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8화 - 두 번의 키스

눈을 뜨니 침대였다. 눈앞엔 익숙한 천장이었다. 몇 번 눈을 깜빡였지만 머리가 멍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불을 걷어내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관자놀이를 안쪽에서 두드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으…… 머리야.”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어제 역시 빨리 취한 게 맞았나 보다.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집에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손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왔다.

 

오전 9시 27분. 다행히 첫 수업은 오후였다. 화면에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 몇 개와 카드 결제 알림, 택시 이용 내역이 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학교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누가 데려다준 건 아닌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분명 김준서를 만나 바에 들어간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김준서가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고, 이상원이 다가와 취향이 특이하다고 시비를 걸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고 말하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돌아선 것도 기억났다.

 

으음, 그 뒤에 김준서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고. 나는 혼자 남아 이상원을 쳐다봤고……. 거기서부터 기억이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뭔가 말랑한 게 입술에 닿았던 것 같기도. 가까운 거리에서 누군가의 숨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손에는 부드러운 천, 머리카락 같은 게 감겼던 기분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면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머리를 굴릴수록 머리만 아프잖아.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이불을 걷어찼다. 어제 입었던 옷은 침대 옆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가방은 방문 앞에 뒤집힌 채였고, 내용물 몇 개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옷은 갈아입고 잤네.나름 멀쩡하게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가관이었다. 화장은 대충 지웠는지 눈 아래에 검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물을 틀고 세수를 하다가 입술에 손이 닿았다.

 

조금 부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눌러보니 희미하게 쓰라렸다.

 

 

“뭐지.”

 

 

말랑했던 감촉이 다시 떠올랐다. 설마.

잠깐 굳어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혼자 상상해서 뭐 하겠나. 바에서 술잔을 물고 장난이라도 쳤겠지.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차가운 물을 연달아 마시고 나니 두통도 조금 가라앉았다.

 

학교나 가자.

어제 무슨 짓을 했든, 기억이 안 나면 없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

 

 

 

교양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들어가 늘 앉던 자리로 향했다. 이상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공책과 펜을 꺼낸 뒤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상원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애초에 번호도 모르니 당연했다. 번호도 모르는데 뭘 확인한 거야.

 

괜히 메시지 화면을 닫고 인터넷 창을 켰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기사를 넘기고 있는데 옆자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가방이 책상 위에 놓이고, 이상원이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이제는 다른 자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 자리가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

 

곁눈질로 흘끔 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어제 늦게까지 일했을 텐데 피곤한 기색도 별로 없었다. 검은 셔츠 대신 회색 후드티를 입고 머리도 대충 내려와 있었다.

 

 

눈이 마주칠 것 같아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별일이 있었다면 이상원이 알아서 말하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척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이상원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서도 간간이 이쪽을 쳐다봤다. 내가 휴대폰 화면을 내리면 시선을 거두고, 다시 기사를 읽는 척하면 또 얼굴을 훑었다.

 

왜 저래.

 

곧 교수님이 오실 시간이다. 학생들이 하나 둘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려는데 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사가 키스인 줄은 몰랐는데.”

 

 

휴대폰을 내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뭐?”

 

 

고개를 돌리자 상원이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모양이었다.

 

 

“기억 안 나는 거야?”

“뭐가.”

“진짜로?”

 

 

이상원이 제 아랫입술에 손을 가져다대면서 의외라는듯 날 쳐다봤다. 그 입술을 바라보니 아침부터 입술에 남아 있던 말랑한 감촉이 또 떠올랐다.

 

그러곤 기억나지 않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가까워진 얼굴. 입술 사이로 섞이던 술맛. 손안에 감겼던 부드러운 새틴 재질의 무언가.

 

넥타이.

설마 그게 이상원의 넥타이였나.

상원은 대답하지 않고 고민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괬다.

 

 

 

“우리 키스했는데.”

“…….”

“두 번이나.”

 

 

두 번? 두 번이라고?

첫 번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두 번이나 했다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가뜩이나 아픈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눈을 감고 어제의 일을 되짚었다.

이상원의 넥타이를 끌어당겼다. 내가 먼저 입을 맞췄고, 언제 끝나냐고 물었다. 같이 놀자는 말도 했다.

거기까지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끊겼던 기억 하나가 뒤늦게 이어졌다.

 

 

 

*

 

 

 

계산을 마치고 바를 나왔을 때는 이미 밖이 어두웠다. 술을 한 잔 더 마신 탓에 몸이 조금 가벼웠다. 가게 안에 계속 앉아 있으면 이상원만 쳐다보게 될 것 같아 먼저 밖으로 나왔다.

