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65화. 분노

sophie97
2026.07.19瀏覽數 20
[미안해요. 새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메일 제목을 읽고 나서
너무 손이 떨렸다.
클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내가 분명히 그에게 말했었다.
촬영하다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라고...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라니...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로그아웃을 하고 랩탑을 덮었다.
한참 동안 마우스 위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못 했다.
'어떻게 하지...이전 메일부터 열어봐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읽어보지 말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눈물이 고였다.
화가 치밀어 올라 눈물을 닦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훈지!! 이제 정말 끝이야!!"
그때 훈지씨가 휴대폰을 던져 버렸듯이,
나도 랩탑을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게 무슨 모순 덩어리야...'
내 마음과 머리는 완전 별개의 두 사람이었다.
집안을 아무 이유없이 서성거렸다.
냉장고 문을 열어서 물을 꺼냈다.
얼음을 가득 넣어,
한잔을 들이켰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토록 눈부시고, 화사했던 스페인의 햇살이
오늘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반짝였다.
'어떻게 하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다시 랩탑을 열고 로그인을 했다.
나는 가장 마지막 메일을 열어 볼
용기는 생기지 않아
훈지씨가 보내왔던 그 동안의 메일 중
하나를 클릭하여 열었다.
[그 카페에 다녀왔어요.]
'그 카페? 김포에 있는 카페를 말하는 건가?'
제목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갔었던 카페를 떠올렸다.
[나는 그 날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포근했던 느낌이 떠올라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잠이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읽어 보라고 건네 준 책은 읽지도 않고
잠들어 버린 나를 보고
혹시...한심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죠?ㅎ
오늘 오래 간만에 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그 날이 떠올라서
당신이 선물해 줬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들고 그 카페에 갔었어요.
오늘은 졸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었어요.
당신이 여주인공 폴에 감정 이입을 했듯이,
나는 시몽에게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같아요.
폴은 왜 로제에게 다시 돌아갔을까...
왜 시몽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 했을까....
폴도 당신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요?
.....
그래도 나는 시몽처럼 포기하지 않으려구요.]
'이랬던 사람이 오늘은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메일을 보낸거야?...
진짜...어이없네...'
진정됐던 나의 마음이
또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제목을 읽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축하가 아니라 분노였다.
새 여자친구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내가 질투를 하는 건가...'
내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심지어는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차라리 미겔과 만나 버릴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머릿 속에 스쳤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 한 채
새벽을 맞았다.
새벽녘이 되니,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어떤 감정도 없이
그저 빨리 직면해 버리고,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을 클릭하여 열었다.
[한달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당신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당신이 읽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보낸거였는데...
막상 첫 번째 메일이 확인된 걸 보니,
이렇게나마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역시...
두 번째 메일부터는 확인하지 않네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렇게 제목을 쓸 수 밖에 없었어요.
만약에 이 메일을 당신이 열었다면
그럼 아직 내 생각을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거겠죠?
아닌가요?]
'여우....'
그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 분하기도 했지만,
밤새 고민하고, 화를 내고 했던
내 모습들이 창피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한 거야...
못 당하겠다 정말...'
한편으로는 그의 속임수에 웃음이 나기까지 했다.
그게 안도였는지,
아직 남아 있는 미련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쨋든 그 순간만큼은,
마음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이 될 때까지
그의 메일을 하나하나 모두 열어 읽어 보았다.
모든 메일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그에게 답장을 쓰고 있었다.
"나도 당신이 그리워요." <66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