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9화 - 정상적인 데이트

“뭐 좋아해?”

 

 

이상원이 계단을 내려가며 물었다. 데이트 신청을 했다. 같이 밥을 먹자고. 내려가면서 내 취향을 조심스레 묻는다.

 

 

“아무거나.”

“그 말이 제일 어려운데.”

“네가 먹자고 했잖아. 네가 정해.”

“파스타는?”

“먹어.”

“그럼 가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 뒤를 따라갔다. 이상원과 술도 없이, 대낮에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어딘가 어색했다. 게다가 데이트라니. 키스부터 두 번 하고 밥을 먹는 순서가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둘에게는 이쪽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상원이 멈춰 선 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작고 깔끔한 식당이었다. 입구로 먼저 다가간 상원이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문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상원이 있었다. 문 잡아주는거야? 남자라고? 이런 대접을 못 받은건 아니지만, 이상원에게 받으니 괜히 낯간지러웠다.

 

내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이상원은 따라 들어왔다. 익숙한듯 직원과 대화를 하고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는다. 적당한 스몰토크를 하며 자리에 앉아, 앞에 정갈히 놓여진 메뉴판을 펼쳤다. 이상원은 빠르게 메뉴를 고른 뒤 메뉴판을 접었다. 나는 사진을 하나씩 훑어보다가 적당해 보이는 걸 골랐다.

 

 

“정했어?”

“응.”

 

 

상원이 직원을 불러 주문했다. 적당한 제스처와 과하지 않은 친절에 여자 직원은 웃음을 한가득 머금곤 응대해줬다. 꼭 바에서의 이상원같네. 그 모습을 턱을 괴고 지켜보고있었다. 이상원은 아무 말 않고 테이블 한쪽에 놓인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먼저 내려놓고, 비어 있는 컵에 물까지 따라 밀어줬다.

 

자연스럽네. 이런 것도 여자 많이 만나봐서 몸에 밴 건가.

 

물을 마시며 상원의 손을 내려다봤다. 수저를 정리한 상원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듯 자기 물을 따르고 있었다. 여자를 많이 만났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 뭐,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생각을 끊고 메뉴판을 한쪽으로 밀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교양 수업 이야기를 했다. 교수에게 지목당해 엉뚱한 대답을 했던 일을 꺼내자 상원이 미간을 좁혔다.

 

 

“그건 네가 자꾸 쳐다봐서 그런 거잖아.”

“내 탓을 하네.”

“옆에서 사람을 째려보는데 집중이 되냐?”

“얼빠진 대답한 건 너야.”

 

 

그때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상원은 못마땅한 얼굴로 물을 마셨다.

 

1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을까, 이상원이 주문한 리조또가 먼저 나오고, 얼마 뒤에 내가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포크를 들려다가 맞은편을 보니 상원은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내 음식이 나온 뒤에야 수저를 들었다. 이런 것도 일종의 배려라면 배려인가.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픽, 하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별것 아닌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좋아하는 음식, 듣기 싫은 수업, 바에서 만났던 진상 손님 같은 시시한 이야기였다. 상원은 예상보다 말이 많았고, 나는 예상보다 많이 웃었다. 이렇게 멀쩡한 대화도 할 수 있는 놈이었네.

상원이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학교에 처음 퍼졌던 소문처럼 여자를 장난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이상원은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이상원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붙어 걸었다. 인도를 걷다가 오토바이 한 대가 가까이 지나가자 내 어깨를 가볍게 밀어 안쪽으로 보내고, 자기가 차도 쪽으로 자리를 바꿨다. 생색을 내거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 상원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앞을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놈일지도 모르겠다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적당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학교로 돌아가는 길. 예상 외로 대화가 끊기지 않아서 재밌게 이어나가던 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 하나가 상원을 발견하고 아는 척했다.

 

 

“야, 이상원.”

 

 

상원이 표정을 굳히곤, 눈을 가늘게 뜨고서 턱을 들었다. 남자의 시선이 곧 내게 향했다. 얼굴을 확인한 뒤에는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오 이 분은….”

“볼 일 없으면 가라.”

“이번에는 얼마나 가냐?”

“신경 꺼.”

 

 

 

이상원의 대답은 짧았다. 남자는 웃었다. 야, 얼굴 좀 펴라 인마. 상원의 어깨를 툭툭 치곤 그대로 곁을 스쳐지나간다. 이상원은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둘은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엔 정적이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그 남자는 아마 내 얼굴을 보고 날 알아봤을 것이다. 내가 쓰레기인지, 얘가 쓰레기인지를 그 찰나의 순간에 가늠했겠지. 늘 받던 대우임에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 때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에게서 톡이 와 있었다.

 

 

[ 야 너 이상원이랑 만나? ]

[ 지금 둘이 같이 다니는 사진 돌고 있음 ]

 

 

이어진 사진에는 상원과 내가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너 또 남자 잘못 걸려서 고생하지 말고 ]

 

 

화면을 껐다. 걱정해주는 말인건 알지만. 오늘따라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원도 분명 이런 감정이었겠지, 제 친구가 자기가 만나는 상대방. 그러니까 나를 보고 반응이 안 좋았던 것에 대해.

 

 

“누구야?”

“친구.”

 

 

곁눈질로 내 쪽을 보던 이상원이 물었고, 난 아무렇지 않은척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상원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편했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또 소문이다. 예전에는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는데. 이번은 왜이리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다.

 

이상원이 정말 소문대로라면. 이번에도 금방 다른 여자에게 흥미가 생긴다면. 먼저 버려지는 쪽이 내가 될수도. 아니, 버려지는거야 익숙하지만. 그래도, 이상원은 ….

 

고작 밥 한 번 먹었을 뿐인데 생각이 너무 멀리 갔다. 스스로도 우스웠다. 어제까지는 키스하고 싶으면 했고, 오늘은 밥이 먹고 싶어서 따라왔다. 그냥 재미있을 때까지만 만나면 되는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어느새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상원은 멈추지 않고 안쪽까지 들어갔다. 나는 이후 수업이 없었다. 발걸음이 우뚝 멈추자, 이상원이 뒤를 돌아 나를 본다.

 

 

“수업 없어?”

“응.”

“음, 그럼.”

 

 

상원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날 내려다봤다. 나는 조용히 그 얼굴을 올려다본다. 이상원은 턱을 들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제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 줘. 연락하게.”

 

 

내 앞에 놓인 핸드폰에, 토독토독 번호를 입력했다. 이상원은 재빨리 폰을 가져가 저장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곤 뒷주머니에 폰을 넣는다. 뒤이어 나를 내려보곤 입을 열었다.

 

 

“집으로 갈거야?”

“응.”

“그럼 연락할테니까 받아.”

“그래.”

 

 

 

상원은 한쪽 손을 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도 반대편으로 걸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 나 이상원 ]

[ 저장해 ]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연락처에 이름을 저장했다. 바로 밑에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 집 가면 연락하고 ]

 

 

대화창을 한참 보고도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이상원과 먹은 밥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별것 아닌 말에도 웃음이 나왔고, 옆에 붙어 걷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언제나처럼 재미로 시작한 일이 재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겐 그 낯섬이 문득 두려움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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