 

가게 옆 골목으로 들어가 가방 안을 뒤졌다. 구겨진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담배의 끝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연기를 길게 뱉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같이 놀자고 말하긴 했는데, 대체 뭘 하자는 건지는 나도 몰랐다. 술은 이미 충분히 마셨고 시간도 늦었다. 이상원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조금 웃겼다.

 

 

그냥 갈까.

 

그럼에도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바에서 나온 지 십오 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셔츠 차림의 이상원이 골목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내가 잡아당겨 흐트러뜨린 걸 제대로 고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상원은 내 입에 물린 담배부터 쳐다봤다.

 

 

“담배도 피네.”

“왜, 싫어?”

“키스할 때 담배 냄새 나는 건 별로.”

“뭐?”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상원이 다가왔다.

 

 

“읍…….”

 

 

입술이 거칠게 맞부딪혔다.

등이 뒤쪽 벽에 닿았다. 상원이 한 손으로 내 얼굴 옆의 벽을 짚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원은 아까처럼 놀라 굳어 있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벌리고, 숨을 섞었다.

 

골목은 어두웠다. 드물게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릴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 끝에서 재가 길게 떨어졌다. 뜨거운 연기가 손등 가까이 닿았다. 나는 손을 뒤로 뻗어 담배를 벽에 눌러 껐다. 불씨가 사라진 담배가 손끝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빈손으로 상원의 뒷머리를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감긴다. 놓치지 않으려는 듯 움켜쥐자 상원의 몸이 더욱 가까워졌다.

 

아.

아침부터 손에 남아 있던 감촉.

새틴 넥타이만이 아니었다.

상원의 머리카락이었다.

 

 

 

*

 

 

 

기억이 전부 돌아왔다.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가만히 굳어 있자 상원이 고개를 조금 숙여 내 얼굴을 확인했다.

 

 

“설마 기억 안 나는 거야?”

“…….”

“와, 취한 건 알았지만. 진짜 너무하네.”

 

 

상원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몸을 뒤로 기대더니 양손까지 벌렸다. 평소에는 뭐든 별것 아니라는 얼굴로 넘기던 놈이 이번에는 대놓고 섭섭한 티를 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진짜 마음이 상한 모양인지.

 

 

“기억해.”

 

 

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긴.”

 

 

상원은 눈을 가늘게 뜨곤 입술을 삐죽이며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살짝 마음이 상한 듯한 모습이 생각보다 귀엽네. 여자들이 연락해도 차단하고, 울며 붙잡아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놈이 키스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저런 표정을 짓는다.

 

픽 웃음이 나왔다. 내 실소에 상원의 시선이 다시 이쪽으로 향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상원을 올려다봤다. 한쪽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왜, 또 하고 싶어?”

 

 

상원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시선을 피한다. 큰 손으로 제 얼굴 반절을 덮더니, 귀 끝부터 천천히 붉어졌다.

 

얘 뭐야.

여자들한테 그렇게 대시를 받아놓고 이런 말에는 또 약한가 보네. 바에서는 그렇게 능숙하게 굴더니.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풉.”

“씨…….”

 

 

상원이 몸을 정면으로 돌렸다. 교양 서적을 꺼내 펼치더니 괜히 책장만 세게 넘긴다. 조금 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만 휘둘리지. 나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상원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글쎄.

나도 비슷한 것 같은데.

 

이상원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술집에 남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테고, 질투하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겠지. 먼저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상원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책을 펼쳐놓고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간간이 시선이 닿았다. 이번에는 나도 피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간간히 이상원이 입술을 손으로 만졌고, 그때마다 나도 따라서 만졌다.

 

 

2시간 남짓 안 되는 시간. 수업이 끝나고 교수가 나가자, 강의실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원 역시 책을 덮고 가방을 챙겼다. 복도로 나와 계단으로 향하는데 상원이 자연스럽게 옆에 붙었다.

 

 

“왜 따라와.”

“밥 먹자.”

“갑자기?”

“너 맨정신일 때도 만나보게.”

 

 

걸음을 멈추고 상원을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

 

 

“데이트하자는 거야?”

“응.”

 

 

상원은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당연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봤다. 흔쾌히 대답하니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상원은 먼저 계단을 한 칸 내려갔다. 따라오라는 말도 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아래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따라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자연스럽게 그 옆에 붙었다. 마치 내 옆자리가 당연하다는 듯 앉았던 이상원처럼.

 

서로 숱하게 이성을 만났을거면서. 밀당같은건 없이 속절없이 미끌어져 떨어지고있다. 그래, 이건 여태 만난 것과는 다르다는걸 난 이제 알았다.

그럼에도 어떠한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왜냐햐면 끌리고 있는 건, 서로 마찬가지일 테니까.

 


 

 

李相沅粉丝常读作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