 예상치 못했다. 과연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그치면 과연 무슨 말을 할지 내심 기대될 정도다.
“그, 그래도 정말 다행이에요!"
"유하가 집 나간 거 말입니까?”
“아뇨, 이런 멋지고 듬직한 삼촌분이 계셔서요."
태엽 인형처럼 재깍 쏟아내는 그녀의 다급한 말 앞에서 잠시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이곳으로 다가오던 윤 비서가 흠칫, 조용히 뒷걸음질 치는 걸 보 아하니 저만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유하가 정말 누구를 닮았나 했는데. 역시 삼촌을 닮았을 것 같긴 했어요. 요즘 아이들 보면 다들 삼촌 닮고 그렇잖아요.”
" ………아, 네"
"유, 유하가 얼마나 삼촌을 자랑스러워했을까요."
그 전에 그녀 본인부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있나 싶었다.
영혼이 나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여주의 두 눈이 언젠가 그가 키우던 새를 떠올리게 했다. 저대로 놀라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항 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고개가 테이블에 놓인 빈 술병 위로 멋었다.
"……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가를 가렸다.
대체 얼마나 속상했으면.
온통 차고 완벽하기만 하던 겨울성에서 처음으로 여느 가정의 따스함을 찾아낸 듯한 표정이었다.
그 후 그녀가 애절한 눈으로 꺼내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종합하자면 대충 이러했다.
당신 조카는 심성이 착한 아이고, 꼭 돌아올 거라고.
다소 싱거운 결론이지만 아마 그리될 것이다. 잡혀 오든 돌아오든 결과는 매한가지일 테니까. 무엇보다 이 정도면 '철딱서니 없는 놈의 반항'에 충분히 제 시간을 할애해주었으니 슬슬 내일의 일정을 준비할 때였다.
마지막까지 정중한 태도를 고수하기로 한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그래도 다음 주부터 방학이니 출결은 큰 영향이 없을 거예요. 그 전에만 마음잡고 돌아오면 좋을 텐데요."
"그놈이랑 연락되는 즉시 선생님께도 연락드리라 하겠습니다."
"네. 저도 그럴게요."
또 왜
정국이 자신을 마주한 채 더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향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오늘 여러모로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여자였지만 미처 다음 행동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휴대전화 번호 알려주셔야지요."
“..여기 있습니다."
“네. 그럼 제가 학교에서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고 꼭 연락드릴게요!"
그럼, 이만.
뿌듯한 미소의 여주가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직도 이런 곳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보호자와 무사히 대화를 마친 것 만 해도 어딘가 싶다. 마지막 문이 닫히기 직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차갑게 번뜩인 것도 그러려니 했다.
역시나 마음만은 그런 분이 아닐 테니까.
" 사장님."
다시 적막에 빠진 드넓은 홀 앞에 남은 정국의 얼굴이 무서우리만큼 굳어 있었다. 등 뒤로 흐르는 분수대의 조각상과 바꾸어놔도 모를 것 같은 그는 센서 등이 꺼지기 직전에야 돌아섰다.
"내일 일정 취소해. 갈 데가 생겼으니까."
"아, 네!"
"…이렇게 쉽게 잡히다니."
너무 뻔하잖아.
한쪽 손을 세워 커프스를 풀어내며 정국이 성큼성큼 술이 가득한 장식장에 다가섰다.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역시나 이 쓴웃음을 지워 내려면 더욱 독하고 쓴 것이 필요했다.
“요즘 학교가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는 모양이야."
[꿈꾸는 새와 사냥꾼]
종례 시간이 가까워지자 학생들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껏해야 스무 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창가의 가장 뒷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길게 깜빡였다.
“선생님! 선생님!"
"아, 응. 미안해."
그녀가 연거푸 자신을 부르는 학생들을 향해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수고했고 조심히 돌아가라. 그 한마디면 끝이 날 테지만 괜히 입술이 머뭇거렸다.
"저기, 너희 혹시 말이야. 유하랑"
“선생님! 이번에 쳤던 교내 수학 경시 어떻게 됐어요?"
"....응? "
그녀가 유독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유독 안절부절못한다 싶긴 했는데 자신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학생으로서는 당연히 궁금한 일이겠거니, 여주가 부랴부랴 들고 온 종이를 꺼내 들었다.
"박민준 네가 1등이네. 잘했어. 축하해."
"와아! 역시, 전유하 없으니까 이런 행운이!"
“다음에도 한 번만 더 감기 걸려서 빠져주면 1등급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기회가 또 언제..풉"
중얼중얼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남학생을 보며 여주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독감에 걸려 당분간 오지 못한다 둘러대긴 했지만,
안부 한번 물어주는 친구가 없다니.
비정하지만 누구의 탓도 할 수가 없다. 내신에 목숨을 거는 아이들이라면 전부터 늘 그래왔고, 특히나 이 학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유하 저 빈자리에서 어떤 기분으로 버텨왔을지.
……나라도 먼저 살펴볼걸.
"저어, 선생님.”
"응?"
자책으로 혼잣말을 내뱉던 여주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맡은 3반의 반장이자, 어제 텅 빈 교실에서 제일 먼저 유하의 자퇴서를 발견하고 가져 다준 아라였다.
