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況很糟糕,所以這樣反而更好。
第11集


어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나는 오늘도 평범하게 학교를 왔다

아 전정국과 어김없이 같이 등교했으니 평범하게는 아닌가

어찌되었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오늘 벌써 성적표를 받는 날이다


임여주
하...

벌써부터 앞이 막막하다

그동안은 어찌저찌 계속 숨겨왔지만

오늘은 빼도박도 못하고 걸리게 생겼다

전정국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한 동안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성적표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임여주
'어쩌지..'


전정국
야 어디 아파?


임여주
어?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표정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었나보다

전정국이 걱정을 할 정도면


전정국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임여주
아니라니까


임여주
그나저나 넌 어제 내가 붙여준 반창고 잘 붙이고 왔네??


전정국
아 이거...!!


전정국
내가 어제 이것 때메 얼마나...


임여주
???


전정국
후...아니다


임여주
왜??


전정국
아니야


임여주
말을 하다말고 있어..(꿍시렁꿍시렁)


전정국
(찌릿 -)


임여주
...

내가 꿍시렁대니 바로 째려본다

하여간 전정국..

.

.

내가 또 성적표 생각을 잊었다는 건 나도 자각하지 못했다

.

.

담임선생님
자 얘들아 성적표 나왔다

담임선생님
번호 순으로 선생님이 이름 부르면 가져가

반아이들
네~~~


임여주
'아 제발...'

나는 또 머릿속으로 집에 가서 엄마께 성적표를 보여드리는 시뮬레이션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럴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초조해지기만 한다는 걸 알지만 너무 불안해서 생각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분 후

오지 말았으면 했던 내 차례가 결국 왔다

담임선생님
임여주


임여주
네..

성적표를 받고 생각보다 더 심각한 내 점수에 머리가 핑 돈다


임여주
'아 진짜 어떡해'

.

.

아 오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고 어느새 벌써 집이다

엄마가 오시기까지 이제 30분 정도

띠띠띠띠-

띠링


임여주
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오신 엄마에 놀라기도 전에 엄마는 내게 성적표부터 물었다

엄마
성적표는?

엄마
오늘 나왔지?

엄마
오늘 나온거 다 알고 왔으니까 빨리 꺼내봐


임여주
아..엄마 그게


임여주
가지고 오긴 했는데요..


임여주
잘 못 봤어요

엄마
뭐!? 얼마나 못 봤는데

엄마
너 저번에 열심히 했잖아


임여주
네..근데 제가 그날 조..!

엄마는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 손에 있는 성적표를 가져갔다

엄마
..!!!

엄마
너..너 이게 뭐야!!!!

엄마
5등급..??

엄마
이게 말이 돼??


임여주
아 엄마 잠깐만요..

엄마
맨날 1등급만 맞던 애가 왜 이래!!!


임여주
아..엄마 그게

엄마
너 그래가지고 의대를 어떻게 갈려고 그러니

엄마
이따위로 해서 어떻게 가!!!!

엄마
내가 너한테 쏟아부은게 얼만데!!!!

엄마
이 중요한 시기에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레 성적이 이래??!

엄마
지난번까지는 엄마 실망시킨 적 없잖아

엄마
도대체 이번엔 왜 이런거냐고!!


임여주
..엄마

엄마
후...너 혹시 남자친구 생겼니?


임여주
네..?

엄마
이 중요한 시기에..??!!

엄마
그래서 이렇게 못 본거야??

엄마
어??


임여주
아니예요..!!

엄마
근데 왜 이래


임여주
제가 그 때 아팠어요..

엄마
아파..??


임여주
네.. 몸이 너무 아파서 집중이 잘 안됐어요...

엄마
몸이 아픈게 자랑이야?


임여주
네...?

엄마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야!!

엄마
나중에 수능 볼 때도 아프다고 다 망칠래??어??


임여주
...

아팠던 것도 서러운데 엄마는 내가 아픈 것도 내 잘못이라고 하시니 너무 서럽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아파서 잘 못 본거 ..

시험 망친거 나도 너무 속상한데

엄마가 괜찮다고 위로해주길 바랬는데


임여주
엄만...날 사랑하긴 해요..?

엄마
갑자기 또 뭔 소리야!!!

엄마
니가 지금 그런 말을 할 때야??!


임여주
나도 시험 망친 거 너무 속상하고 아팠던 것도 서러운데 왜 화 내요!!!

엄마
뭐??이게 어디서 엄마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큰소리야!!!!!


임여주
엄마는 한 번이라도 제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임여주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노력한 만큼 안나왔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지!! 아파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임여주
그냥 저 말고 성적이 제일 중요하신 거겠죠

엄마
뭐..!?


임여주
아니예요?

엄마
이..이게!!


임여주
난 솔직히 엄마가 위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여주
그럴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엄마
뭐,뭔 소리야!!

난 그대로 문을 박차고 집을 나와버렸다

엄마
야!!!임여주 !!!!

.

.


임여주
흐으..


임여주
..시발!!!!


임여주
시발,시발,시발!!!!!!!

평소 욕을 일절 사용하지 않던 나는 오늘 처음으로 욕을 했다


임여주
아 ㅈ같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욕을 하니까 그나마 좀 시원해진 느낌이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안사용했을까 싶을만큼


임여주
후....

생전 처음으로 엄마한테 화를 내보고 혼자 욕을 했더니 뭔가 후련한 느낌이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좀 진정되고 난 후에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 내 상태는..

오늘 아침부터 입고 있었던 교복과 그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 이 두 개밖에 없었다

지갑도 겉옷도 뭐도 아무것도 없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수밖에는 없었지만

지금 집에는 절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괜한 오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그네나 타고 있을 무렵


전정국
뭐해?


임여주
전정국??!


임여주
네가 여길 어떻게..??


전정국
누가 그렇게 맛깔나게 욕을 하나 하고 와봤지


임여주
!!!

.

.