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36화. 위시리스트



우리는 오래 간만에

마음 편히 아침을 함께 먹고,

근처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오전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 보니,

 아침을 함께 먹은 것도

 산책하는 것도 다 처음이네요.

 그 동안 우리 뭐했지?

 왜 이렇게 함께 해 본 게 없지?"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대꾸도 없이

계속 웃고만 있었다.







"훈지씨, 꿀 먹었어요?

 왜 대답 안 해요?

 왜 계속 웃기만 해요. 바보같이...ㅎ"








"몰라요. 계속 웃음이 나요.."








나는 그런 그가 너무 귀여워서

꽉 잡은 손 등 위에 뽀뽀를 해 주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오늘만큼은 아무 걱정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전에 그가 욕실에 있는 동안

왔던 전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내 차를 타고,

훈지씨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에도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는 웃기만 했다.





"훈지씨는 나랑 뭐 같이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나는 훈지씨랑 가 보고 싶은 데가 있어요.
 
 왠지 훈지씨가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같이 가볼래요!!

 그런데 우리끼리만 가면 위험하니까...

 어떻게 가야 하지?"





"어딘데요?"





"마티스 전시회 같이 가고 싶어요.

 그리고, 대니 구 공연도 같이 보고 싶어요."






"아...마티스면 그림이요?

 내가 그런 데 가 본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은데..."





"나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예술가가 어떤 마음으로 저 그림을 그렸을까,

 저 음악을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하면 뭐랄까...

 좀 더 몰입되고, 공감되는 거 같아요.

 그 사람 인생에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어떻게 그렇게 다 남자 예술가들만 좋아해요?"






"네?"






"지난 번에 래이어스도 그렇고,

 베토벤이랑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박효신, 구교환 배우...

 대니 구도 그렇고 다 남자네.. 다 남자야..

 예술가 중에 분명히 여자도 있을 텐데..."







"아니..뭐래???

 이건 아니지.. 그걸 또 질투한다고요?

 이제 질투의 화신이라고 불러야겠다."






"내가 보기보다 질투가 많아요..ㅎ

 나는...

 뭘 같이 해보고 싶냐면...

 캠핑 가 보고 싶어요.

 같이 불멍도 해 보고 싶고, 고기도 구워 먹고..."






"와~!! 캠핑 너무 좋다!!!

 어렸을 때 말고 가 본 적 없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요.

 차박도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캠핑이라니!!

 우리 겨울에 가요. 눈 올 때!!"






"응. 겨울에 꼭 같이 가요. 이번 겨울에..."







잠시 미소를 짓던 그가 말했다.




 "오늘 촬영이 새벽에 끝날 거 같아서

  연락 안 할 거에요.

  오늘은 푹 잘 자요."



나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웃으며 대답했다.




"아~~따뜻하다...마음이.."




우리는 그렇게 행복한 이야기를 하면서

촬영장에 도착했고,

그를 내려 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오전의 통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예감은 들지 않았다.





[저는 훈지 누나에요...]




[아...네... 안녕하세요..]




[저...대표님께 선생님 말씀 들었어요.

오늘이나 내일,

아니 선생님 시간 되실 때 뵙고 싶은데요.]




[오늘 오후 괜찮습니다.

 편하신 시간이랑 장소 보내 주시면 맞춰 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할께요. 이따 봬요.]




[네..이따 뵙겠습니다.]




'하...산 넘어 산이구나...

 박훈지랑 연애하기 너무 힘들고 고달프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내가 찾아가야 할 장소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는 예측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떠오르는 말이 있긴 했다.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절대로 사과는 안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건 알고 계시죠?"

 <37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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