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15화. 일출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까만 바다뿐이었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만이 들렸다.

 



줄리앙을 자주 만나거나 

통화를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렇게 그곳에 서서 한참동안

바다를 내려다봤다.

 

 

수평선 끝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니

점차 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대폰도 시계도 없이 나와서

몇 시쯤 됐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이 죄책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그에게 정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정아 씨!!!!”

 

 

등 뒤에서 훈지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훈지 씨.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당신이야말로… 언제 여기까지 온 거에요?

 하루 종일 먹은 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오면 어떡해요.”

 

 

그는 말을 멈추고,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얼굴은 땀 범벅이었다.

 



“훈지 씨… 왜 이렇게 땀을…”

 

 

나는 그의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 주었다.

 

 

“온 마을을 다 헤맸어요. 

 몇 시간을 뛰어 다녔는지 알아요?”

 

 

“아까 깊이 잠든 거 같아서 나왔는데...
  
 언제 깼어요?”

 

 

“서너 시간 전쯤에 깨서 보니 

 옆에 없길래 화장실 갔나 했어요.

 너무 안 오길래 화장실 가보니 없어서요.

 그때부터 밖으로 나와서 얼마나 헤매고 다녔다고요.

 밖에서 쓰러진 건 아닌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내가 어린 애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찾아 다녀요.

 잠이 안 와서 나왔어요.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무사하니까 됐어요.”

 



그는 잠시 나를 살펴 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어디 앉아서 좀 쉬었다 내려가요.

  나 바로는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저쪽 벤치로 가서 앉아요, 우리.”

 

 

우리는 벤치에 앉아 계획에도 없던

프리힐리아나의 일출을 함께 마주했다.

 

 

“힘들긴 한데 이렇게 같이 일출도 보고

 좋은데요?”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일출을 바라보았다.

훈지 씨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뗐다.

 

 

“혹시… 

 줄리앙에게 죄책감 갖고 있는 건 아니죠?”

 

 


“내가 아니었다면…

 줄리앙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내가… 줄리앙을 만나지 않았거나…

 줄리앙과 만나면서...

 훈지 씨를 보러 한국에 가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한국에서 훈지 씨 만나고 

  줄리앙 부모님 뵈러 파리에 갔을 때…

  그 사람이... 

  내가 말도 없이

  약속도 어긴 채 당신 만나러 한국 갔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넘어가자고 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어요.”

 

 


“그 때 줄리앙과 헤어지지 않았으면…

 나와도 다시 만나기 힘들었던 거잖아요.”

 

 


“… 내가 처음부터 잘못한 거에요.

 훈지 씨를 잊지 못 한 상태에서

 줄리앙이 사귀자고 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잖아요.”

 

 

“줄리앙도 당신과 만나면서 추억이 생겼잖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줄리앙이 호텔에 머물고 있었을 때

 내가 찾아갔더라면 어땠을까요..?

 가서 좋게 설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매몰차게 밀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돼요.”

 

 

“그 당시에는 줄리앙을 포기 시켜야 했으니

 호텔에 갔어도 좋은 말로 설득하기는 

 힘들었을 거에요.”

 

 

“나 때문에… 

 더 아팠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훈지 씨가 옆에 있는데 

 이런 모습 보여주는 것도 미안해요.”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있어서 당신이 덜 힘들고,

 짧게 아프면 좋겠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훈지씨...

  내가 얼마나 못된 생각을 한줄 알아요?"






"무슨 생각이요...?"




 

"훈지 씨가... 

 지금 내 곁을 떠난 게 훈지 씨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 했어요.

 정말이지 이게 얼마나 끔찍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훈지 씨가 내 곁을 떠났다 생각하면 

 지금처럼 버틸 수도 없을 거 같아요...

 나...정말 이기적이죠...?"





줄리앙에게 미안한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내렸다.





"그럴 수 있어요.

사람은 다 이기적이에요.

나도... 그랬을 거에요."





"내 곁을 떠나면 안 돼요... 알았죠?

 내가 가도 된다고 할 때...

 그 때 가요..."

  



"가라고 해도 안 갈 건데요.

 나 황소고집인 거 몰라요?"





그는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내 등을 쓰다 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잠시 여행 다녀 오는 건 어때요?

 새로운 곳을 다니다 보면

 슬픔을 잊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여행이 내키지 않았지만,

훈지 씨에게까지 내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다른 도시로 여행 가요.

 훈지 씨도 스페인은 여기 밖에 모르잖아요.”

 


 
우리는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맞이한

첫번 째 아침을 뒤로 하고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언덕에서 내려왔다.

 

   
“어~? 약속 안 지킬 거에요?" <116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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