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21화. 선택



테루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우리는 알바라신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노을빛에 물드는 알바라신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과

성벽을 따라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을 보면서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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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지 씨 말대로

 이곳으로 오길 잘 한 것 같아요.

 내가 다녀 본 여행 중에

 가장 멋져요."





"와~ 정아 씨한테 그런 칭찬을 들으니까

 기분 좋은데요.

 나도 꼭 당신이랑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여기 함께 있다는 게 꿈 같아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테루엘로 오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걸 물었다.





"영화 대본은 봤어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마을로 시선을 옮겼다.





"우리 여행 동안은 그런 얘기 하지 말기로 해요."





'뭐지...?

 왜 말을 피하지?'





"혹시..."





그가 나를 바라봤다.





"혹시... 뭐요?"






"그 영화 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에요?"





나는 결국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대본은... 좋아요.

 그런데... 영화 촬영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돼요.

 그래서, 대표님한테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우리 1년은 여기서 함께 지내기로 했잖아요.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우리한테 또 언제 이런 시간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제야 김대표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훈지 씨를 바꿔 달라고 했던 이유를 알아챘다.





'나한테 훈지 씨를 설득해 달라는 거구나...'






"그런데...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래서 내가 이 얘기 꺼내지 않은 거에요.

 그만 해요. 이제."




그가 단호하게 말을 끊는 바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바라신에서 이틀을 더 보내며

근처 여행지를 돌아봤다.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

페라센테 성으로 향했다.




붉은 바위산 위에 세워진 성은

마치 바위와 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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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위와 파란 하늘의 대비가

더욱 선명해 멋진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한 발 한 발 내딪으며

성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

훈지 씨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정아 씨는 우리의 관계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네?"





나는 그의 갑작스런 질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잃었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나와의 미래를?"





"..."





"한 번도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생각할 때마다 답을 모르겠어요."





"날 사랑하잖아요?"





"사랑하는 거랑

 미래를 함께 하는 게

 항상 같을 수는 없어요."






"날 잊으려고 해도

 안 됐잖아요.

 그럼 이제 답은 정해진 거 아니에요?"





"훈지 씨...

 그 영화 하고 싶으면 해요.

 좋은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난 정아 씨가 여기 있는 한

 그 영화 찍으러 한국으로 가지 않을 거에요.

 내가 그 영화를 찍기를 바란다면

 나와 한국으로 같이 돌아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건

단순히 여행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훈지 씨의 삶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당신 몫이에요."

 <122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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