"아라야. 무슨 일이야?"
"...유하 말이에요."
"응? 유하? 친해? 혹시 어디 있는지 아는 거야? "
"아, 아뇨."
“그냥…... 늘 혼자 있었어요. 딱히 남자아이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아니라서."
" ………그렇구나.”
“그래도 한 번씩 점심시간에 혼자 음악실에 가 있긴 했는데."
"음악실?"
그나마 처음 듣는 정보에 여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상담 때 들고 있었던 악보가 문득 떠올랐다. 조금이나마 단서를 잡을 수 있을까 싶 어 그녀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혹시 음악실에 피아노도 있어?"
"네. 늘 그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아아. 그럼 피아노 치러 갔던 모양이구나! 혹시 말 걸어봤니?"
"………아뇨."
이제야 뭘 좀 알겠다는 듯 목소리가 높아지는 여주와 달리, 꼬박꼬박 대답을 내어놓던 아라의 입술이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그냥…•늘 건반 위에 손가락만 올려본 게 전부였거든요."
말을 꺼낸 이나 듣는 이나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여주가 먼저 침울해진 아라의 손을 토닥여주었지만 그녀 역시 가슴이 먹먹하 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마음은 뭐라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누가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되고 나서도 배움이 필요한 순간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여주가 애써 입가를 늘여보았지만 괜히 코끝이 찡해 함부로 웃지도 못했다. 어쩌면 어제 유하의 삼촌 앞에 섰을 때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내려앉는 듯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든든한 존재가 있다는 것과, 그런 존재를 두고도 힘겨워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선생님. 이제 전유하 어떡해요. 정말 학교 그만둬버리기라도 하면."
"걱정 마. 유하 방학 끝나기 전엔 꼭 돌아올 테니까."
억지로라도 힘을 내어 제자를 달래보던 그녀가 불현듯 들려오는 소리에 창문을 바라보았다. 늘 판에 박힌 듯 돌아가던 학교가 무슨 일인지 꽤나 소란 스러웠다.
아라 또한 이상하다 싶었는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다 말고 급히 여주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
[꿈꾸는 새와 사냥꾼]
밝은 회색빛의 계단을 오르는 정국의 구두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제법 가파른 경사에 숨이 잘 법도 하건만. 자로 잰 듯 반듯한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 지지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를 따르는 교장의 숨소리만 더욱 거칠게 헉헉거렸다.
"여,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허억!"
"이사장님은 오늘도 학교에 안 계신가 봅니다."
"네? 아아, 원래 어지간해서는 자리를 안 비우시는데, 하필 딱 오늘 자리를 비우셨네요. 하하."
계단 중턱에 멈춰 겨우 숨을 돌린 교장이 과장된 어조로 횡설수설했다. 억지로 웃어 보이는 와중에도 대체 이 남자가 왜 여기까지 온 건지, 온 얼굴에 혼란이 가득했다.
“워낙 급한 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그리되셨지 뭡니까. 제가 연락드렸는데 금방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
"하던 일이 내기 골프라면 그냥 끝까지 치고 오라 하십시오. 그러다 지면 그 벌금도 내 주머니에서 나갈 테니까. "
정국은 별 감흥 없이 다시 한 걸음 올라섰다. 어차피 고모가 이곳에 붙어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런 공 치기 좋은 날, 얌전히 학교에 계실 리가 있나.
사실 그러라고 이사장직에 앉허놓은 사람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적어도 학교에선 그따위 상사가 없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잘 돌아갈 테니까.
"그냥 한번 와봤는데 교장선생님까지 나오실 줄이야."
“무슨 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맞아야지요!! "
교장은 가당치도 않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이사장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정국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었다. 교장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통함을 온 얼굴에 담아냈다.
"유하 일은 너무 걱정 마시지요. 어차피 곧 방학이니 개학하기 전까지는 꼭 돌아올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
"아...... 예에 "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교장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딘 정국이 '막 떠오른 듯' 부드럽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벌써 이사장님께 말씀드린 건 아니겠지요?"
"그, 그럼요. 뭐 좋은 일이라고."
"그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러죠.“
정국이 흔쾌히 입매를 늘였다. 딱히 교장을 믿어서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본인 미래에 도움이 될지 판단하는 '야심의 본능'을 믿어보기로 했다. 특히 교장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쪽 방면으로는 전적인 신뢰를 보낼 만했다.
"그러니 교장선생님께서도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른 가보십시오."
"네? 하, 하지만“
안도할 새도 없이 교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정국의 말이라면 당장이라도 납작 엎드려야 하겠지만 그를 신경 쓰지 말라는 것만큼은 받아들이기가 힘들 었다.
'대체 이런 남자를 무슨 수로.'
세상 어느 곳인들 주목을 받는 것이 당연한 존재였지만 이곳은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이었다. 외부인이라면 적당히 눈, 코, 입만 붙어 있어도 호기심이 넘쳐나는 사춘기에 정국 같은 완벽한 어른 남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지금도 주변에 몰려들어 그를 힐끗거리는 여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저어, 그럼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뇨. 따로 약속이 있어서요."
*본 팬픽션은 카카오페이지'윈터 심포니'작품을 일부 각색 및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