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동지 3화

다음 날 아침,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새벽빛에 수빈은 눈을 떴다.

아무리 몸을 뒤척여봐도 육중한 방문은 안쪽에서 열리지 않았다.

창문 역시 순혈의 마력이 걸려 있는 듯, 손을 대자마자 차가운 반발력이 손끝을 튕겨냈다. 그

완벽한 고립 속에서 수빈을 더욱 괴롭힌 것은 가문에서 버림받았다는 실개감보다, 자신이 뱀파이어의 저택에 감금되어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었다.

‘난 대체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 거지?

피를 파먹히는 가축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 때쯤, 쿵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연준이었다.

어젯밤의 화려한 차림 대신, 짙은 네이비색 가운을 대충 걸친 연준은 조금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수빈을 발견하자마자 입꼬리를 나른하게 말아 올리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붉은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과 깔끔하게 차려진 식사 트레이가 들려 있었다.

“잘 잤어?”

연준이 트레이를 침대 곁 협탁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와 갓 구운 빵, 그리고 싱싱한 과일들. 감금된 죄인에게 주는 음식 치고는 지나치게 고급스러웠다.

“...이게 뭡니까.”

“인간은 밥을 먹어야 산다며.

시종한테 특별히 신경 쓰라고 했어. 네 덩치를 보니까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연준은 마치 반려 길길이를 챙기는 주인처럼 흐뭇한 눈으로 수빈을 바라보았다.

수빈은 사육당하는 느낌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하루 넘게 굶은 위장은 정직하게 요동쳤다.

수빈이 머뭇거리자 연준이 수푼을 쥐여주며 옆자리에 앉았다.

“먹어. 독 같은 거 안 탔으니까.”

수빈은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스럽게 빵을 떼어 입에 넣었다.

허겁지겁 음식을 삼키는 수빈의 모습을 연준은 턱을 괸 채 가만히 감상했다.

넉넉한 셔츠 깃 사이로 드러난 수빈의 뽀얀 목덜미와, 음식을 넘길 때마다 움직이는 목젖으로 연준의 시선이 느릿하게 내려앉았다.

“그나저나... 순혈 뱀파이어가 왜 인간의 음식을 신경 씁니까?”

수빈이 우물거리며 경계하듯 묻자, 연준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말했잖아. 잘 익은 열매를 그냥 버리긴 아깝다고.” “......” “배를 채웠으면, 이제 내 차례 아닌가?”

연준이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방 안에 기분 나쁜 비린내가 진동했다. 동물의 피 같았다.

연준은 그 피를 잔에 따르고는 가볍게 입에 댔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역시 맛없어.”

“무슨...”

“하급 놈들의 피는 텁텁하고, 동물의 피는 비리기만 하지. 인간 헌터 놈들의 피는 은 냄새 때문에 혀가 마비될 것 같고.”

연준이 침대 위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차가운 장미 향이 수빈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연준의 붉은 눈동자가 아른아른 빛나기 시작했다.

“근데 너한테서는 달콤한 향이 나.”

“오, 오지 마세요...!”

수빈이 당황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연준은 순식간에 수빈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려 머리 위로 고정시켰다.

훤칠한 체구의 수빈이었지만, 순혈의 압도적인 악력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읏...!”

연준의 다른 한 손이 수빈의 얇은 셔츠 깃을 풀어헤쳤다. 드러난 도톰한 어깨와 목덜미 선을 따라 연준의 차가운 손가락이 스르륵 내려갔다. 수빈의 몸이 찌릿한 소름과 함께 단단하게 굳어졌다.

연준이 고개를 숙여 수빈의 쇄골 부근에 입술을 묻었다.

연준의 서늘한 숨결이 피부에 직접 닿을 때마다 수빈의 귀 끝과 볼이 터질 듯 붉게 물들었다.

헌터로서 배운 상식으로는 당장 그를 밀쳐내고 목을 베어야 했지만,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인지, 아니면 이 포식자가 풍기는 나른하고 달콤한 분위기에 홀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준은 뾰족하게 돋아난 송곳니로 수빈의 쇄골 아래쪽 피부를 살짝 쓸었다.

콕.

얇은 살가죽이 뚫리며 조그마한 피 한 방울이 맺혔다. 연준은 송곳니를 깊게 넣지 않고, 붉게 피어오른 그 피를 혀 끝으로 부드럽게 핥아 올렸다.

“아...!”

고통이라기보다는, 척수를 타고 올라오는 낯선 자극에 몸이 움찔거렸다.

수빈의 피가 혀 끝에 닿는 순간, 연준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씁쓸한 은 향 따위는 전혀 없었다.

미칠 듯이 달콤하고 그윽한, 오직 수빈에게서만 나는 특유의 체향이 피와 섞여 연준의 이성을 흔들었다.

연준은 수빈의 목덜미에 깊게 얼굴을 묻은 채 나쁜 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돼...”

연준이 중얼거렸다. 피를 탐하는 욕구보다, 이 인간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싶다는 집착이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올랐다. 수빈의 떨리는 숨소리, 발그레하게 익은 귀, 자신을 바라보는 그 거부할 수 없는 눈빛까지 전부.

연준은 감금되어 단단히 굳어있는 수빈의 볼을 감싸 쥐며, 붉어진 수빈의 입술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져갔다.

“너, 날 어디까지 자극할 셈이야?”

연준의 나른하면서도 짙게 가라앉은 음성이 수빈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수빈은 헌터로서의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연준의 붉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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